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핀수 Jun 09. 2024

오해 誤解

내가 참을 수 없는 것

    고등학교 1학년때의 일이었다. 같은 반에 커플 한쌍이 있었는데, 여자친구인 A는 내가 본인의 남자친구인 B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B와 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B는 내가 싫어하는 인간 군상에 가까웠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C가 내게 'A는 네가 B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안다.'라고 전해왔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펄쩍 뛰며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싫어한다고 우스갯소리로 치부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향한 A의 적대감은 커져갔다. A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내 욕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반에서 나는 임자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음침한 아이가 되어갔다. A는 남 얘기 좋아하는 친구와 sns에서 내 뇌를 꼽등이에게 던져주겠다는 둥 면전에 대고는 담지 못할 말들을 뒤에서 해댔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A의 지나친 의심과 C의 이간질 그리고 타인에 대해 떠들고 다니기 좋아하는 다른 친구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정말 억울하고 분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나를 그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20살이 되던 해, 뒤에서 몰래 일을 꾸민다며 함께 지내던 가까운 친구들이 날 오해하고 밀어낼 때도 참을 수 없는 무력감과 억울함을 느껴야 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머리가 빨개지도록 우는 것뿐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난 뒤 나는 오해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난 무결한 사람인데, 이런 나를 몰라봐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그래서 더 온 힘을 다해 나의 무해함을 증명하고, 타인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이라도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과 날 다르게 생각한다면 바로 잡아야 했으니 말이다. 이 때문일까 인관관계는 내게 너무나 힘든 것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타인의 마음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어느 날 이효리 님이 방송에서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남편인 이상순 님이 의자 다리 밑을 열심히 작업하고 있어 '의자 다리를 누가 본다고 그렇게 공을 들이냐' 물으니 이상순 님이 '내가 알잖아.'라고 답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수많은 타인을 대상으로 나만의 결백을 주장하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상대가 나를 미워하거나, 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이로 인해 상대가 날 떠나갈까 봐 무서웠고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닐까 봐, 그래서 또 다른 오해를 낳을까 봐 무서웠다. 그런데 딱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나의 결백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바로 나라는 것.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믿어줘야 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열쇠를 넘겨주고 이 열쇠를 버리면 어떡하지, 다른 곳에 가서 꽂아 돌려보면 어떡하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오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도 나를 멋대로 생각하고 넘겨짚는 사람들은 종종 내 인생에 등장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사람들에게 열쇠를 넘겨주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나와 내가 아는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그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이전보다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오해를 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조금은 부끄럽지만 사는 동안 나도 수많은 타인을 오해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도 저마다의 열쇠를 쥐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그걸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을 들어 올리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