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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Feb 18. 2019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뭐 어때? 드래곤볼인데

본격 드래곤볼 '정사'로 들어온 슈퍼빌런 브로리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는 드래곤볼 팬 입장에선 꽤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비공식 드래곤볼 최강 캐릭터 중 하나인 ‘브로리’가 이 작품을 기점으로 드디어 정사(正史)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드래곤볼은 공식적으로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가 직접 감수를 한 작품들만을 정사로 인정하고 있다. 즉, 토리야마가 감수를 하지 않은 작품은 드래곤볼의 ‘진짜 이야기’가 아닌 페럴렐 월드(평행세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초고퀄 팬픽 정도로 볼 수 있다. 드래곤볼 정사는 ‘드래곤볼 - 드래곤볼Z - 드래곤볼 슈퍼 - 드래곤볼 슈퍼 극장판’ 까지만 해당한다. 예컨대 <드래곤볼 GT>는 토리야마의 감수를 거치지 않은 작품이라 정사가 아니다. 고로 GT에서 나온 ‘초사이어인 4’같은 개념은 원래 드래곤볼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GT의 결말 역시 원작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드래곤볼 슈퍼의 첫 극장판인 <신들의 전쟁> 이전에 나온 총 17편의 극장판들도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정사가 아니다.

<드래곤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가 캐릭터

하지만 정사가 아니라고 팬들이 극장을 찾지 않은 건 아니다. 드래곤볼Z 극장판 시리즈는 대부분이 20억 엔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극장판에 등장한 고유 캐릭터 중 특별히 매력적인 악당은 정사 캐릭터 만큼이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캐릭터가 바로 ‘브로리’다.

가장 매력적인 극장판 캐릭터 '브로리'.. 인상깊은 고유 스토리,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담긴 눈매, 초사이어인이 됐을 때 동공이 없어지는 설정, 화려한 헤어스타일, 엄청난 근육과 덩치, 강한 폭력성, 그리고 그 무자비한 강력함 등을 품은 '번외 캐릭터' 브로리는 결국 25년만에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의 인정을 받아 정식 캐릭터로 드래곤볼 세계에 입성하게 됐다


- '브로리'란 누구?

브로리가 처음 드래곤볼에 등장한 때는 바야흐로 1993년 3월이다. <드래곤볼Z 극장판 8기 - 불타올라라!! 열전, 열전, 초격전> 편의 최종 보스로 등장했다. 당시 브로리는 손오공과 베지터 이외에 살아남은 또다른 사이어인이자 갓난아기 시절 이미 전투력 1만을 초과한 돌연변이 개체로, 원작의 프리더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전설의 초사이어인’이 바로 그라는 설정이었다. 무식할 정도로 강력한 힘과 매력적인 외모는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극장판 캐릭터로는 이례적으로 10기, 11기에서 추가로 2차례 더 연달아 등장하기도 했다(비록 11기에서는 온전히 '브로리'라고 하기는 힘든 모습이었지만).

구 극장판에서 등장했던 브로리

하지만 이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는 브로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아니기도 하고, 또 브로리를 상징하는 무지막지한 근육이 토리야마가 선호하는 슬림 스타일에 배치됐기 때문이었다고. 그렇게 브로리는 "브로리vs마인부우 누가 이김?" 같은 이루어지지 못할 가상 대결로나 간간히 거론되는 비운의 오리지널 캐릭터 정도로 남는 듯 했다.


그랬던 브로리가 드디어 드래곤볼 공식 세계관에 정식으로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첫 등장 이후 무려 25년만이다. 큰 마음먹고 브로리의 정사 편입에 "오케이" 사인을 낸 토리야마가 직접 나서 캐릭터를 재창작했다. 토리야마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오리지널 캐릭터를 작품에 편입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브로리가 얼마나 화제성이 크고 오랜 시간 사랑받는 캐릭터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브로리... 위엄...


물론 극장판 설정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기본 배경 스토리와 성격, 생김새까지 많은 부분이 토리야마의 최근 스타일에 맞게(조금 둥글둥글하게) 변형됐다. 아, 그런데 마지막 고집인지 결국 브로리의 최종 변화 형태인 '웃통 까고 근육 빵빵' 모습은 그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큰 근육'은 정말 싫어하나 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로리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을 넣지 않을 수는 없으니 본 극장판의 원화 담당 작가가 직접 구)극장판 오리지널 특성을 최대한 살려 그려넣었다고.


여기까지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직접 디자인한 평상시 브로리(위)과 초사이어인 형태(아래)
추가된 슈퍼 브로리 디자인



- 합류가 약간 늦은 감도 있지만.. 뭐 어때?

