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퍼스에서 생애 첫 운전하기
작년 11월, 내 생애 첫 차를 구매했다. 늘 처음은 특별하기에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새 차를 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운전 초보이기 때문에 혹시나 사고가 날 수도 있었고 퍼스를 떠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차를 팔 때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요즘 경제에 관심이 많은데 차는 가짜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렴한 중고차를 내 첫차로 구매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짜 자산은 구입하는데 돈이 들어가지만, 내 미래 소득을 늘려주지 못하는 자산이다. 반면 진짜 자산은 그걸 가짐으로써 내 미래 소득이 늘어난다. 이 관점에서 자동차는 진짜 자산일까? 자동차를 가짐으로써 미래에 어떤 소득이 늘어나는가? 당신의 직업이 택시나 화물차 기사라면 자동차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책 <진짜 부자 가짜 부자> 중
차는 www.carsales.com.au이라는 사이트에서 알아보고 차주에게 컨텍하여 직접 만나서 거래했다. 검트리 같은 사이트에서 알아봐도 되지만 검트리에는 차뿐만 아니라 일자리, 중고 물건 등 다양한 것들이 거래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전문적인 카세일즈에서 알아보게 되었다. 나는 차에 대해서 1도 모르기 때문에 B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차의 가격은 $1,800이었다. 시승을 해 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물론 손봐야 할 것도 몇 개가 있었다. 차주인은 아기가 생기면서 조금 더 큰 차를 구매하게 되어서 이 차를 팔게 되었다고 했다. 차주는 3년을 탔다고 한다. 연식이 있는 차 치고는 관리가 잘되어있었고 깨끗했다. 그렇게 이 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B의 도움으로 $800을 깎아서 $1,000에 구매할 수 있었다. 운전에 적응할 때까지 연습용으로 탈 생각이었다.
운전면허는 예전에 한국에서 땄었다.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다면 호주 운전면허증을 만들 수 있었다. 호주에서 따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그렇게 생애 첫 차가 생겼고, 첫 운전을 하게 되었다. 도로에서 운전을 하기에는 부족한 실력이라 주말에 문을 닫는 공장지대에 가서 정말 기본적인 운전 연습부터 하기 시작했고 주차 연습은 집 근처 공용 주차장에서 해보았다. 운전을 시작하고 보니 모든 운전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운전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 정말 리스펙트.
공장지대에서 일자로 달리기, 좌회전, 우회전만 계속 연습하다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쯤 차가 많이 없는 어느 지역의 도로에서 운전을 해보았다. 간이 작아서 그런지 긴장이 많이 되기도 했지만 아무 일 없이 운전을 잘했다.
그렇게 늘 그 지역에서 연습을 했고 지금은 그 지역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만큼 운전이 익숙해졌고 그곳이 편해졌다. 문제는 늘 그곳에만 간다는 것..
처음에는 혹시라도 누군가 창문을 열고 욕을 한다던지 나를 무시할까 봐 이런 갱스터 음악들을 소심하게 틀어놓고 운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후 친언니가 퍼스로 여행 온 적이 있었고 공항으로 언니를 픽업하러 가야 했다. 사실 운전을 급하게 시작하게 된 이유도 언니가 여행을 오게 되면서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운전을 배우게 되었다. 역시나 이때까지만 해도 못 가본 곳으로 운전을 해서 간다는 것이 너무 걱정되었다. 하지만 공항에 잘 도착했고 주차도 잘하고 언니 픽업도 잘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언니가 오니 알 수 없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고 운전대를 잡을 용기가 생겼다. 타이어의 바람이 좀 빠진 것 같아서 처음으로 주유소에 가서 타이어에 공기도 넣어 보았다. 사실 처음 하는 거라 잘 몰라서 기름을 넣고 있던 아저씨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니 경찰이셨다. 너무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감사했다.
서툴긴 해도 25살 나의 첫 차와 덕분에 언니와 퍼스의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벌써 운전을 한지도 6개월이 되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을 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고 걱정이 되었다. 다들 몇 달만 타면 적응이 된다는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특히나 내가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려고 하면 무서웠다. 가야 할 곳을 구글맵으로 미리 길을 살펴보면서 어려울만한 길이 없을지 알아보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운전을 계속해야 하는데 이렇게 겁 낼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최근 약속이 있어서 내가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야 했고 걱정과는 달리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코로나 덕분에 요즘 도로에 차가 많이 없는 것도 한몫했지만 생각보다 운전이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히 운전 공포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늘 빨리 달리지 않고, 주위를 살피고, 미리 브레이크를 밟는 등 안전운전을 하고 있다. 차 덕분에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어려운 곳도 쉽게 갈 수 있고, 장을 보고 나서 더 이상 두 손 가득 무겁게 들고 집까지 걸어 올 필요도 없고, 기분 전환을 하러 근교로 드라이브를 갈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내 차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던 차였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은 퍼스에서 나의 발이 되어주고 정이 많이 들어버린 내 첫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