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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22. 2019

영화 <우상> -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닌 '이미지'

영화 의미와 해석.. 뜻은 깊었으나 이건 지나쳤다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한 시사회로 관람하였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 이하 영화 <우상> 관련 이미지 출처 동일


-의미와 그 해석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볼 때, 우리가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요소는 그들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 즉 ‘이미지’밖에 없다. 최근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승리, 정준영 사건을 보라. 성공한 ‘아이돌(IDOL=우상)’ 승리의 이미지는 바닥부터 올라온 ‘위대한 승츠비’였고 정준영은 1박 2일의 유쾌한 막내였다. 그러나 지금 낱낱이 파헤쳐져 드러난 그들의 속, ‘진실’은 어떠했는가?

출처 SBS 뉴스

우상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근거해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구명회(한석규)는 시작부터 끝까지 우상이다. 그는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최우선 목표는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임기 내내 이미지를 관리한다. 구명회 역시 당선을 위해 자나 깨나 '우상'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검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은 몸에 배어 있다. 영화 초반부, 그는 잔뜩 썩어 보이는 동료 정치인들과 만나 "국민들이 (겉모습에 속아줄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가 않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같은 정치인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노회한 국회의원(김명곤)은 치킨을 뜯으며 '내 다 안다'는 투로 구명회를 어른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겉’ 뿐이다. 영화 중반부, 성당에서 만난 구명회가 "왜 접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자네에겐 스토리가 있다"며 "반대하는 구색만 맞춰 달라고. 이건 내 사업이 아니라 VIP 사업이잖아?"라고 답한다. 이 영화가 정치인(우상)을 보는 시선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대사다.


구명회의 이미지는 만인의 우상이다. 그렇기에 그가 직접 저지르지 않은 '아들의 ' 때문에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정치를 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래서 모두가 구명회를 돕는다. 대중들은 피해자인 설경구의 집에 탓을 돌리며 “너 때문에 구명회 같은 우상이 정치를 못 한다”고 비난한다. 심지어 유일한 목격자마저 “의원 님이 이런 문제로 의정 활동 막히시면 안 되지 않느냐”라며 거짓 증언을 뱉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미지만 보고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속을 파고들면 저건 아들만의 죄가 아니다. 온 집안사람이 사체 유기 범죄자다. 특히 '우상' 구명회는 정치인으로서 성공을 위해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사람까지 죽이는 사이코패스다. 그는 우상으로서의 자신을 공고히 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내까지 죽음으로 내몰며, 자신의 얼굴까지 기꺼이 불로 태우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중은 진실을 알 도리가 없고 구명회는 여전히 우상으로 남는다.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닌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다.

중식(설경구)에게 우상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는 '핏줄'이다. 핏줄을 잇기 위해 중식정신지체 아들 '부남'신원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중국 출신 련화(천우희)와 결혼시킨다. 그런데 련화는 창녀다. 련화는 중식에게 부남의 자식을 뱄다 말하지만, 몸을 파는 일을 하는 그녀 배 속의 아이가 정말 부남의 아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중식은 맹목적으로 련화를 감싼다. 그녀가 사고 난 차에서 도망친 후 다시 창녀 일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또 심지어 한국으로 오기 위해 중국에서 사람까지 죽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중식은 그녀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심지어는 아들을 죽인 구명회 휘하로 들어가 그를 공개 지지까지 하기에 이른다. 자기가 우상으로 믿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중식에게 중요한 것은 련화 배 속 아이가 정말 부남의 아이인가 같은 '진실'이 아니라 핏줄이라는 '이미지'다.

련화에게 우상은 한국이다. 한국에 오기 위해 사람까지 죽였다. 오고 나서는 정착을 위해 몸을 팔았으며, 심지어 생전 처음 만난 정신 지체아와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뱄다. 하지만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때로는 납치를 당하고, 출신을 두고 정면에서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 그녀는 하얼빈에서 온 청부 살인업자에 의해 유산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그녀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혈연, 지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뜻한다. 한국인의 아이를 배고, 한국 땅 위에 두 발 딛고 서 있어도, ‘조선족(비록 그녀는 하얼빈 출신일지라도)’의 낙인은 결코 벗어 버릴 수 없다는 의미다. 그녀는 애초부터 절대 온전한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약자들은 모두에게 무시당한다. '우리 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중식이 경찰에게 소개받은 ‘정의파’ 변호사는 중식을 도와주면서도 일상적으로 중식을 무시하는 언행을 한다. 중식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낚아채 대신 통화를 하기도 하고, 중식이 자료를 읽어보려 하자 그냥 내 설명만 들으면 된다는 듯 자료 뭉치를 빼앗아 가져 가 버린다. 그에게 정의란 ‘악덕 정치인’의 실체를 밝혀내고 그를 감방에 처넣는 것뿐이다.


