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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09. 2019

<캡틴 마블>(2019) - 이거 페미 영화 아니다

고전 히어로 무비에 가깝다

*스포 좀 있음ㅇㅇ

오피셜 2차 예고편

히어로 홍수 시대에 접어든 지 좀 됐다. 남녀노소 히어로물에 매우 익숙하다. 거기다 마블 시리즈가 착착 진행되면서 <어벤져스>같은 초대형 프로젝트 영화조차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벤져스 이거 옛날같음 감히 상상도 못한 영화다. 아이언맨이랑 헐크랑 캡아랑 토르랑 무슨 히어로 무슨 히어로 다 모아서 짜잔 하는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로 구현한다고? 진짜? 했던 게 불과 10년 전이다. 2019년 현재 히어로 영화는 규모가 문자 그대로 은하 파괴급으로 커졌고, 사람들 눈높이도 어벤져스 급으로 높아졌다. 이제 어지간한 내용으로는 히어로 단독 무비로 큰 성과를 보긴 힘들다.

얘네가 한 영화에 다 나오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나오는 단독 무비들은 대체로 기존 히어로 무비에 없었던 색을 덧입혀 나온다. 예컨대 가오갤이나 앤트맨 시리즈는 코미디를 왕창 버무렸다. 이게 최근에 대세인데 다른 제작사 히어로인 데드풀은 코미디 컨셉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대성공했고, 상진지 스토리로 관객들의 멸시를 받았던 토르 시리즈도 라그나로크부터 코미디를 장착하며 화려한 부활을 했다.(사실 부활이라고 하기도 뭐한 게 이 시리즈는 애초에 살아 있었던 적도 없음. 토르가 어벤져스땜에 인기 모은 거지)


반쯤 예술영화였던 <블랙팬서>는 최초로 흑인 단독 히어로를 내세우며(물론 핸콕 같은 잡 영화가 있긴 했음) PC 감성을 건드림과 동시에, 때리고 부수는 히어로 영화로서는 전례없이 미장센에도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 시각적 요소 뿐 아니라 와칸다의 아프리카식 악센트와 킬 몽거의 미국식 악센트를 대조하는 등의 음성적 부분이라든지, 그렇게 잔혹해보이던 킬 몽거가 사실 순수 악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악당이었다는 점 등 기존 마블 히어로 무비에 없던 '혁신'도 여러가지 시도했다. 사실 블랙팬서는 애시당초 기획 목표 중 하나가 히어로 무비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었으니 시작부터 결이 좀 다르기도 했음. 물론 작품상 수상엔 실패했지만(작품상은 <그린북>이었다) 후보까지 오르는 데는 성공했다. 상업적으로도 대박을 쳤다. 특히 인종 이슈가 곧 역사인 북미에서는 <인피니티 워>보다 블랙팬서를 더 많이 봤다. 북미 역대 박스오피스 3위가 블랙팬서다(참고로 1위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2위는 <아바타>).

정정당당 1:1 맞다이로 졌으면서 돌아와 개논리로 왕위 찬탈한 비겁한 색휘...(좌)

또는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같은 큰 규모 영화에 먼저 딱 집어넣어서 인지도를 높인 다음에 단독 무비를 뽑는 경우도 있다. 앞서 말한 <블랙팬서>나 <아쿠아맨>, 추후 개봉할 <플래쉬> 등이 그렇다.


요번에 나온 <캡틴 마블>은 위 두 개 전략을 잘 섞어서 시작했다. <인피니티 워>에 본격 등장은 안했지만 쿠키 영상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고, 영화 자체의 결은 블랙팬서랑 비슷하게 PC로 잡은 듯 보였다. 최초의 흑인 히어로 대신 마블 최초의 여성 단독 히어로를 내세우면서 개봉 전부터 한참 뭐 페미 영화니 뭐니 말이 많았다. 물론 '논란'이라는 점에서는 배우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부분도 있었고(스탠 리 추모 관련), 또 억울하게 공격을 받아 아니 뗀 굴뚝에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브리 라슨이 "백인 남자들은 이 영화 평가하지말라"고 인터뷰했다는 거, 교묘하게 짜깁기한 가짜 뉴스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나도 "아, 이거 좀 단단한 여성주의 영화겠구나"했지. 성장이야기나 다름 없는 히어로 단독 무비 첫번째 시리즈는 이제 너무 뻔하고 재미가 없으니 여기다 '여성'이란 요소를 톡톡 뿌렸구나 싶었다.

