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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Apr 21. 2019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평범한 사랑 영화

일반적인 퀴어 영화와는 뭔가 다른 느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일반적인 퀴어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의도적으로 퀴어 영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들의 사랑'이라는 특수한 타이틀을 붙이지 않은 아주 평범한, 아주 일반적인 연인들간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 속에서 게이는 부정되지도, 특수한 소수자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의 부모는 아들이 남자를, 그것도 잠시 머물렀다 떠나고 말 휘하 연구원을 짝사랑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이 세계 속 주변인들이 모두 그렇다. 엘리오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은근한 동성간의 사랑을 어떻게 잘 눈치채고 미소를 띈 채 바라봐 준다.

이 영화에는 일반적인 퀴어 영화의 정석인 '각성'이 없다. 보통 퀴어 영화 주인공들은 다음과 같은 코스를 밟는다. 그들은 원래 일평생 게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여성을 상대로 흥분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스스로에 대해 괴로워 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그'를 만난다. 맹렬히 저항하던 주인공은 결국 상대 남성의 아우라에 굴복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각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뜨거운 잠자리를 가지고 해피엔딩.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엘리오와 올리버 모두 여성을 상대로도 평범하게 관계를 가진다. 영화 중반부 엘리오는 마르치오와 관계를 갖는데, 이때 마르치오는 굳이 엘리오의 성기를 만지며 "엄청 단단해졌네"라는 대사를 친다. 엘리오가 여성을 상대로도 충분히 흥분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여자냐 남자냐는 중요하지 않다. 동성애 영화도 아니고 이성애 영화도 아닌, 그냥 지극히 평범한 사랑, 그 자체가 테마인 영화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그림과 동상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무얼 뜻하는 걸까? 역시 '평범한 사랑'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는 동성애가 아주 일반적인 사랑이던 시절이다. 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서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연인 관계였다는 설도 있지 않은가?


이 장면은 굉장히 재치있는 연출이다. 엘리오 아빠와 올리버가 고대 그리스의 벌거벗은 남자 동상들을 공부하며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그 직후 바로 엘리오가 클로즈업으로 잡히는데..
그렇게 클로즈업 잡힌 엘리오를 가만히 보면 헤어스타일이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의 곱슬머리와 똑같다!(위 사진은 해당 장면 아님)

하지만 여러모로 초현실적인 이야기다. 실제 영화를 보면서 "여긴 에덴 동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고 세상 누구나 행복해 보인다. 더우면 시원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 되고, 심심하면 멍하니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면 된다. 편견도 차별도 없다. 연출 역시 묘하게 뽀샤시한 파스텔톤의 느낌이 나는 게 몽환적인 인상을 준다.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아련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못할, 너무나 아름다운 이미지와 이야기들이니까.



★★★★




p.s) 다양한 언어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영어를 쓰긴 하지만, 불어도 나오고 이태리어도 자주 나온다. 예컨대 엘리오와 마르치오가 단둘이 대화를 나눌 때는 불어를 쓴다. 이 역시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p.s2) 그런데 동성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 중에서도 특별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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