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의석 Nov 14. 2016

사람은 본래 악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1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차도르를 두른 한 중년 여성 아딜라가 폐허가 된 건물을 누비며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다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얼마 전에 주운 양철 바구니에 그것을 던져 넣었다.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주변에 널려있는 쓰레기와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다니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일어난 테러 때문이다. 그녀는 폭탄이 터지던 날을 잊지 못한다. 하늘을 찢는 듯한 큰 소리가 울리더니 먼지구름이 여기저기를 휩쓸기 시작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이로 인해 반경 2km의 거리가 초토화 되었다고 한다. 건물이 무너지며 사람들을 덮친 탓에 수백명이 죽고 다쳤다. 다행히 그녀는 외부에 있어 참사를 면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날 이후 그녀는 아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폭탄이 터졌던 바로 그 장소이다. 테러의 위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토록 아들을 찾아 헤메는 이유는 혹시 시체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다. 저 건물 깊이 혼자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그녀의 가슴이 미어진다.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바빠졌다. 오늘 안에는 아들을 꼭 찾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눈에서 결의가 엿보인다.

 

#2

싱가폴에 사는 브라이언 웡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다. 커피와 토스트로 간편하게 아침을 챙겨먹은 그는 가방을 챙긴 뒤 집을 나섰다. 회사는 지하철로 약 20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다. 브라이언은 이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 그가 펼쳐든 책은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좋은 글귀에 밑줄을 치며 그는 오늘 하루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아침 회의를 마친 브라이언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회사는 요즘 인도네시아에 지사를 설립하는 문제 때문에 많이 바쁘다. 브라이언은 지사 설립과 관련된 팀의 리더를 맡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해외출장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얼마 전부터 회사가 현지에서 자리잡는데 필요한 각종 세법을 공부하고 있다. 지사의 성공 여부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는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일을 마친 브라이언은 회사를 나와 지하철 역으로 이동했다. 잠시 둘러본 거리의 모습이 참 좋다. 근처에 있는 머라이언 상에서 나오는 물줄기와 조명로 인해 야경이 참 멋지다. 주변 사람들이 모습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사진을 찍는 신혼부부의 모습을 보며 브라이언은 곧 만날 자신의 연인을 떠올렸다. 얼마 전 원하는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그녀는 입사 전까지 필요한 것을 챙기느라 많이 바쁘다. 축하의 의미로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주기 위해 브라이언은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브라이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위 두 사례의 생활이 180도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해야 할 요인은 많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전쟁이 일어나는 빈도입니다. 이라크는 지금도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위험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싱가폴은 이라크에 비하면 그 위험성이 현저히 낮죠. 기존에 이뤘던 것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부를 쌓아올리기 더 유리한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전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의 본심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힘든 상황이 되면 타인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존을 걱정합니다. 피가 섞인 가족도 예외는 없습니다. 함께 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낮아지면 가족은 대개 뿔뿔이 흩어집니다. 정글에 오랫동안 먹이가 없으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이 덩치가 큰 동물인 것처럼 가족 역시도 살아남으려면 그 크기를 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사람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질문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선하다 할지라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타인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건 상황입니다. 역사를 살펴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국가 규모의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고대의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전쟁으로 황폐화 된 상황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라고 아무리 외쳐본다 한들 그 말에 공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리없는 전쟁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앞으로는 좋은 일이 생길거야’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좋은 일이 생겨서 나쁠 건 없지만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며 주변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전망만 갖고 세상을 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마키아벨리 역시 로마사 논고에서 같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국가를 창설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사악하고, 따라서 자유로운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나 자신들의 사악한 정신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악함이 당분간 숨겨져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알려진 경험이 없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모든 진리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시간에 의해 그 원인은 조만간 밝혀지게 마련이다.”


