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투 Apr 09. 2020

12월의 대만 #3

대만의 중정

지하철을 타고 중정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서 비로소 대만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우리와 다른 초록의 우림과 건물, 간판, 거리...

바람이 심한 건지 커다란 현수막들은 반원형으로 타공이 되어 있어 펄럭였다.

캐리어가 아닌 크지 않은 배낭을 멘 나를 외국인으로 볼까, 아니면 현지인으로 볼까 가 궁금했지만 

공항에서 막 나온 사람들이기에 비슷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외국인이든 현지인이든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전에 유럽에 갔을 때는 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숨는 느낌이다.

대만 사람들 사이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로부터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는 것처럼 그들 또한 어딘가 다른 나를 발견할 것이다.


실외로 나가보지 않아 대기가 어떤지 알 수 없다.

전철은 물론이고 공항에서도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서늘한 기온이었다.

전철 창밖으로는.. 짧게 흐렸다가 길게 화창한 하늘 아래 야자수가 보이는 그런 풍경이었다.

아직 지나는 행인이 보이지 않았기에 옷차림으로 미루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리 더워 보이지 않았다.

전철은 지상으로 한참을 달리다가 지하로 들어섰다.

내가 탄 전철은 말하자면 공항선 급행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건 아니고 정거장을 건너뛰어 계속 달렸다.


도로가 그리 넓지 않았고 그 도로를 약간의 차들과 약간의 스쿠터들이 달렸다.

시내로 다가갈수록 그 밀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이상하게도, 땅끝이라든가 어떤 지형의 끝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대만은 크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대만의 크기를 대강은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모르고 왔더라도 그들의 도로, 건물, 산... 등등의 것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비교하자면 한국보다 작다는 게 느껴진다.

무엇 때문이었나...  


지하철은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갈아탔다.

내 숙소가 있는 시먼(서문)에 가려면 중정기념관 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정표가 중간에 헷갈렸지만 무사히 환승을 해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중정역사 밖으로 나오면 한눈에도 중화풍인 건축물이 보인다.

오페라극장이라나...  

맞은편에도 같은 모양의 건물이 쌍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커다란 팔각정 모양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정 기념관'



상대적으로 기단부가 작고 낮아 보여 어째 전체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토가 좁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보이는 비율.

가까이 다가가면 기단부도 넓고 높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 시간이었다.

기막힌 타이밍이라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교대식은 매시간마다 있다.

'왜 이렇게 교대식을 자주 하지?'


교대식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 거대한 문으로 들어서니 그곳엔 거대한 장개석 좌상이 놓여있었다.

정말 그 크고 높은 공간에 좌상 하나만...

대만 사람들의 장개석에 대한 마음, 또는 예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묘했다.

대만 전체를 뿌듯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인.


교대식은 별다른 음악 없이 이루어졌다.

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있던 두 명의 근위병이 단상에서 내려와 다른 근위병과 교대한다.

웅성대던 관광객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텅~, 텅~..." 군화 뒤축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절도 있게 한걸음 한걸음 옮기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그 사이로 두 명의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부지런히 관광객들의 동태를 살핀다.

살피다가 조금 수상하다 싶으면 재빨리 다가가 상황을 보고 제지를 하거나 주의를 준다.

교대를 마치고 이전 근위병이 퇴장하고 새로운 근위병이 단상 위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그 경비원들이 그대로 굳어버린 듯 서 있는 근위병의 옷매무새를 잡아주고 교대식 완료.

안전선이 제거되고 그곳에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졌다.


근위병에게 다가간 꼬맹이가 세상 천진한 목소리로 "아저씨~"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맑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는데 근위병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지 관찰해 보았는데 정말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아니면 나랑 눈 깜빡이는 타이밍이 같았을지도...

앳되 보이면서도 듬직한 근위병은 그렇게 부동자세로 대만의 상징을 지키고 있었다.



교대식을 관람하고 나오면서 비로소 왜 그렇게 매시간마다 의식을 진행하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부동자세로 그렇게 서있는다는 게 비록 한 시간일지언정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겠지..

근위병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중정기념관은 입장료가 없다.

기단부의 내부는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술작품도 있고 대만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아 곁에 서있으면 해설사들이 한국어로 설명을 해줘서 대략은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거대한 건축물에 거대한 좌상만을 세웠는지.



첫 방문지로 중정기념관을 선택한 것은 괜찮았다.

물론 숙소가 그 근처였기에 찾아간 것이었지만 말 그대로 대만이라는 '집'의 대문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중정'에 발을 들여놓은 듯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월의 대만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