영화의 결말은 새롭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틀을 따르지 않는다. 이야기의 승자는 악독한 강자이고, 패자는 발버둥 친 약자다. 약자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중식은 아들과 손자로 이어지는 혈육을 모두 잃고 덧없음에 울부짖었고, 련화는 한국인도 되지 못하고 구명회도 죽이지 못한 채 악에 받쳐 죽었다. 우상의 완전한 상실을 겪은 중식은 ‘국가의 우상’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머리를 터뜨려 버림으로써 맹목적인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덧없음을 호소하려 하지만, '이미지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중식은 그저 감히 '나라에서 가장 높은 이'의 머리를 날린 범죄자일 뿐이다. 모든 것을 잃은 약자 중식의 종착지는 감옥이다.


반면 가족을 모두 희생시키고 자기 얼굴까지 화염에 녹여버린 구명회는 정치인으로서 그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지켰다. 그는 진정한 우상이 됐다. 그가 마지막에 강변한 연설의 내용을 우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프로모터에 그 의미가 나열되고는 있으나, 실제 구명회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연설을 듣는 관객들의 표정은 황홀하다. 그들은 ‘우상’의 기괴한 웅얼거림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 짓고 격렬하게 박수 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드러나는 이미지(기표)이지 결코 실체(기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술적으로
감독이 영화에 담고자 했던 뜻은 깊었으나, 잘 만든 영화라고는 할 수 없겠다. 문제점이 너무 많다. 일단 연기력이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등 연기력 하나로는 대한민국 전체 열 손가락에 들어갈 명품 배우들이 주연을 맡고 있으나, 그 외 기타 조연들의 연기력은 끔찍한 수준이다. 특히 구명회의 아내 역을 맡은 분은 마치 외국인이 처음 한국말을 배워 연기를 하는 듯했다(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엔 구명회 아내도 해외 교포 출신이라든지 하는 반전이 있으려나 생각하기도 했을 정도다. 또 한 가지, 설경구의 연기력은 분명 훌륭하나, 그가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가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 베테랑에게는 이제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완전히 다른 배역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다음은 연기력의 문제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음향 기술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바로 대사 전달력이다. 영화 <우상> 후기들을 보면 ‘대사가 안 들린다’는 말이 정말 많다. 사실이다. 분명 한국말인데 도통 알아듣기가 힘들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면 적당히 이해를 해줄 수는 있겠지만 이건 심각한 정도다. 그냥 말을 해도 알아듣기 힘든데 조선족 어투까지 흉내 내니 듣기 평가를 하는 기분. 대사 때문에 놓친 부분도 상당하다. 예컨대 나는 련화가 왜 2000만 원 운운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분명히 그녀가 자기 입으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위적인 캐릭터도 아쉽다. 특히 한석규의 어머니. 저건 너무 억지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거의 맥거핀에 가깝도록 남발된 다양한 은유들. 그 때문에 실종된 개연성 등은 영화를 더욱 짜임새 없게 비춘다. 그런 것들이 과하게 쌓인 탓에 쓸데없이 러닝타임도 너무 길어져서 후반부로 갈수록 몹시 지루하다.




-최종적으로
<곡성>이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인 성공을 모두 거머쥔 이후 이런 류의 미스터리+은유 덩어리 영화들이 종종 나오는 거 같다. 결과적으로 우상은 상업 영화로서는 대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에는 특히 입소문이 중요한데,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대중들이 남에게 추천할 작품이라고 보기엔 너무 복잡하고 재미도 없다. 감독은 <우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는데, 별로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뭐야 이게?”가 훨씬 많이 나올 것 같다.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는 내용과 결말은 <곡성> 같은 류지 이런 게 아니다. 상업 영화가 심도 깊은 주제를 담아도 좋고, 구성이 복잡해도 좋지만, 어느 정도는 친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상업 영화는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왼쪽부터 한석규, 이수진 감독, 설경구


★★☆(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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