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무비...?
며칠 전 '더 배트맨'을 보기 전까지는 별로 내키지 않는 영화였는데
'그 어둡고 무겁고 우울한 영화'를 보고 났더니, 그리고 봄기운이 느껴지니 이상하게 이 영화가 막 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 '굿윌 헌팅'과 소재가 비슷했고 줄거리도 뻔할 것 같아 관심 밖이었던 영화.
최민식 씨가 나오는 '꽃피는 봄이 오면'도 그래서 보지 않았더랬다.
집에서 극장까지는 지하철로 3 정거장 거리.
날도 춥지 않고 봄비도 내리겠다... 동네 뒷산을 넘어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투둑 투둑...'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 한적한 산길이 촉촉하고 싱그러웠다.
나무 이파리 끝에 맺힌 물방울이 맑은, 화이트데이에 혼자서 영화를 보러 산을 넘었다.
봄비가 내리는 화이트데이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아야 한다.
영화의 완성도는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입시와 경쟁에 매몰되어있는 아이들과 그러한 현장으로 내몰고 부추기는 어른들과 사회,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주는 그렇고 그런 뻔한 주제,
특히 연설로 마무리를 짓는 장면이 아쉬웠다.
하지만 훈훈하고 따뜻한 결말은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이 시기에 잘 어울려 아주 만족스러웠다(아직 마음은 겨울).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이상한 나라'는 '북한'이겠거니 했는데,
남한이나 북한이나 바르지 않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곳이 바로 이상한 나라...
아니면 곧이곧대로 정석으로만 삶을 풀어나가는 자기만의 세계가 '이상'한 나라인 건가.
바르지 않은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한 번이라도 들어보기나 했을까 하는 수학용어나 공식 이름들이 낯설고 생소해도, 또 수포자여도 영화를 보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학에 대해 더 잘 알고 본다면 영화의 허술함이나 허황됨에 덜 몰입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정해본다.
이미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파이(원주율)로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했고
멀기만 하던 '수학'이라는 세계를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치환시켜주었다.
칠판의 뒷면 시점을 투명하게 묘사한 장면들은 묘한 시각적 경험을 주었다.
주인공의 뒷모습으로 칠판에 풀어지는 복잡한 수학공식들을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수학공식을 관객과 주인공 사이의 공간에 띄워놓고 과정에 집중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주인공의 표정과 몸짓에 주목하게 만듦으로써, 마치 스크린을 칠판의 뒷면으로 만들어버려 그들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듯한 낯선 체험을 하게 만들었다.
'익숙한데 뭔가 새로운' 아주 작은 틈을 열어주었다.
주인공 한지우를 연기한 배우의 튀지 않고 무던히 녹아든 연기가 좋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알맞게 적당한 연기로 은근한 존재감을 영화 내내 증명해낸다.
최민식씨가 이미 정답이라면 김동휘(한지우역)는 과정이다.
무슨 공식이었더라... 자연의 곡선을 나타낸다는 그 공식은 봄비가 이슬처럼 솔 이파리에 매달려 그려내는 물방울의 곡선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들어주었다.
3월 14일은 아인슈타인(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의 생일이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기일이다.
원주율 파이는 3.14159........................................................................................................
수학자들은 파이를 기념하기 위해 3월 14일 1시 59분을 파이의 날 시작점으로 파이를 먹기도 한단다.
발 빠른 업체들이 이를 노리고 '화이트 파이'데이를 만들어 하얀 초코파이를 발매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이 정도로 생각했으니 어쩌면 벌써 하고 있을지도...
딸기우유는 사은품.
어쨌든 '3월 14일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봐야 한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걸 나름 주절주절 증명해보았다.
Q.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