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 Nov 24. 2021

여자 풋살 도전기 4

네 번째 클래스: 해보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기

겨울을 좋아하면서도 겨울에 약한 인간인 나는,

요즘들어 기상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매년 이렇게 꾸물꾸물하고 쌀쌀한 날씨가 되면 일어나기가 영 쉽지 않은데 오늘도 그랬다.

귓볼에 스치는 칼바람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하루종일 정신 없이 바빴던 하루여서 풋살을 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다가 퇴근길에 생각이 났다.

날씨를 핑계 삼아 가기 싫은 이유를 합리화 해본다.

하지만 일주일에 딱 한 번만 하면 되고 지난주부터 친구도 함께 합류했으니 가지 않으면 안된다.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천천히 차올라서 갑자기 식물 분갈이를 했다.

마음이 심난하거나 도피하고 싶을 때 분갈이를 하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풋살 학원차에 타야 하니까 분갈이를 서두르는 나를 보며

도대체 풋살을 하고 싶다는 건지 하기 싫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학원에 도착하면 리프팅 연습으로 몸을 달구는데

오늘따라 리프팅을 할 때 발등이 자꾸 아팠다.

리프팅을 하는 감각이 있는 것 같은데 아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날이었으나

발등이 아픈 관계로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술 수업은 평소처럼 패스 연습과 드리블 연습을 했다.

지난 번 수업과 달라진 게 있다면 실내구장 안에서 자유드리블을 했는데 이게 꽤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내 공을 뺏으려는 사람을 피하려다 보니

모든 신경이 공에만 집중된다.

코치님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셔야 해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공만 바라보고 달리면 주변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풋살을 할 때는 공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상황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다보면 공을 뻇기고 만다.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삶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4명 대 5명으로 미니 경기를 했다.

우리 팀이 한 사람이 모자라는 관계로 다른 분이 골키퍼를 봐주시기로 했다.

5명이면 돌아가면서 골키퍼를 맡을 수 있을 텐데 4명뿐이라 모두가 계속해서 뛰어야 한다.

내 체력에 가능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경기를 해야 한다니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팀원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팀원들이 너무 긴장하지 않도록 "우리 최선을 다해봐요."라고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건 나를 위한 주문이나 다름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팀은 5대 0으로 이겼다.

그 중에 나는 세 번째 골을 넣었는데 지금도 어떻게 넣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눈 앞에 공이 있었고 발로 힘껏 찼는데 골대의 위쪽 구석으로 들어갔던 기억만 난다.

뭐야. 지금 내가 골을 넣은 거야?

3초 정도 얼떨떨해 하다가 코치님의 '첫 골 축하해요.'라는 말에 실감이 났다.

늦게서야 이게 아빠가 말씀하셨던 '골맛'이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성공시키고 나니까 다른 하나도 성공시키고 싶고,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은 나를 좀 더 저돌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시켜

그 후에도 공을 많이 점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네 명뿐이라서 불리하고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리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무슨 골이야, 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때론 삶은 우리에게 의외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다. 그러니까 일단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발로 차고 보자.



작가의 이전글 여자 풋살 도전기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