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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가다 Jan 24. 2017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이야기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부인도 아이도 없는 그는 심장병으로 인해서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정부 보조금(수당)을 신청하였지만 기각당하였다. 어렵고 까다로운 서류 절차와 관료주의의 만행, 다시금 보조금 신청을 재청해야 하는 그에게는 산 넘어산의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그런 그에게 관공서에서 만나게 된 딱한 처지의 케이티와 그녀의 가족들을 도우려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만다. 그런 그들은 서로가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내면의 상처에서 고뇌하는 그들에게 곧 닥칠 어려움도 예고된 바로 진행되는 것이 이 영화의 서사 구조라 말할 수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에서 말해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 그리고 사회적 문제는 현재 우리가 앉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에 하나하나의 장면 연출이 가슴에 너무 와 닿기에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잔인하게 리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회적 약자인 그들은 매 순간 고독과 외로움, 실업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냉철하고 투박하게 그려진 이 영화는 어떠한 곳에서도 아름답게 그려진 영상미란 없다. 그 저 투박하고 거칠게 그려진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벽(세대 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권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잘살기 위한 그들 스스로의 격렬한 투쟁을 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바라보았고 또 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의 기억 속에 그려진 이 영화의 장면들을 말하고 싶다. 다니엘은 정부 보조금(수당) 신청을 인터넷을 통해 다시 해보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매개체의 사용에 극심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그에게 옆집 사는 젊은 사내의 도움을 받아 결국 그 서류를 완성하게 되었고 젊은 청년은 자기가 중국에서 제조된 나이키 신발을 중국 친구의 도움으로 받게 되었고 시중에서 150달러이지만 자기는 80달러에 수입하여 팔 수 있다는 자기의 비즈니스를  다니엘에게 말하게 된다. 여기에서 구세대와 신세대가 느끼는 노동에 관한 가치관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신성한 노동으로 피땀 흘려 일을 하였던 세대에게 젊은 친구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업 아이템이자 수단을 말하였던 것이었다. 그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돈)이며 문제인 것이고 현세대의 가치관의 충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 편 여성과 아이 그리고 빈곤 문제. 케이티는 런던에서 뉴캐슬이란 조그마한 동네로 이사를 왔다. 낡아 빠지고 더러운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없는 지경이다. 그런 그들을 돕는 다니엘은 먹을 것조차 부족한 그들 사정을 알게 되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식량 배급소로 그들을 데려가게 되고 배급을 받던 그녀는 극심한 배고픔에 본능적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무언가 이질적 장면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우리의 부모님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다.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은 몸을 파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게 된 다니엘 그녀의 현실적 고통을 덜기에는 현실의 벽이란 장벽은 너무나 높아 보인다. 점점 멀어지게 되는 그와 그녀 가족들. 그런 다니엘에게 맞닥 떨어진 관공서의 최후통첩 그리고 다니엘의 억압과 분노. 그들을 향한 존엄받지 못한 사람의 최후의 표현은 하나의 인격체로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우해달라는 저항이자 아름다운 아티스트였다. 간결하며 포장 없이 이루어진 이 장면이야말로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그저 그렇게 잠시 스쳐가고 외로이 집에 방치된 채 다시금 그의 생활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를 찾아온 케이티의 딸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그녀의 딸. 문이 아닌 마음의 벽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그들의 대화. 마음의 장벽은 종이 한 장과도 같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런 다니엘을 돕는 케이티 그가 이 사회의 어른으로써 열심히 살아온 그가 정정당당히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도우려 하지만 정말 비현실 같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암울한 우리의 미래를 냉소적으로 그저 물 흐르듯이 흘려보내는 것 같다. 여기 오늘 죽어간 우리의 사람들이 있노라고 말이다. 어느 한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정치적 색깔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며 어디에 소속되는 것도 아닌 인간으로서 그저 사는 것이었다. 이 영화를 빚대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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