책을 통해 살펴본 그의 시선은 매우 냉철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는 사람보다는 시스템과 제도의 힘을 믿었습니다. 그가 이런 의견을 내비친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성격과 행동양식이 변하지만 시스템은 한 번 세팅되면 계속해서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잘 짜인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 역시도 사람 때문입니다. 올바른 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이를 바꾸길 원합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시스템을 바꾸려 시도하고 그 중 일부는 그 목적을 달성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사람보다 시스템을 믿은 이유는 이 때문이죠. 


혹자는 이런 시선이 거북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변을 살펴보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지하철에 떨어진 취객을 구한 멋진 청년의 이야기,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집을 짓고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미담 등을 듣고 있으면 세상이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 중 더 많은 쪽은 어디일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선한 일을 했을 때보다 악한 일을 했을 때 자신을 더 쉽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나선 부대가 군량이 떨어졌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개인의 양심을 생각하지 않았을 경우 가장 효과적인 선택지는 주민들로부터 식량을 빼앗는 것입니다. 원성을 살 수도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무시하고 진압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 역시 이 의견에 동조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비록 어떤 일이 세상을 바꿀 만큼 위험하고 큰일이더라도 그게 자신과 관련이 없으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대개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이 안되는 일을 굳이 알려고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의 저서인 '도덕감정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일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면, 아마도 오늘밤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이다. 반면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은 사고가 났다고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 사고를 직접 보지 않는 한, 그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코를 골며 잠들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 사건보다 자신의 작은 불운에 더 고통스러워 한다." 


마키아벨리의 입장은 조금 더 강경한 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자유가 주어지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법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된다고 주장한 한비자처럼 그 역시도 철저하게 짜여진 규율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필연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 한 결코 좋은 일을 하려 하지 않으며, 많은 선택이 있고 과도한 자유가 허용되면 만사가 순식간에 혼란과 무질서에 빠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굶주림과 빈곤은 사람들을 근면하게 만들고, 법률은 사람들을 선량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만약 어떤 사회 내에 대립관계가 팽배하다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감춰야 합니다. 그러나 대립의 균형이 깨지면 억눌려있던 욕구로 인해 사회 전체가 병듭니다. 대개 이 욕구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괴롭히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역사를 살펴봐도 이런 사례는 많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로마사 논고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타르퀴니우스 왕가를 추방한 후 인민과 원로원이 일치 단결해 있었다. 귀족은 자신들의 오만함을 버리고 민주적 정신을 따르고 있었으며, 따라서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참을만 했다. 타르퀴니우스 왕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이러한 위장이 드러나지 않았고 그 원인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귀족들은 타르퀴니우스 왕가를 두려워했고, 인민을 학대하면 인민이 그들 편을 들것이라 염려하여 인민에게 점잖게 처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르퀴니우스 왕가가 절손되고 귀족들이 지닌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자, 귀족들은 인민에게 그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온갖 방법으로 인민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후 이와 같은 사례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로마에서는 '호민관'이라는 직책을 만들어냈습니다. 호민관은 시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었으며 귀족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자리였습니다. 호민관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귀족과 시민 간의 대립은 조금씩 감소했습니다.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양측의 생각과 호민관의 역할이 잘 맞아 떨어진 탓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균형입니다. 로마시대에 호민관이 있어 귀족과 시민 사이의 관계를 조율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외부와 나 자신을 조율하는 삶의 법칙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주변에 선과 악 중 어떤 요소가 더 많은지 생각하고 이에 따라 내가 행동해야 될 방식을 정해봅시다. 마키아벨리는 후자인 악이 더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또한 꿈만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며 사람들을 외부의 자극에 둔감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경계해야 합니다. 꿈을 꾸되 현실을 항상 기억합시다. 희박한 성공 사례만을 살피며 막연한 희망에 기대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판단한 뒤 내가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합시다. 운에 기대어 성공할 만큼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제가 쓴 글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아래의 링크를 통해 더 많은 자료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회원님들의 성장을 돕는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인문학 콘텐츠 이메일 구독 서비스 바로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