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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Cho Jan 29. 2018

4. 100년 만의 한파, 수도가 터져버린 뉴욕 호스텔

수도관이 터져서 체크인이 안된다고? 한밤 중에 나가라니... 

비행기 표를 사고 바로 호스텔 예약을 했다. Booking.com과 Hostelworld.com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가장 저렴한 호스텔이 1박에 25불, 평균이 35불 정도 었다.  10년 전에 맨해튼 할렘가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8인실에 1박에 15불로 머물렀었다. 10년 전 기억이니 어느 정도 올랐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다행히 외각 지역 도시에는 아직 저렴한 숙소가 있었다. 뉴저지 유니온시티에 1박에 15불인 숙소도 보였는데, 문제는 뉴저지와 뉴욕은 다른 도시여서 교통패스가 호환이 안된다. 매일 버스로 왔다 갔다 하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비싸더라도 뉴욕에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뉴욕에도 퀸즈나 브로클린에 20불대에 숙소들이 보였다. 어차피 1주일 내로 집을 구해 나갈 계획이니, 아무 곳이나 가장 싼 곳을 찾기로 했다. 도시를 바꿔가며 검색을 하는데 처음에는 안보였던 호스텔이 검색창에 나왔다. 브로클린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는데 지하철 역에서 가깝고, 비용도 1박에 20불이었다. 개인 집처럼 생겨서 에어비엔비처럼 개인 집을 랜트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는데 잠만 잘 수 있으면 아무 상관없었다. 예약하고 이메일로 주인과 연락을 주고받고 출국했다.

광고에 올라온 숙소 사진...


공항에 내리자마자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안된다. 분명 내가 도착하는 날짜와 시간을 알고 있고, 자기가 집에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일단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우버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담장이 왔다. 

"We are having an issue with water, you cannot check in right away, I apologize." 


뭔가 물 관련 문제가 생겨서 체크인을 할 수 없다는 대답이 왔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 날씨에 무거운 짐을 들고 갈 곳도 없었다. 들어가서 기다리는 것은 괜찮은 지 물어봤다. 가능하다는 답장이 왔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우버로 내가 요청한 주소에 도착했는데 일반 주택가다. 역시 호스텔이 아니라 개인집 방을 빌려주는 곳인가 보다. 주소를 찍고 온 곳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264번 집.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흑인 가족이 식사 중이었다. Hello 인사를 하는데, 흑인 아줌마가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 Who are you? 예약한 호스텔로 찾아왔다고 여기 호스텔 아니냐고 물으니, Get Away, Right now!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러면 위에 층이 호스텔이냐고 나는 주소보고 찾아왔다니까 Go Away, Right away!라는 성난 목소리에 바로 나와 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싶어 주소를 보니 호스텔은 246번 집이다. 공항에서 급하게 오느라 264번을 찍고 온 것이다. 이미 우버 택시는 가버렸고, 어떡하나 싶었는데 미국은 숫자를 보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어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집작이 됐다. 길 한쪽은 홀수, 반대쪽은 짝수로 번호가 매겨져서 64 62 60 58... 조금만 걸어가면 246번이 나올 것 같았다. 문제는 너무 추워서 손이 얼 것 같았다. 몽골에서도 입었던 오리털 패딩을 입었는데 손이며 발이며 거센 바람에 얼굴까지 다 얼어붙었다. 잠깐도 손을 주머니 밖으로 꺼내놓기가 어려웠다. 5분 거리를 걸어서 짐을 끌고 호스텔을 찾았는데 1시간을 걸어온 것 같다.

1월 첫 주, 눈폭풍이 몰아닥친 뉴욕


246번 집으로 들어가니 다행히 예약했던 숙소가 맞았다. 데니스라는 흑인 여성이 반겨줬고, 다른 남자 주인 한 명이 함께 있었다. 데니스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미안하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바닥이 물바다가 됐다는 것이다. 짐작해보니 동파로 수도관이 터져 물난리가 난 모양이다. 마침 내가 쓸 방이 지하실이었나 보다.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수리공들은 저녁에 올 예정인데 그때까지는 방을 사용 못한단다. 갈 곳도 없고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나 심각하길래 보여주지도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 잘 수 있냐니까 당연히 잘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부엌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그제는 공항 환승 걱정으로 잠을 설치고, 어제는 푸동공항에서 노숙하고, 겨우 숙소에 도착했는데 물난리라니... 다른 것보다 일단 샤워를 하고 싶었는데, 동파가 돼서 물도 안 나왔다. 어쩐지 생수를 사 와서 계속 냄비에 부어 넣고 있었다. 왜 물을 끓이냐고 했더니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따뜻한 공기가 집에 퍼지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데니스는 미안한지 괜히 계속 말을 걸고 미안하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오늘 밤 잘 수 있으면 괜찮다고 위로를 건넸다. 


