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마지막으로 술 한잔 하자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벌써 2주가 되어간다. 장례가 끝나면 많이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온했던 지난 며칠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3년 전 친할머니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을 땐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많이 힘들었었는데 그 사이 나도 많이 성장했나 싶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약 5년간 지병으로 고생을 하셨다. 일상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최근 한 달 사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셨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 급격하게 안 좋아지셨단 말에 엄마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병원에 뵈러 다녀왔다. 그리고 나도 그 주말에 다녀왔다. 부산이라는 먼 거리에도 무릅쓰고 간 이유는 후회하지 않고 싶어서였다. 그때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3년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에 뵈러 갈 수 있었는데 안 갔던 나 자신을 오래도록 미워했기 때문에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지내시는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장례식 3일 내내 후회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 건 남아있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지. 더 많이 얘기 나눌걸, 같이 사진 한 장이라도 찍을걸 등 나는 그저 무뚝뚝한 손녀일 뿐이었다..
손님들 중 할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오셨다. 처음 뵜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시는 분위기만으로 할아버지의 친구 분들임을 직감했다.
“술 참 좋아했는데.. 마지막으로 술 한잔 하자..”
한 친구분의 말씀에 눈물이 났다. 90세를 바라보고 있는 노인분들은 이렇게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들까. 느껴보진 않았지만 나라면 슬픈 감정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다가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분향소에서 인사를 한 뒤 반주와 식사를 즐기며 소중한 친구를 잘 떠내보시려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가실 때도 “좋은 친구 한 명을 잃었습니다 정말..”이라는 말씀과 함께.
성인이 되고 두 번째 장례를 경험하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있을 때 더 많이 표현해야지. 매번 결심하지만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 ‘상실’이라는 감정 앞에 내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글로 감정을 해소해 보고자 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괜찮지만 또 힘들다가.. 괜찮아지다 반복하며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장례식장에 있는 동안 할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과거엔 드물었던 외동아들이었기에 결혼 후 할머니의 형제들을 좋아하셨고 스스럼없이 잘 지내셨다고. 그래서 정말 많은 친척들이 할아버지의 마지막길을 끝까지 배웅했다.
어린 시절 무섭기만 했던 할아버지가 서서히 약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참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 또한 아직은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아버지를 보고 싶을 땐 추억하는 것, 내 방식대로 잘 기리는 것이겠지.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3일간 비 소식이 있었는데, 오지 않았다. 발인 후 장지로 가는 길에도 날씨가 화창하니 좋았다. 우리 할아버지 드디어 원하시던 고향으로 간다고 날씨도 반겨주나 싶었다. 할아버지, 이제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