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공항에서 맞은 해피 뉴 이어!
티켓 값을 아끼려다 결국 상하이에서 공항이 바뀌는 표를 샀다. 1차 목적지는 김포에서 상하이 홍차오공항이다. 동방항공 직원에게 푸동공항까지 어떻게 이동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내가 샀으니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미리 안 알아봤으면 상하이 도착해서도 모를 뻔했다. 누굴 탓하랴. 급하게 저렴한 표 산 내 잘못이지. 남는 시간에 공항 환전소를 찾아 돈을 바꿨다. 택시비가 얼마 나올지 몰라 500위안 (9만 원)을 바꿨다. 속이 쓰렸다. 이렇게 돈 주고 고생할 거면 차라리 직항을 탈 걸 후회가 밀려왔다.
비행기는 정시에 상하이로 출발했다. 예정대로라면 저녁 9시 15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2017년에 마지막 밤과 새해를 상하이에서 보내야 한다. 시내에 숙소를 잡고 잘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비행기에서 온종일 잘 텐데 그냥 공항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부암동 복수자들' 드라마를 태블릿에 담아 밤샐 준비를 완료했다.
저가 항공사가 불편하다는 말이 많은데 이코노미 석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특별한 불편함은 없었다. 8시가 넘은 시각인데 저녁도 나오고 간식도 잘 챙겨줬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라고 편하면 얼마나 편했었나 싶다. 다만 국내 항공사 탔으면 환승으로 마음고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 내부보다는 이런 데서 서비스의 차이를 느낀다. 가격의 차이이기도 하고. 복도석에 앉아 타자마자 잠을 청했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면 보통 단거리는 복도석, 장거니는 창가 석을 달라고 한다. 복도석에 앉으면 안에 앉은 사람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일어나서 비켜줘야 하므로 잠 자기가 불편하다. 반대로 3시간 이하 단거리는 보통 깨어있고 내리기도 편해서 복도석에 앉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밤을 새워야 하니 3시간이라도 미리 자두기로 했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에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임시 체류 비자받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Transfer라고 이야기하니 환승객들만 줄을 따로 세워서 다음 비행기 편을 확인하고 여권을 수거해갔다. 환승객들끼리 모여있으니 이 중에 혹시나 나랑 같이 다음날 뉴욕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있을까 기대가 됐다. 그러면 같이 푸동공항까지 이동하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속한 환승객 대기 줄에 까만 피부에 사람이 보였다. 혹시 미국인이 아닐까 싶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아쉽게 스리랑카로 간단다. 알고 보니 스리랑카 사람이었다. 용기 내 물었는데 스리랑카라는 말을 듣고 체념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좀 더 용기를 낼 걸 하는 후회가 몇 시간 뒤에 찾아왔다.
이제 홍차오 공항에서 푸동 공항까지 이동하면 된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면 우리 돈 만 원 이내로 이동할 수 있다. 문제는 11시면 대중교통이 끊기는데 시간이 9시 50분이다. 서두르면 대중교통으로 푸동 공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공항버스가 택시보다 훨씬 저렴할 뿐만 아니라 빠르고 안전하다. 중국말도 못 하는데 택시 타고 이동하는 것도 약간 겁이 났다. 무거운 가방을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푸동공항 가는 버스를 타려면 터미널 2로 이동해야 하는데, 터미널 1에서 2로 이동하는 버스는 1시간에 1대가 있다. 시간이 10분 정도 있고 이 버스를 놓치면 푸동공항 가는 막차 버스를 놓친다. 대안은 지하철인데 지하철 이용하려면 수레 없이 무거운 가방을 끌고 이동해야 하고, 잔돈도 필요하다. 아니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이 역시 번거로울 것 같았다. 10분 내로 버스정류장에 가면 된다. 정류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카트를 끌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는데 계속 새치기가 이어졌다. 게다가 카트가 커서 한 번에 2 카트 밖에 타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새치기가 계속 이어지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카트를 포기하고 짐을 직접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진작 이럴걸... 그런데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화가 날 새도 없이 이젠 어떻게 이동할지 플랜 B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음 버스는 한 시간 뒤에 온다.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로 터미널 2로 이동해야 했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낑낑거리며 짐을 끌고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택시 정류장에도 줄이 길었다. 그런데 중국 아저씨가 다가와서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길레 터미널 2로 간다고 했다. 왜 가냐고 해서 푸동공항 가는 버스 타러 간다고 하니까 이미 막차가 끊겼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분명 11시까지 막차가 있었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이미 막차가 끊겼다고 한다. 마음이 흔들렸다. 애써 택시 타고 터미널 이동했는데 버스가 없으면 다시 택시 타고 푸동공항으로 가야 했다. 아저씨가 푸동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600위안 (10만 원)을 불렀다. 인터넷에서 알아봤을 때는 200위안(3만 5천 원)이면 가는 거리였다. 버스로는 우리 돈 3-4천 원이면 갈 수 있다. 비싸다고 그냥 택시 줄을 섰더니 400위안을 불렀다. 고민하다가 300위안(5만 5천 원)이면 타겠다고 했는데 아저씨가 380위안을 불렀다. 그냥 돌아서서 택시 줄을 서로 갔더니 내 짐을 끌고 가며 알겠다고 300위안에 가자고 한다. 300위안도 바가지요금이지만 나도 지쳤고, 영어도 통하고 해서 그냥 타기로 했다.
