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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린 Dec 26. 2022

관광객 모드

백수를 즐기고 싶은 J형 인간



분명히… 퇴사 후 한동안은 즐기자고 했건만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J형 인간인 나는

도착 당일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획을 짜며 할 일을 정해놓고 있었다.






숙소에서의 첫 조식. 전날 저녁에도 스무디에 빵으로 간단히 때웠었는데.. 벌써 국물이 그립다.



내가 다닐 어학원 주변 동선과 가는 길 등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개통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내가 개통했던 휴대폰 통신사는 giffgaff.

호스텔로 미리 유심칩 우편물을 보내놓은 뒤 그 우편물을 찾아

세인즈버리 슈퍼에 가서 바우처를 구매했고 여러 블로그 눈팅을 통해 휴대폰 등록을 완료했다.


이제는 쌀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아





프레타망제라는 체인점에서 초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저기서 초밥은 잘 안 먹을 텐데 그때는 잘 몰랐으니 다 경험이다라는 마음으로 먹었었다.


여기 앉아 남친과 카톡도 하고 저 초밥이 얼마더라 라는 얘기도 하고 휴대폰 등록도 하며 현지에 적응한 척한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다닐 어학원은 홀본역 근처에 있어 그 근처를 돌아보고 공원에서 휴식도 취하다가

홀본에서 코벤트가든도 가까이에 있어서

길도 익힐 겸 여행도 할 겸 열심히 걸어 다녔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완전히 자리 잡히지 않았던 무인 공공자전거 대여서비스.

런던에 툭하면 바클레이 혹은 산탄데르 은행이 새겨진 자전거들이 많아 한번 꼭 타봐야지! 했는데 쫄보는 무서워서 타지 못했다…




당시 사용하던 휴대폰이 아이폰5S였는데

만보기능이 있다면 좋았을 걸. 내 생각엔 만 오천보 이상은 걸었던 것 같다.


코벤트가든을 지나 템즈강 쪽으로 걸어가게 되었고 런던의 가장 큰 상징물 런던아이와 빅벤까지 걸어가서 구경꾼처럼 이리저리 사진도 찍었다.


이때 걸어가는데 웬 터키쉬가 말을 걸어 잠시 도보하며 여행을 했었다. 그 사람은 뭔가 내가 동양의 어린 여자애처럼 보였는지 내 전화번호를 얻길 원했지만, 나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전화번호가 없다 미안하다는 말로 철벽을 쳤고 그 사람과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정도에서 마무리를 했다. 혹시나 옐로피버는 아닐까 런던에 있는 동안만큼은 남자들의 선의를 그저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더더욱 이러면 안 돼! 하는 유교걸의 마음으로 다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국제적으로 인맥을 만들어놓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그들과 썸 탈 것은 아니니까!





빅벤은 언제 봐도 웅장하고 광활하고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실제 멋스러움에 어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로 내겐 크게 다가왔다.


계속 도보로만 이동해서 굉장히 피곤했지만(시차적응 없이 휴식 없이 다닌 나였기에..) 결국 저녁 뮤지컬을 예약한 빅토리아까지 걸어가게 되었고

안 그래도 영어 뮤지컬이라 다 못 알아듣는데 피곤하기까지 하고 극장 안이 컴컴하고 시원하니 졸기 딱 좋았다 하하.






저녁도 맥도널드로 때우니

엄마밥이 그리워지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노라 다짐했건만

집 떠나자마자 왜 엄마밥은 생각이 나는 거야.




공연 시작 전에 나는 올바른 자리로 찾아갔는데 웬 일가족이 앉아 있어 티켓을 보여주며 여긴 내 자리라고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직원을 불러야 하나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와서 이 자리다 너희가 틀렸다. 일어나라 하니까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주더라. 이때 나의 무력감을 한번 느꼈다. 내가 말하는 건 왜 무시하지? 내 단어 선택이 잘못된 건가?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소극적으로 말해서 그런 건가? 이런 부정적 생각들이 들었지만 일단 편한 자리에 앉고 나니 그런 생각은 할 겨를 없이 하루 고단함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위키드 공연을 보고 갔던지라 나름 비교하면서 보는 시간이었고 공연은 좋았지만 어떤 부분에서의 졸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다음부터 런던에서 뮤지컬을 볼 때는 활동을 최소화하고 가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내 맘 같지 않더라.



멍 때리는 백수가 되고 싶었는데 빡빡하게 하루를 보낸 J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쉬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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