배가 고팠던 찰나에 데니스가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다. 뭐든지 사다 주겠다는 것이다. 난 아무거나 괜찮다고 네가 먹는 것을 같이 먹겠다고 했는데 피자와 치킨을 사 왔다. 뉴욕에 도착한 새해 첫날의 첫 끼였다.


5시쯤 수리공들이 와서 공사가 시작됐다. 때리고 부수고 끼워 맞추는 소리들이 들리니 뭔가 고쳐지는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예약한 다른 손님들도 오기 시작했다. 일행 두 명은 짐만 맡기고 나가버렸고, 프랑스에서 사는 베트남 청년 한 명이 나와 같이 기다리게 됐다. 오늘 밤 같이 묵게 될 사람들이다. 이곳은 2층 집이었는데, 2층 방 2개, 1층 방 3개, 지하 모두 세를 주거나 에어비엔비로 손님을 받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수리공들이 떠났다. 화장실에도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데니스가 내려가서 한참을 정리하니 9시가 넘어갔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래층에서 계속 싸우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 주인이 집을 나가버리고 데니스는 아래층에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손님인 나도 쉽지 않은 하루지만 집주인에게도 힘든 새해 첫날이었던 것 같다.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바닥은 그런대로 정리가 됐고, 벽에 세워둔 침대만 바닥으로 옮기면 됐다. 아마 물난리가 나면서 급하게 침대를 옮겨갔던 것 같다. 남자 주인은 나가버리고 데니스도 울고 있고, 나랑 베트남 청년이 침대를 옮겼다. 누가 하던 빨리 정리하고 쉬고 싶을 뿐이었다.

대충 세팅이 끝난 침대. 아직 바닥에 흙 먼지가 남아있는데 있을 만 했다.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고 씻고 짐을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위층에서 계속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You can't do this to me." 네가 나한테 이래선 안돼! 데니스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싸움이 점점 커졌다. 나는 과연 이곳에서 잘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옆에 베트남 청년에게 혹시 모르니 다른 숙소도 알아보자고 같이 찾기 시작했다. 이미 밤 10시가 넘었는데 이 많은 짐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같이 갈 친구가 한 명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니스는 울며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더 심각해졌다. 알고 보니 상황은 이랬다. 집주인은 데니스의 남자 친구였고, 남자 친구는 1층과 2층을 관리하고 데니스는 지하를 관리했다. 그런데 자기는 호스텔 서비스만 관리하는 것이지 건물은 남자가 책임자이므로 오늘 물난리의 상황 정리는 남자 친구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니스는 자기가 이 상황을 책임지게 된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오늘 하루 종일 물난리부터 마무리까지 겪으면서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 하루를 아무 탈 없이 잘 잤으면 좋을 뿐이었다. 11시가 넘어서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데니스가 내려왔다. 그러면서 다른 숙소로 옮겨달라는 것이다. 둘 사이 법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분명히 숙소를 옮기라고 경고를 했으니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하거나 쫓아내도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숙소를 알아보려면 진작 다른 곳으로 옮기 수 있었는데 괜찮을 거라며 안심하라고 했던 사람이 데니스였다. 지금 와서 다른 숙소를 알아보라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가야 하나. 날벼락이었다. 


데니스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 것 저것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다시 베트남 청년과 숙소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지금 옮겨도 어디를 가겠냐며,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상황을 보자고 했다. 데니스는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가면서 질질 짐을 흘리 길레 따라가서 주어주며 내가 오히려 힘내라고 위로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나인 것 같지만 말이다.


다행히 그날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데니스는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금 결제해달라며 대신 어젯밤 숙박비는 안 받겠다고 했다. 긴 하루였다. 


상황이 정리되고 뉴욕에서 첫날밤이 지나서야 뉴스를 봤다. 알고 보니 뉴욕에는 100년 만의 한파가 찾아왔던 것이다. 강물이 얼어서 오리 다리가 강물에 얼어붙고, 학교와 회사들도 문을 닫는 재난 상황이었던 것이다. 100년 만의 한파는 호스텔의 수도관을 얼려버렸고, 나는 그 한파의 최절정 순간의 뉴욕을 찾은 것이다.

아무런 준비가 안된 채로 말이다. 이러다 내 일정이 얼어붙는 것은 아닌지 첫 시작부터 걱정이다. 

 

정리가 대충 끝나고 난 데니스의 호스텔. 이 곳에서 1월 1일부터 첫주를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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