브로리가 드래곤볼 세계관에 공식 입성하는 건 좋지만, 아무래도 조금(이 아니라 많이) 시기가 늦은 감이 있다. 브로리가 처음 등장하던 때는 드래곤볼Z에서 셀 게임 편을 막 진행하고 있던 아주 먼 옛날이다. 당시 브로리가 무지막지했다고는 하지만, 대충 (당시 세계관 최강자인)초사이어인2 손오반이랑 치고 박고 할 정도 수준으로 강했던 캐릭터인데... 지금은 무슨 갓이니 블루니 이상한 초초초초사이어인들이 잔뜩 나와서, 완전체 셀 정도는 땅콩 한 방으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손오공과 친구들이 성장해 버린 것이다. 아무리 천재에 돌연변이라고 해도 브로리가 대뜸 초사이어인 갓이나 블루랑 대등하게 싸우거나 압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저 둘은 말 그대로 신의 영역에 필적한 히어로들이니까... 그래서 이번 신 극장판 제작진들도 고민이 많겠다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의외로 제작진들은 별 고민이 없었는지 그냥 저대로 브로리를 존나 무식할 정도로 세게 파워업시켜버린 것이다. 초사이어인 모드 손오공이나 베지터 정도는 변신도 안한 채 두들겨 팬다. 여기까진 그러려니 싶은데 신과 다름 없는 ‘갓’ 상태도 초사이어인 모드로 박살내버린다. 심지어 블루도 두들겨 팬다. ‘싸우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한다’는 브로리의 무서운 특성을 그대로 살린 건 좋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강한 건 좀 오잉 싶더라.

위엄...

뭐 어쩌겠나... 늦게라도 이 매력뿜뿜한 캐릭터를 갖고 오긴 와야겠고, 그러려면 지금의 파워 인플레에 부합해야 하니 별 수 없긴 했겠지. 사실 드래곤볼은 <드래곤볼 슈퍼>에 들어서면서부터 개연성이나 파워 밸런스 따위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나 다름 없어진지 오래다. 애초부터 '슈퍼'는 토리야마 아키라가 긴장감을 최대한 배제한 채 가벼운 분위기로 진행시키려 마음 먹고 진행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나이도 먹고 하니 너무 진지한 이야기는 피곤해서 못 다루겠다고 한다. 그래서 슈퍼는 Z에 비해 훨씬 코믹하고 자유롭다. 나쁘게 말하면 별 생각 없이 그리는 듯. 하도 오래된 작품이다 보니 작가 스스로가 이전 설정이나 파워 밸런스 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는 추정이다. 그렇게 막 찍어내는 뉴 캐릭터들이 좀 과하게 세진다 싶으니 대놓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차원에서 파괴신이나 전왕까지 등장시켰다. 대표적으로 이전 극장판 <부활의 F>에서는 '파워 업'했다는 프리더가 신나게 오공과 베지터를 두들겨 패다가, 대뜸 파괴신이 등장하자 쫄아서 윽엑거리는 '아, 이건 좀' 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근데 지금 브로리는 아예 파괴신이랑도 비등할 거 같다는 듯.



이제야 나오는 영화 이야기

좀 악평처럼 휘갈겨 놨는데, 그래도 영화 자체는 볼 만 하다. 전개가 너무 빠른 감이 있지만, 그만큼 브로리의 전투에 굉장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전투씬 하나에 올인 한 만큼 연출 퀄리티가 아주 좋다. 화려하고 박진감 넘친다. 애초에 4DX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4D로 관람하면 2D보다 훨씬 인상깊을 것 같았다.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2D로 관람하면서 '아, 이거 3D나 4D였으면 진짜 박력있겠다' 싶었는데 진짜 4D로도 개봉했더라... 아아..


그런데 말 그대로 전투 하나에 올인을 한 까닭에 전투씬이 좀 많이 길어서 지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이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영화 초반 20여분간 나오는 브로리와 손오공 탄생 비화 부분이다. 손오공의 아버지 버독과 엄마 기네(기네는 드래곤볼 공식 세계관에서 첫 등장)가 나오는 이야기인데, 정식으로 정사 인증을 받은 ‘공식 과거’인 셈. 무척 감동적이다. 버독은 결코 카카로트를 "쓰레기!"로 보는 비정한 아빠가 아니었어ㅠㅠ

왼쪽은 2014년에 나온 '드래곤볼 마이너스' 단편 원작, 오른쪽은 이번 극장판에 담긴 부분. 마이너스는 토리야마 아키라가 직접 썼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진짜 과거'다

<드래곤볼 슈퍼>다운 코믹함과 가벼움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딱 알맞게 배합돼 있다. 예컨대 프리더가 왜 딱히 필요도 없어 보이는 드래곤볼을 모으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면 입이 벌어질 거다. 너무 큰 스포라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프리더 자체가 약간 개그캐릭터 비스무리하게 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브로리를 자기 부하 삼아 끌고 와서 손오공이라 붙이고 태연한 척 관전하는데, 보면서 '아니 쟤는 지보다 훨씬 센 애를 싸움 붙여서 어쩌자는 거야' 싶었다. 실제로 나중에 이성 잃은 브로리한테 존나 맞는다. 하필 부하들 보는 앞에서 쳐맞는 터라 많이 쪽팔릴 거 같았다. 이번 시리즈에서 프리더는 손오공 베지터가 작전짜는 동안 매품 팔아 시간 벌어주는 옛날 피콜로 포지션을 맡았다고 보면 되겠다.

호호호 골든 프리저님의 힘을 보여주죠... 하는 장면인데 직후부터 개쳐맞음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지만 이 영화에 개연성이나 파워 밸런스 따위는 본질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가 '드래곤볼'이라는 거다. 무슨 아 이 부분 연출이 이렇고 서사가 어떻고 개연성이 부족하고 어쩌고를 따질 이유가 없다. 그냥 '나는 지금 드래곤볼의 공식적인 새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감동으로 눈물 글썽이며 스크린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된다.





3.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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