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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없는 처지

모임 중독자는 모임과 거리를 두게 됐다.

by 박민진

난 모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니만큼 종일 모임 생각을 한다. 이 모임은 왜 잘 되지 않을까. 이 모임은 어째서 인기가 많을까. 대구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나를위함은 이번 여름 시즌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고, 대구에서 가장 큰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이제 학생들도 어르신도 찾는 곳이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고민이 커진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왜 난 혼자 일을 하고 있을까. 왜 직원을 고용하지 않을까. 뭐가 두려운 걸까. 이토록 관계에 겁을 내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처럼 여겨진다.


지난 주말도 4개의 모임을 진행했다. 글쓰기 모임 하나, 인문학 모임 둘, 영화 모임 하나. 나를위함 공간에서 멤버들과 차를 마시면서 책과 글쓰기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유시민의 책으로, 며칠 전 들은 소문에 관한 글로 내 나름의 진심을 다해 얘기를 나눴다. 내 진심보다 중요한 멤버들의 속내가 모임에 잘 갈마들기를 바라면서 발언권을 조율했다. 늘 하던 모임이고, 대화에는 힘이 있었지만 난 지쳐 빠진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제 마흔이라 그런가. 아니다. 그보다는 뭔가 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속을 내보일 수 없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삶과 결실에 관해, 실과 훼손에 관해. 하지만 정작 내가 더 많이 하는 고민은 빠져 있었다. 클럽을 기획하고 모임을 운영하는 것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난 동료가 없으니까. 이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이 분야 사람과 내 고민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다. 독서모임은 어떻게 운영하는가. 돈을 버는 것과 취미는 어떤 균형을 가지고 있을까. 이 사업이 앞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대구 청년들은 왜 대구를 떠나는가. 어쩌면 이런 글이 내가 유일하게 모임에 관한 고민을 터놓는 장이다. 백지는 잘도 내 고민을 흡수한다.


군인일 때 아침 7시 사무실을 들어서는 내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들려 있었다. 가방에는 책과 노트북이 있었다. 여느 군인과 다른 모습이었다. 난 다 똑같은 옷을 입고 계급장만 유효한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다. 사실 별로 다를 것도 없었지만 퇴근 후에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나를 진짜라고 여겼다. 내 옆에 승찬 대위와 도윤 소령은 나의 동료였지만, 마음속에서는 나는 너희와 다른 예술가다, 독서가다 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 내 바람대로 그들과 전혀 다르게 살고 있지만, 그 다름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남다른 분야에 와서 마음 나눌 동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쉽게 쉽게 답을 내어주는 챗지피티 정도가 나를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모임을 기획하고 만들면서 정작 모임을 하는 마음은 식어가고 있다. 예전만큼 재밌지 않다. 나를위함의 모임을 한 달에 15개까지 진행하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7개 정도로 줄였다. 앞으로 더 줄여갈 생각이다. 세대교체의 생각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20대 중반의, 밀레니엄에 태어난 친구들을 모임 진행자로 앉혔다. 덩달아 회원들 연령도 점차 낮아졌다. 난 사뭇 낮아진 연령대를 놀라워하는 멤버들에게 쿨한 척하며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 그렇게 단순하기만 할까.


난 모임 중독자 출신이다. 한 달의 반을 모임으로 달리던 시절도 있었다.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먹고살게 해주는 업보다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던 모임에 전력을 다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모임 속에서 난 외롭지도 않고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를 예쁘게 봐줬던 친구들도 다 모임에서 만났다. 내가 흠모하던 친구들도 다 모임에서 만났다. 애틋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해 난 모임 속에서 계속 머물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동지들은 여전히 나와 책을 읽고 나와 같은 주제로 글을 쓰며 내가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을 보면 갱년기 아저씨처럼 감동에 겨워 훌쩍인다.


