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능놀고 싶다. 무더위로 타들어가는 계절에는 쉬어가며 천천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종걸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을 불러올 수 있다면, 높다랗게 뻗어가는 새하얀 구름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며칠 전 출근길에 감탄을 자아내는 여름 구름을 만났다. 여행자로서 바라보았다면 그림 같은 풍경이 여행의 정취를 한껏 고조시켜 주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여느 동네의 평범한 순간들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니까. 마주하는 세상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에 애쓰지 않아도 모든 감각이 열리며 한없이 너그러워진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자 차를 타고 잠시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여름 하늘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계절은 사람들의 특성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여름 나라는 대체로 느긋하게 일상을 향유하는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급하니까 빨리 부탁한다는 말에도 웃으며 알았다 하고는 또다시 며칠이 흐르는 업무 처리가 다반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일 배송에 익숙한 나라에서 무엇이든지 빠른 것만을 누리다가 그곳에 살게 된다면 나 역시 적잖이 당황하겠지만, 천천히 성실함을 이어가는 그 마음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열하는 태양과 싱그러운 초록 잎 덕분에 더욱 투명해지는 여름의 푸른빛. 파랑 가득한 하늘 아래 익어가는 열대 과일의 풍요로움. 그 덕분에 그렇게 선한 미소가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 아닐까.
살을 태우는 듯한 햇볕 속에서 문득 올려다본 여름 하늘의 청량함은 가을의 빛과는 다른 강렬함이 있다. 맹렬한 더위 속에서 하얗게 뻗어 오르는 구름과 대비되는 파란 하늘은 찬탄을 자아낸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지켜나가려는 강인한 생명력을 샘솟게 한다.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능놀다 보면 생의 어떠한 일도 버티어 낼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생긴다.
어릴 때부터 서두르지 않는 편이다. 일을 몰아하면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매일 조금씩 나눠서 한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기한보다 먼저 끝낸 후 쉬는 것을 즐긴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것이 좋았다. 그저 편한 대로 하다 보니 그것이 괜찮은 습관이 되었다. 방학이 되면 보통 일주일 안에 숙제를 끝냈다. 부지런하기보다는 남은 방학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서였다. 기한이 많이 남았을 때 몰아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에 능놀며 할 수 있다. 마감에 압박에 쫓기지 않고 쉬엄쉬엄 할 수 있어서 좋다. 개학을 얼마 앞두고 숙제를 물어보는 친구들이 벌써 끝냈냐며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흐뭇했고, 남은 방학 동안 책을 들고 뒹굴거리는 한가로움이 평화로웠다.
급하게 서두르면 되레 일을 그르치게 된다. 시간이 없어 *하동거리다가 발을 미처 다 빼기도 전에 문을 닫아 뒤꿈치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급히 하려다가 일은 오히려 더디어졌고, 상처가 쓸려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그 후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천천히... 천천히."를 가만히 되뇐다. 그렇게 조용히 말하며 다급해지는 행동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평균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5위 안에 드는 우리는 워커홀릭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따라서 평균 휴가일수도 다른 나라에 비해 몹시 적은 편인데, 명절을 전후해서 갖는 긴 휴일은 기혼자들이 휴가로 누리기는 어렵다.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떠나서 여행경비가 몇 배로 드는 여름휴가도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프랑스처럼 사 계절 모두 긴 휴가를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계절을 선택하여 쉬어갈 수 있는 일주일 휴가가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일 년에 한 번쯤은 마음에 평온이 깃드는 시간으로 잠시라도 일상의 무게를 벗어두고 싶다.
* 능놀다: 쉬어 가며 일을 천천히 하다.
* 하동거리다 : 어찌할 줄을 몰라 갈팡질팡하며 조금 다급하게 서두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