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부는 마음
새봄 같은 어린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곁에 있는 아이 엄마의 얼굴에도 눈길이 머문다. 젊은 엄마는 예쁘다. 특별히 멋스럽게 차려입지 않아도 맨얼굴에 부스스한 모습조차 빛이 난다.
나이 듦을 느끼게 된 것 중 하나가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볼 때였다. 살아감의 어느 순간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도 예뻐 보였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너희들은 그 모습 그대로도 예쁠 때라고 하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 보니 그 말에 뒤늦게 공감하게 된 것이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리 키가 작고 눈이 작은지, 얼굴색은 좀 더 하얗게 될 수 없는지, 자꾸만 늘어나는 여드름과 주근깨는 어떻게 없앨지 말이다. 작은 뾰루지 하나가 기분을 좌우하던 그때에는 나도 몰랐다. 젊음은 있는 그대로 눈부시다는 것을 말이다.
몇 년 전부터는 젊은 엄마들이 그렇게도 예뻐 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부부들이 참 곱다. 육아와 생활에 치여 내가 그 시절이 이렇게 눈부신 줄 몰랐던 것처럼 또다시 십 년이 흐르면 지금의 내 나이도 어여쁘게 여겨질까. 늘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자란 마음을 덜어내고 싶다.
현관에 낯선 구두 한 켤레.
들어오는 사람마다
누가 왔냐고 묻는다.
나가서 보니
신발장에서 내 구두를 꺼내
막내가 신고 놀았나 보다.
나조차도 서먹한 하이힐.
젊음으로 빛나는 구두를
다시 제자리에 넣으면서
내 오랜 신발들을 바라본다.
물끄러미 나를 보며 앉아 있는
먼지 묻은 신발들.
그 속에 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켜켜이 세월을 쌓고 있다.
5년 전 내가 써 둔 글에서 그 시절의 내 마음을 다시 만났다. 잠시 서서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나이듦을 또 한 번 느꼈던 그날 이후에도 지금까지 나는 편한 슬립온 신발만 신어 왔다. 그러다가 얼마 전 니트 부츠를 구입했다. 웨지힐이 아닌 굽이 있는 것으로 말이다. 한참 고민했는데 막상 매끈한 부츠를 받고 나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 신고 나가던 출근길. 오랜만이라 걸음걸이가 어색했지만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설렘을 주었다. 굽 때문에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은 새로웠고 마음이 휘파람을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