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이 성공하는 시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를 거닐고 있자면 한국에서는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하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곤 한다. 눈 앞에 펼쳐진 낯선 사물 하나하나를 충분한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녀온 방콕에서도 그랬다. 방콕의 다소 더럽고 혼잡스러운 거리, 교통 체증, 피자집 직원,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특별한 양 바라보았다.
6일간의 방콕 여행 중에 특히 내 관심을 집중시킨 대상이 있었다. 바로 세계 최대 주말 마켓 중 하나인 짜뚜짝 시장에 있는 쉐프 페르난도의 빠에야 집 Viva8이다.
세계 최대의 주말 마켓, 방콕 여행 필수 코스. 덥고 혼잡하고 정신없지만 그래서 더 여행 느낌 나는 곳. 명성답게 짜뚜짝 시장 안에는 의류, 액세서리, 그릇, 수공예품, 예술작품 등을 파는 가게들과 음식점, 카페, 과일가게가 빈 틈 없이 들어차 있다. 이렇게 볼거리도 살 거리도 많은 짜뚜짝 시장의 최고 명물이 뭘까? 로컬 느낌 물씬한 길거리 팟타이? 싸고 맛난 망고? 저렴한 액세서리?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품? 아니다. 쉐프 페르난도의 대왕 빠에야다.
태국 전통 시장 최고 명물이 스페인 음식이라고? 갸웃할 것이다. 그 쉐프가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론 지금은 유명하다. 하지만 음식이 대단해서 유명해진 건 아니다.
세게 말하자면, 지금은 관종이 성공하는 시대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관심 갖게 하는 사람이 승자다. 쉐프 페르난도가 한 일이 그렇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자신의 빠에야 사진을 찍어 자발적으로 SNS에 소문을 내게 만들었다. 그는 돈 벌 줄 아는 사람이다.
1. 크기를 아주 크게
맛이나 재료에서 특별한 것은 없다. 그래서 크기를 '아주 많이' 키웠다. 그래서 특별해졌다. 그는 빠에야를 아주 아주 큰 냄비에 담아 만들고 그 냄비를 가게 앞에 떡하니 전시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게 된다. 마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 같다. 평범한 사물을 크기만 키웠을 뿐인데 낯설어진다. 그런데 그 낯섦이 싫지가 않다.
2. 화려한 퍼포먼스
빠에야를 만드는 모습이 하나의 퍼포먼스다. 쉐프가 직접 나와서 큰 냄비에 쌀을 들이부으며 빠에야를 만든다. 쌀통도 두드리고 춤도 춘다. 우스우면서도 재밌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로 그를 찍게 된다.
3. 클럽 음악
항상 빠에야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순 없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퍼포먼스를 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에 이곳에는 쿵짝 쿵짝 클럽 음악을 틀어주는 DJ가 있다. 시장에 있는 스페인 음식점에 클럽 음악 DJ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음악 자체는 특별한 게 없다. 카오산 로드에 가면 널린 게 클럽 음악을 트는 펍이고 여기가 유니크한 음악을 트는 것도, 디제잉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 있는 스페인 음식점에서 이런 음악을 틀면 특별해진다. 참고로 그 가게 주변에 있는 가게들은 모두 아주 전형적인 로컬 태국 음식점이다. 그 거리에서 이 빠에야 집은 누가 봐도 눈에 띈다.
4. 전통 시장
장사의 8할이 '위치'랬다. 그가 선택한 위치는 전통 시장. 그는 전통시장에서 스페인 음식을 판다. 빠에야는 한국에서도 비싸다. 방콕에서도 나름 고급 음식일 것인데 그걸 시장에서 판다. 가격도 싸다.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전형성에서 살짝 탈피한 것이다. 그가 방콕의 도산공원 '통로' 같은 모던한 거리에서 근사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스페인 레스토랑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통로에는 정말 세련된 가게들이 많다. 웬만큼 자본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전형성에서 살짝 탈피한 것을 '세련되다', '힙하다'고 느끼곤 한다. 그가 낡고 혼잡하지만 관광객이 가득한 짜뚜짝 시장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5. 기본은 한다.
그의 빠에야는 맛있었다. 물론 어디서도 쉽게 맛보기 힘든 최고의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여행 기분 내면서 먹기에 손색이 없다.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을 해도 기본도 안 되면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은 모든 일의 필수다.
빠에야 하나를 팔아도 옆 집보다 눈에 띄어야 성공하는 세상이다. 물론 독보적으로 뛰어나다면 눈에 띄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천재 개발자다. 세상이 당신을 원할 것이다. 당신이 전지현이다.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캐스팅될 것이다. (전지현은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다.) 당신이 김연아다.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렇게 독보적인 재능이 없다. 독보적인 재능은 없지만 그래도 성공하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다. 아니, 많이 버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고 싶다. 쉐프 페르난도의 Viva8을 보면서 느꼈다. 특별한 게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게, 시선을 끌어당기고 관심 갖게 하면 된다는 것을.
Viva8이 짜뚜짝 시장 내에서 가장 맛있는 집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돈은 가장 많이 벌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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