과거와 달라진 건 나의 기운이다. 나는 모임 속에서 멤버들과 같은 책을 읽은 동지의식을 전보다 덜 느낀다. 난 모임 바깥에서 보는 눈에 너무 익숙해졌다. 모임이 돌아가는 시스템. 수익구조, 멤버들의 연장 여부, 마음이 가지 않는 멤버에게 짓는 어쩔 수 없는 미소. 내 모임보다 잘 나가도 진심으로 기뻐해야 한다. 누군가가 즐겁게 놀 장소를 마련하고, 대화할 책을 정해주고 광고비를 들여 모집을 해주는 정성.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 난 왜 누군가가 뛰놀 곳을 마련해 주고 기뻐하는가. 돈이 좋은가. 잘 모르겠다.


모임 기획자라는 독서모임 사업가라는 위치는 나를 강연자에 앉혔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앗아갔다. 그렇게 오래도록 작가로 불리고 싶었는데, 브런치 대상을 받은 시점부터 나의 사업은 궤도에 올랐고, 퇴직을 하면 더 좋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장강의 뒷물결에 자취를 감췄다. 지금도 소액의 인세를 가져다주는 운동의 참맛은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속작이 없는 박민진 작가는 그게 못내 두렵다. 요 몇 달 모임에 관한 원고를 보태고 있다. 모임을 빼고 나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책을 한 권 내고 싶어졌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며 어쩌지? 초조하고 불안하다.


약 보름 후부터 서초구청에서 열리는 커뮤니티 기획자 학교에서 강사를 맡는다. 학생들이 나를 통해 커뮤니티 기획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보다는, 내가 한 삽질과 고독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생기는 점이 좋다. 나의 고민, 나의 부침, 내가 더없이 기쁘게 만들고 있는 색다른 모임들을 선보이고, 설명하며 절절하게 이해받고 싶다. 저 이거 만들 때 진짜 힘들었어요. 진행자가 자꾸 내용을 바꾼다고 해서 밤새 고생했다니까요. 고객 중에는 진상도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믿기세요? 제 모임 안에서 다정해지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적이에요. 저는 돈 벌면서 고맙다는 소리 들어요. 제가 대구 청년들 결혼도 시켜요. 연애는 오죽 많겠어요. 저 대단하죠?


강의와 별개로 나는 매주 나를위함에서 2~3번씩 파트너를 맡는다. 그 꾸준함에 여행도 잘 가지 않는다. 모임이 내 모든 루틴을 강제한다. 내가 기꺼이 부담하는 강제다. 책과 영화 글쓰기. 이번 시간에는 또 누구와 모임을 하고 또 누구에게 발언권을 줄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 내 모임이 열리지 않는 날도 올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점차 신청자가 줄고 있다. 내가 공들여 만들어준 클럽에 내 모임을 신청했던 사람들이 가고 있다. 내 웃음 뒤의 어둠을 알아본 자들이 생겼다. 조말론 향수로도 감춰지지 않는 습습함이 내 마음에 자리한다. 투샷 에스프레소의 각성도 무의미한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도 힘을 내서 웃고 썩은 농담을 던지면서 기운 내 이끌어간다. 자 옆에 계신 상준 님 그래서 이번 발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점차 비어 가는 자리를 보며 몇 번 입술을 깨물고 나의 은퇴식을 떠올려본다. 이제 그만해야겠어하는 날이 올 것이다. 고개를 젖히고 상상해 봤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 결코 모임을 먼저 끝낼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내 손으로 그만두겠나 싶다. 그래서 난 나의 마지막을 브런치에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다 끝나는 날 나는 손을 털면서 이제 내가 겪었던 모임에 관한 모든 에피소드와 생각을 책으로 남길 것이다. 안국역 트레바리의 풍경, 오래된 전집에서 마신 막걸리. 원주의 작은 서점과 대구 교동의 좁은 골목길의 풍경이 담기겠지. 그러면 내 은퇴는 조금 덜 섭섭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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