근데 까고보니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 요소가 들어있다고 부르기도 힘든 구성이더라. 그냥 진짜 존나 센 히어로 주인공이 우연히 여성이었던 정도라고 하면 맞겠다. 일반적으로 여성주의 영화들은 말 그대로 주인공을 위시한 여러 여성 조연 캐릭터들이 본격적으로 극을 이끌고 남성 캐릭터는 보조 역할을 하는 그림으로 그려지는데, 이 영화는 그냥 캡틴 마블만 강조되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남자고 여자고 다 존재감이 별로 없다. 닉 퓨리나 변신맨(이름이 기억 안난다) 정도가 기억에 남긴 하는데 포지션이 코믹 기믹이라 그렇고 당연히 얘네도 다 남자임. "여자가 무슨 전투기 조종사를 한다고 그랰ㅋㅋㅋ"같은 옛날 미국 성차별 문제가 조금 거론되고, 이를 극복하는 모습도 나오지만 너무 전형적인 사례라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캡틴 마블>은 이도저도 아닌 그냥 존나 평범하고 무난한 영화가 돼 버렸다. 초창기 히어로 무비 같다. 전형적인 영웅 성장 스토리에 전형적인 악당, 전형적인 반전. 옛날에 <앤트맨>을 보고 마찬가지로 존나 전형적인 구성이라고 까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래도 앤트맨은 '크기 조절'이라는 매력적인 능력이 있어서 이 능력을 다양하게 변주해 가며 영화에 재미를 넣을 수 있었다. <앤트맨과 왓스프>에서는 아예 이 능력 하나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감. 하지만 캡틴 마블은 능력도 별로 특이한 게 없다. 그냥 초사이어인 돼서 하늘 날아다니며 다 부수는거다.. 그냥 존나 세기만 하다. 무난한 영웅에 전형적인 스토리라는 한계를 커버하기 위해 블랙팬서처럼 영화 자체에 새로운 '의미'를 집어넣고 또 그 새로운 의미에 맞는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했지만 <캡틴 마블>은 그러지 못했다. 할 거면 좀 더 과감했어야지...

<캡틴 마블> 공식 2차 예고편 중 일부

아, 근데 사실 블랙팬서는 기믹부터 수 천년간 존나 센 피가 이어져왔다는 컨셉이라, 아 얘가 원래 이렇게 약했는데요, 이러이러해서 히어로가 됐고요, 저러저러한 사연으로 각성을 했답니다 하는 찐따같은 구조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됐다는 매우 훌륭한 이점이 있긴 했음. 그래서 지루하지 않게 내용을 짤 수 있었던 거고.


여튼 또 하나 부족해 보였던 점을 얘기하자면, 90년대 초중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 배경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는 거. 시대배경이고 지랄이고 그냥 첨단 우주 전투기 가지고 슝슝 날라대니 여기가 현대인지 90년대인지 알게 뭐야... 그나마 미국 첫 씬에 등장했던 블록버스터 비디오 가게 정도가 미국인들 향수를 불러 일으켰으려나?

'넷플릭스 땜에 망한 비디오 가게'로 역사에 길이 남은 비운의 주인공

여튼 <캡틴 마블>, 기대 많이 모은 영화였는데 아쉽다. <인피니티 워2>라는 든든한 방패막이 있다고 너무 안일하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인피2 때문이라도 이 영화가 망하기는 쉽지 않지. 하지만 이 정도 퀄리티라면 대박을 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음. 근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꼭 캡틴 마블이 인피니티 워를 앞두고 들어갔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힘으로 타노스랑 다이칠 수 있는 토르 있고, 반전 키 역할 해줄 앤트맨이 있는데 캡틴 마블이 인피니티 워에서 어떤 특수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듣기로는 캡틴 마블이 히어로 중 최강이라고는 하던데 그렇다고 타노스를 저렇게 두들겨 팰 순 없잖음;; 그러면 인피2 단편 영화 되지. 캡틴 마블 자체보다는 그녀의 친구 변신맨들이 활약해 주려나 싶기도 하다.


여튼 영화 자체 퀄리티는 다소 시대에 처진 것 같아 아쉽지만,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단독 무비라는 의의는 높게 쳐 줄 수 있는 영화. 뭐, 마블 세계관 최강이 여성이라는 점도 의의라면 의의겠다.



★★★(3.0/5.0)




p.s) 사무엘 L 잭슨이 젊어져서 나온다... 젊은이의 노인 분장은 익숙한데 이제 노인이 젊은이 분장도 할 수 있더라


p.s2) 영화 본편보다 쿠키 2개가 핵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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