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본>
해가 거의 저문뒤에야 버스에 올라탔다.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한 것은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출출해서 근처 수제버거집에 들렀다. 점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치즈버거 세트를 시켰다. 단백질을 위해 패티 하나를 추가할까 했지만, 왠지 모르게 쑥스러워서 말았다. 빨간 모자를 쓴 점원은 내가 에어팟을 끼고 있어서인지 크게 물었고, 난 잘 들린다는 의미로 나지막이 '제로 콜라'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아마도 앞섶에 흘린 커피 자국 때문이겠지. 난 어색하게 서서 식당 곳곳을 둘러봤다. 실내에는 지나치게 낮은 테이블이 가득했고, 벽 곳곳에 붙인 셀로판지에는 몇몇 인사들의 사진이 흐릿하게 붙어있었다. 카운터 위에는 포스트잇으로 "바로 나오니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미리 만들어 놨는지 햄버거가 바로 나왔다. 목이 타서 콜라를 한 모금 마셨지만, 햄버거는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콜라를 쪽쪽 빨면서 왓챠로 본 시리즈를 틀었다. 무슨 텔레비전 드라마라도 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색창에 본이라고 쳤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거리를 뛰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침드라마를 소리로만 즐기는 버릇이 있는데, 나도 비슷하게 익숙한 작품을 배경 삼아서 적막을 견딘다. 다 아는 이야기에 거의 다 외워버린 신이 계속 나온다. 난 딴짓을 하면서도 본이 어디로 가는지 종종 살핀다. 아침드라마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만, 우리 형은 말이 없으니 살펴봐야 한다. 왜 굳이 그 먼 레이캬비크까지 가셨대.
본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육박감 넘치는 전개와 액션을 꼽겠지만, 내가 즐기는 바는 살짝 다르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건 전 세계로 오가는 로케이션이다. 도심의 상공에서 시각과 장소를 간단하게 알려주면 내 기분은 들뜨기 시작한다. 본은 만성 기억상실이라서 제 정체성도 찾아야 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쫓는 CIA를 피해 숨어 다니기 바쁘지만 난 그의 곁에 바짝 붙어서 외국 도시를 유람하길 즐긴다. 본의 현재 상태는 일종의 재난이지만, 난 핸드헬드로 촬영하는 것처럼 분주히 본의 뒤를 쫓는다.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와 오랜 세월 쌓은 신뢰가 빛을 발한다. 본과 나는 아무 말 없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사이다. 이제는 날렵하기보다는 퉁퉁하게 살이 불어 중년의 아저씨로 보이는 맷 데이먼은 자식을 결혼시켜야 하는 나이지만, 부인은커녕 오래 알고 지내던 여자들도 죽거나 도망 다니기 바쁘다. 혼자임에 진력이 났는지 그도 이제는 꽤 피곤해 보인다. 좋은 여자 만나서 안정적인 삶을 꾸렸으면 좋겠는데,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맷 데이먼의 점점 짙어져 가는 미간의 주름을 언제까지 볼 수 있으려나.
본 시리즈는 그래 봤자 첩보영화라서 화면이 예쁠 수가 없다. 그 흔한 관광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고작 CIA 비밀사무실이나 후미진 호텔이 촬영지의 대부분이다. 그래도 난 생활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을 보길 즐긴다. 첩보물답게 어둑어둑한 카페 구석자리에서 마시는 커피와 그 나라의 특색이 드러나는 길거리 음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낡은 호텔에서 먼지 냄새 맡으면서 깨어난 본이 소변도 보지 않고 바로 일 처리에 골몰하는 것도 멋스럽다. 마치 <다큐멘터리 3일>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재미와 비슷하다. 이야기의 얼개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생활의 면면을 즐긴다.
난 어릴 적부터 코즈모폴리턴이 되고 싶었다. 그야말로 세계시민, 지구본을 굴리면서 세상을 넓게 쓰고 싶었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이가 깡패였으니까. 이 나이에 이르러서 보니 지금 내가 거니는 행동 범위도 버거움을 느낀다. 유랑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한때 유럽 대륙을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돌아다녔으니 그걸로 된 거지. 어릴 적에는 내 바람을 대신해줄 한비야와 류시화 같은 유랑 작가를 좋아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 떠돌며 사는 일에 매혹됐다. 독서 편력이 공고해지니 빌 브라이슨이나 데이비드 번과 같은 진짜 여행작가로 옮겨갔다. 과거의 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범주로 묶인 세계주의야말로 몇 평 안 되는 방에서 갇혀 지냈던 내 삶을 해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믿었다. 그것이 영화가 됐든 소설이 됐든 사대주의라고 욕을 먹어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응답해야만 했다. 늘 클로즈업에 숨 막힐 것 같은 내 일상의 독립영화가 조금이라도 해외 촬영을 나가길 빌었다.
