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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수 May 19. 2024

세상을 들어 올리는 힘

1년 정도 요가를 다녔었다. 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운동을 하나쯤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찾아보다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아쉬탕가*를 하는 곳이 있길래 덜컥 등록을 해버린 게 시작이었다. 그냥 요가를 하는 학원은 많았지만, 아쉬탕가를 전문으로 내세워하는 곳은 잘 보지 못했기에 걸어서 15분이나 가야 하는 곳임에도 무작정 카드를 내밀었다.


요가는 재밌었다. FUN 한 재미라기보다는... 그냥 매일매일 어떤 동작을 수행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면서 점점 발전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동작을 할 때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했다가는 자세가 흐트러지기 마련이라 생각이 많은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때 회사의 특정 인물로 인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었는데 요가를 다녀오면 그 잡념들은 말끔히 모습을 감추었다. 타고나길 좀 유연하게 타고나서인지, 곧장 동작을 따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 피셜 잘하는 쪽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다닌 지 3-4개월쯤 되었을까 선생님께서 이제부터 시르사아사나를 연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아뿔싸 이 자세는 이른바 물구나무 자세였다. 그동안의 동작들은 모두 시르사아사나로 향하는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요가를 수련하며 가장 무서워하고 오지 않기를 빌었던 동작이 바로 시르사아사나이다. (이제부터 편의상 머리서기로 부르겠다.)


말 그대로 머리 하나에 의지해 몸을 거꾸로 세워야 하는 이 머리서기는 일단 자세부터 너무나도 나에게 위협적이었다. '하다가 목 부러져서 죽으면 어떡하지'는 정말로 내가 머리서기를 하기 전 줄곧 생각하던 것이었다. 그렇게 덜덜 떨면서 처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몸을 거꾸로 들어 올리는 순간 나는 이 자세를 꼭 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려웠지만 정말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작 요가 몇 달 다닌 나에게 머리서기는 머나먼 꿈이었다. 난 근육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근육보다 지방이 많은 푹신푹신한 몸의 소유자였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다칠 수 있으니 절대로 집에서 혼자 연습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다 큰 어른은 원래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는 법이다. 난 몰래몰래 집에서 머리서기 연습을 했다. 아쉬탕가 시퀀스를 모두 마친 후에 머리서기를 해야 수월하다는 선생님의 말에 요가를 가지 않은 날에는 내친김에 배워온 동작들도 집에서 같이 했다. 처음에는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없어 일단 몸을 들어 올리는 것부터 했다. 어떤 기구에 의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색다르지 않은가? 발은 늘 땅에 딛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이사와 이직의 문제로 요가는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머리서기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 머리서기를 접한 지 일 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는 수월하게 몸을 들어 올린다. 몸에 그만큼의 근력이 생긴 건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다. 발끝이 천장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는 피가 쏠려서인지 주변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는데 나는 이때 내 모습이 꼭 세상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세는 불안정하고 언제 엎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함께 들어 올리지만, 나하나쯤은 잘 건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머리서기 할 때가 좋다. 오늘도 해야지






*아쉬탕가 요가에 대한 정의는 해당 링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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