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러의 방콕 예찬
얼마 전에 방콕에 다녀왔다. 5년 전에 방문하고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방콕에는 정말 관광객이 많다. 가까운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싱가포르에서 온 아시아 관광객은 당연하고 서양인 관광객도 정말 많다. 관광객의 천국이라는 카오산 로드에 가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방콕에 놀러 왔다. 방콕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관광지다.
이러한 인기 덕에 관광업이 태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4%에 이른다. GDP의 1/10이 관광업에서 나오는 셈이다. 참고로 한국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6%다. (2017년 기준, 출처 travel&tourism economic impact 2018 thailand, WTTC)
무엇이 사람들을 방콕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 여행자들이 원하는 여행지들은 보통 아래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해있다. 대개는 이 중에서 어떤 요소 하나가 강하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여행자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행선지를 고르게 된다. 여기서 룰 브레이커 방콕의 매력이 나온다. 방콕에서는 한 도시 내에서 이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있다.
1. ’외국인들이 바라는’ 로컬스러움
사실 관광지로 계획 개발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사는 모든 도시들은 로컬스럽다. 서울도 로컬스럽고 도쿄도, 파리도, 빈도, 포틀랜드, 시드니, 싱가포르도 로컬스럽다. 방콕 역시 태국의 수도이자 인구 천백만의 대도시이기 때문에 로컬스러움은 당연하다.
그런데 뭐랄까, 방콕의 로컬스러움은 특별하다.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최적화된 느낌이랄까? 서양인들이 바라보는 동양스러움 혹은 좀 더 GDP가 높고 모던한 나라에서 바라보는 동남아 국가의 전형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거리는 다소 더럽고 혼잡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팟타이에 창 맥주를 곁들인다. 교통체증은 너무 심하지만 물가는 저렴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그 유명하다는 타이 마사지를 받으면 몸이 녹는다. 시내에 금이 번쩍이는 사원이 즐비하고 교외로 조금만 나가면 이국적인 매력의 수상시장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다소 엉망진창인 듯하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랄까.
2. 모던 럭셔리
방콕은 숙박업이 발달한 도시여서 좋은 호텔이 정말 많다. 매력적인 점은 물가가 서울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5성급 호텔을 큰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방콕에는 멋진 루프탑 바가 정말 많다. 웬만한 좋은 호텔에는 근사한 루프탑 바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나는 센타라 그랜드 호텔에 위치한 레드 스카이 바, 아바니 리버사이드에 위치한 애티튜드 바, 르부아 호텔에 있는 시로코 바에 가보았는데 같은 방콕의 루프탑 바지만 바라보는 뷰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레드 스카이 바가 제일 좋았다. 지나치게 혼잡하지도 않으면서 방콕의 야경을 넓은 조망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서울에는 왜 이 정도로 높은 건물에 위치한 루프탑 바가 없는 것일까? 만들면 돈이 될 게 뻔한데 안 하는 걸 보니 법 규정과 관련이 있지 않나 추측해본다.
3. 인류의 유산이 궁금해. 유적, 건축물, 역사
불교가 국교인 태국이기에 도시에 사원이 즐비하다. 소승불교인 방콕의 사원들은 단아하고 소박한 멋을 지닌 한국의 불교 건축물과는 달리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금과 정교한 조각들로 장식된 불교 사원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반사되어 번쩍번쩍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알고 보면 더 멋지고 아무것도 모르고 봐도 화려하고 사진 찍을 맛이 난다. 낮에도 예쁘고 야경도 예쁘다.
4. 다 필요 없고 난 그냥 쉬고 싶어.. 휴양
나이를 하나 둘 먹을수록 다 필요 없고 그냥 쉬고 싶다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사는 게 지치나 보다. 방콕에는 놀랍게도 도시 안에 세상과 단절하고 편안한 휴식만을 취할 수 있는 리조트가 있다. 몇 년 전에 오픈한 같은 계열사인 아난타라 리조트와 아바니 호텔이 그것인데, 도시 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럭셔리 리조트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울 시내에 이 규모의 럭셔리 리조트를 만든다면 가격이 대체 얼마나 비싸야 할까? 물가가 싼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치트 키인 것 같다. 덕분에 좋은 시설 내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수영하고 돌아왔다.
5. 미식
태국 음식은 맛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실이다. 감칠맛 나는 소스에 땅콩을 버무리고 새우를 함께 볶은 새우 팟타이, 부드러운 게살이 씹히는 푸팟퐁 커리, 한국인 입맛에 딱인 각종 라이스, 얼큰한 똠양꿍까지 태국 음식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일본과 태국은 음식 때문에라도 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태원에 들어차 있는 태국 음식점들도 충분히 맛있긴 하다. 하지만 방콕에서는 길거리에서 파는 한화 3천 원짜리 팟타이도 맛있다는 점.
6. 쇼핑
사실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방콕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가 독특하고 매력적이라는 말을 듣고 쇼핑을 하려고 작정하고 쇼핑몰에 갔건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생각보다 매력적인 브랜드도 없고 가격도 비쌌다. 결국 새로 지어 반짝반짝한 거대 쇼핑몰 아이콘 시암에서 사서 나온 것은 H&M 오프숄더 탑과 러쉬의 입욕제뿐이었다.. (물론 오프숄더 탑은 마음에 쏙 들었고 러쉬 입욕제는 50% 세일가로 매우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다. 역시 쇼핑은 유럽..)
방콕 쇼핑의 매력은 근사한 쇼핑몰이 아니라 시장 쇼핑에서 나오는 것 같다. 뭐랄까 진흙탕에서 진주를 고르는 재미랄까? 난장판에서 쓸만한 것을 골랐을 때 느껴지는 그 강렬한 쾌감이란. 나는 세계 최대의 주말 마켓이라는 그 혼잡하고 더운 짜뚜짝 시장에서 한화 1700원에 비즈가 잔뜩 달린 트로피컬 귀걸이, 누가 봐도 '저 관광객입니다' 말하는 듯한 만 원짜리 해바라기 원피스와 트로피컬 원피스를 건지고 귀여운 라탄 백을 샀다. 쇼핑한 상품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여행이었다. 재밌었다.
기획자로서 직업병인지 매력적인 것들을 보면 항상 내 나라 내 도시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 생각한다. 아쉽게도 한국은 여행지로서 태국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은가 보다. 한국 GDP가 태국의 3.4배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2017년 기준 관광수입은 한국이 $71.4bn로 $95bn인 태국보다 낮다. (출처 travel&tourism economic impact 2018 thailand, WTTC) 따라서 최소한 관광업의 측면에서는 태국이 한국보다 '잘 팔린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방콕 장점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기본 요건이 '싼 물가'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엉망진창인 거리도 낭만이고 5성급 호텔도 저렴하고 도시 한복판에 럭셔리 리조트를 짓고 3천 원짜리 팟타이, 1700원짜리 귀걸이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서울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방콕이 어떤 점에서 여행자들에게 매력을 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서울을 마케팅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P.S
앞서 열거한 매력 외에도 개인적으로 방콕이 좋은 점을 꼽자면 방콕은 겨울에 따뜻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그러니까 나는 Winter hater라 겨울이 굉장히 싫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가 이렇게 방콕을 찬양하고 있는 이유는 겨울에 따뜻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눈과 빙판길이 예상된다며 재난 문자가 왔는데 정말 출근길이 걱정된다. 봄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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