나의 기대와 바람을 잔뜩 안은 본이 낯선 유럽 도시를 배회할 때 그는 외로워 보이지만, 느닷없이 비치는 레이캬비크의 밤 풍경은 아무런 근거 없이 낭만을 부른다. 저기 방세는 얼마일까. 영어 못하면 적응이 어렵나. 아이슬란드어를 배워볼까. 빵이랑 닭가슴살로 버티면 생활비는 얼마나 들까. 그래도 난 커피값은 있어야 하는데. 저기 헬스장은 파란 눈의 거구들이 장악했겠지. 난 잠시 화면을 멈추고 한때 꿈꿨던 코즈모폴리턴과 같은 삶을 상상했다. 난 아이슬란드 문화에 무지하지만 멀리 전경으로 보이는 도시는 그 자체로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은색과 금색 빛깔이 쏟아지는 네온사인과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쩌면 죽기 전에 무작정 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은 도심에 있다가 적을 피해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접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다. 그는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서 위기에 빠진다. 도피 와중에도 여자와 눈이 맞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CIA는 그를 잡으려고 온갖 수를 다 동원하지만 본이 당할 리 없다. 그 와중에도 CIA의 젊은 여자 직원은 제이슨 본을 살려야 한다고 역성을 든다. 본은 헛간 안에 있다가도 신출귀몰하게 다른 가정집으로 옮겨가고, 기가 막히게 차 하나를 구해서는 누구도 찾지 못할 곳에 은거한다. 아무리 봐도 내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이다.
본은 비밀 요원 출신이라서 그런지 여권도 많다. 대서양을 강변 순환로처럼 드나드는데, 세상 귀찮다는 표정이지만 난 그가 지도만 펴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그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눌러앉지 않아야 추적을 피할 수 있어서 짐도 별로 없다. 말 그대로 노매드의 운명인데, 그의 강철과 같은 육체와 어디서든 뭐라도 하며 살 수 있는 억센 기질이 초라함을 비껴간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활력에 감탄한다. 나도 한때 유럽 기차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가 훔쳐 갈세라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자던 시절이 있었는데. 8인용 게스트룸에 가서 새우잠을 자도 거뜬했는데. 본의 유랑생활은 나의 전성기 시절을 불러낸다. 그러고 보면 본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코즈모폴리턴 아니던가. 무엇보다 이십 년 가까이 숨어 사는데 굶지 않고 사는 걸 보니 기술도 있는 모양이다. 그는 딱 봐도 IT 기기에 능하고 세계정세에도 빠삭한지 신문에서 몇 자만 읽어도 상황 파악이 끝난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속독법을 배웠는지 신문을 넘기는 속도가 거의 허경영급이다. 무엇보다 공작원 출신이라서 여러 언어에도 능통한 능력자다. 아마 실제 맷 데이먼처럼 학벌도 좋을 것으로 예측이 된다. 이러니 여자가 끊이질 않지.
월든처럼 숲 속에 처박혀서 홀로 살면 유유자적할 수 있지만, 수백만이 들끓는 도시에서 노매드로 사는 제이슨 본에게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도심의 고독은 그래서 특별하다. 소란스러운 외로움은 이질적이고 은근하다. 본은 CCTV와 대중의 감시 속에서도 쉽게 은거할 수 있는 특기가 있다. 무엇보다 고독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서 섣불리 인연을 만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는 모습은 강철 같은 내면을 상상할 수 있다. 손에 닿을 듯 어슬렁대는 인파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적의 추적망을 피해 달아나는 본은 도시가 주는 생래적인 외로움을 잘 표현한 캐릭터다. 난 간혹 유쾌한 무리 속에서도 똥 마려운 사람처럼 혼자 초조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익명이 되고 싶다. 눈에 띄지 않은 채 그들 사이에서 쓱 빠지고 싶다. 나의 고통스럽고 근심 가득하며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숨긴 채 은폐된 상태로. 내가 생각하는 코즈모폴리턴은 그렇게 멀어지는 사람이다. 난 본 시리즈를 보면서 도시의 노매드가 살아가는 법을 생각한다.
창밖을 보다가 내가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윽고 느리게 호흡했다.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네온 불빛이 주변 이들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마치 그들의 외로움이 빚어낸 섬광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눈을 깜박이자 전광판의 노란빛이 뺨에 내려앉았다. 도시의 불빛이 그의 눈망울에 맺혀 있었다. 난 쓰레기통에 잔해를 쓸어 넣고 본이 활개 치던 맥북 화면도 덮었다. 배는 불렀지만 어딘지 모르게 헛헛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