택시에 태우더니 5분만 기다리라고 하고 어딘가로 갔다. 혹시나 했는데 잠시 후 손님 한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근데 익숙하다 했더니 이게 웬걸, 아까 입국 심사받을 때 미국 가냐고 물어봤던 스리랑카 사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한테 먼저 600위안에 푸동공항 가자고 했더니, 이 친구가 비싸다고 안 간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택시기사가 그러면 다른 손님 자기가 찾아올 테니 300위안 내고 가자고 한 거다. 결국,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각각 300위안씩 주고 간 셈이다. 12월 31일 세 배를 받는 아저씨의 빅 픽처였다. 처음부터 이 친구와 같이 이동 계획을 세웠으면 로컬 택시를 타고 200위안을 반반 내고 이동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더라면 바가지요금을 안 냈을 텐데 말이다.
택시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친구가 한국말을 할 수 있었다. 이름은 라크말(lakmal)이고 나이도 나랑 동갑이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4년 동안 일했단다. 영어로도 소통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했다. 입국 수속하는 곳에서 내가 말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고 택시로 이동하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푸동공항에서 다음날 11시 비행기로 뉴욕에 가고, 이 친구는 오후 2시에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였다. 숙소가 있냐고 물어보니 이 친구도 공항에서 노숙 할 계획이었다. 마침 잘됐다 싶었다. 짐이 많아 어디 두고 화장실 가기도 불안했는데 같이 공항에서 머물기로 했다.
1시간 뒤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둘이서 공항을 둘러보며 12월 31일 2017년의 마지막과 18년 새해를 맞을 장소를 찾아 나섰다. 공항에는 우리처럼 노숙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웬만한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차지됐다. 둘러보다 발을 뻗고 누울 자리를 겨우 찾았다.
드라마 대신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웠다. 국제이주 기구에서 일하고, 이주민 사회통합을 석사 논문으로 연구했는데 왜 한국에 왔는지, 한국 직장은 어떤지, 한국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등 이주민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매우 궁금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탈리아 아니면 한국으로 이주노동을 간다고 한다. 다른 아시아 국가는 임금이 적고, 이탈리아도 이주 비자를 받는데 돈이 많이 들어간단다. 그런데 한국은 비자 발급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고 아시아 문화권이어서 문화와 정서가 비슷해서 가장 선호한단다. 생각해보니 아시아에서 고용이 가능한 국가는 한중일 3 국일 텐데, 중국은 자국의 저렴한 노동력이 있어서 외국인 인력이 필요 없을 것이고, 아마 일본도 이주노동자를 많이 받을 텐데 고용허가도 어렵고 물가도 비싸서 한국이 최고 선호되는 곳인가 보다. 라크말은 핸드폰에 저장된 스리랑카의 사진과 영상들을 보여주며 스리랑카를 소개했다. 스리랑카 하면 실론티만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라크말이 다른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데리고 왔다. 스리랑카 사람이었다. 다음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단다. 근데 이 친구가 마침 뉴욕에서 스리랑카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뉴욕 날씨와 생활을 물었다. 사실 이틀 전에 비행기표 산만큼 현지 정보를 하나도 모르고 왔다. 미국에서 5년을 살았고 10년 전 뉴욕을 한 번은 가봤다고 자만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친구가 말하길 지금 뉴욕은 눈폭풍이 오고 난리가 났단다. 나보고 따뜻한 옷 있냐고 물어보더니 내 옷의 두께를 직접 만져보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착해서 뉴욕의 상황을 보고 깨달았다. 라크말이 데려온 친구 덕분에 뉴욕의 현지 상황과 집 값 정보 등을 구했다. 아스토리아나 롱아일랜드에 집을 구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astoria에 집을 구했다.)
혼자서 드라마 보면서 새해를 맞을 뻔했는데, 스리랑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새해를 맞았다. 공항 의자가 불편해서 몇 번 깼다 잠들기를 반복했지만 셋이서 짐을 봐주며 안전하게 새해를 맞았다. 번거로운 공항 이동과 바가지 택시요금을 냈지만 그 돈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덜 쓰렸다. 라크말은 한국에 가면 또 보기로 했고, 다른 친구도 뉴욕에 돌아오면 만나기로 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스리랑카 사람들을 만나서 밤새 이야기를 나눠보겠는가. 싼 티켓 덕분에 안해도 될 고생이 있었지만 덕분에 친구도 얻었다. 뉴욕행 싼 티켓의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