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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투 Mar 03. 2019

그래비티

우주를 날아

*영화의 주요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멀리 우주왕복선이 보이다가 가까워지면서 작업 중인 라이언 박사(산드라 블럭)와 베테랑 우주인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어느새 카메라는 라이언 박사의 헬멧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시점이 되었다가 다시 멀어져 지구를 배경 삼아 우주에서 작업 중인 이들을 보여준다. 

이 첫 장면은 아주 길게, 커트 없이 계속된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조용한 잡담 수준의 대화가 오가다가 위성의 잔해가 덮치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궤도에서 이탈하듯 튕겨져 나간 라이언이 무한한 관성으로 멀어져 가고, 고조되던 효과음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시커먼 우주공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의 공포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 공포라는 게 두려움, 외로움과 절망으로 넘쳐나는 바다에 내던져진 것을 뛰어넘는다. 

 

한가한 오후를 틈탄 대낮의 넓은 극장은, 직원이 3d관람용 안경을 비치하는 걸 깜빡할 정도로 관객도 얼마 안되어 그야말로 우주공간에 홀로 내팽개쳐졌다는 착각도 잠시 들었다. 


우주공간에서의 나 홀로 유영은 기존의 우주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낭만적이기는커녕 섬찟했다. 

우주공간은 진공상태이기에 소리를 전달할 매개체가 없어서 소리도 없고 기온도 영상 100도에서 영하 100도를 넘나들며, 한번 시작된 운동은 아무런 저항이 없기에 무한한 관성으로 멈춰지지 않는다. 

물론 중력도 없는 무중력 상태이다. 

그런데 왜 제목을 '그래비티(gravity : 중력)'라고 했을까? 


 

라이언 박사는 예전에 어린 딸을 사고로 잃었다. 

딸을 잃고 난 엄마, 라이언 박사의 퇴근 후 유일한 소일거리라고는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드라이빙을 하는 것.

지구에 살고 있지만 누구 하나 그녀를 끌어당기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일상이었다. 

아름다운 지구를 배경으로 우주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정작 지구에서는 그녀를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봐주는 사람 하나 없다.  

그런 그녀가 우주에 홀로 버려졌으니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도 없겠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자포자기할까 하는데.. 

무언가가 자꾸만 그녀를 '삶에 대한 희망'으로 끌어당긴다.  

또 다른 어머니인 '지구(mother earth)'는 그녀를, 딸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당긴다. 

그래비티(중력)는 삶을 지탱케 하는 힘, 사랑이다.  


3D효과는 우주선의 잔해들이 덮치는 장면에서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장면보다는 오히려 밀폐된 작은 우주선 내부 장면에서 더 빛을 발했다. 

라이언의 눈에서 흘러나온(무중력 공간인 우주에서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 눈물 한 방울이 둥실둥실 유영하며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조그마한 눈물방울이 공간을 건너와 내 눈앞 허공 위에 떠있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3D 효과는 충분했다. 

눈물 한 방울에 우주가 담겨있다.

 

이 영화는 중력을 갖고 있다. 엄청난 힘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물론 이 중력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비티'는 시각적으로도 훌륭하지만 '듣기'에도 좋은 영화이다. 

귀에 익은 노래 한곡 없지만 소리가 없는 우주공간을 표현한 효과음이 대단하다. 

그래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드라 블록의 상처 받은 듯 연약한 사람을 표현한 연기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인상적이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니 쥐가 나도록 발에 힘주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데, 그게 지구에 무사히 착륙한 느낌..이라면 너무 오바쟁이 같으려나. 

가끔 바라보는 하늘,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려보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 

우주정거장에서 퉁퉁부은 얼굴로(무중력 상태라 얼굴이 붓는다는데 도대체 산드라 블록의 얼굴은 왜 안 붓는 거얏!) 교신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수많은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결국 남자 후보 고산 씨를 뒤로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던 그녀가 국정감사에서 구설수에 올랐었다. 

그녀에게 투자된 돈이 몇백억인데 우주여행만 하고 나몰라라 하는 먹튀네, 국적을 포기할 것이네 어쩌고 하면서.. 

어디 사람이 투자의 대상인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대상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떡하라고  ㅠㅠ)

이소연 박사는 약속대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완수했을 뿐이고 그 이후의 행보는 순전히 그녀의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애당초 기획단계부터 잘못된 것이고, 그녀가 소속된 항공우주연구원의 책임이며 국가의 책임이다. 

전공 살려 먹고사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되는지.. 원.(고산 씨도 현재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며 먹고살고 있단다) 


라이언 박사도 아마 소화기 홍보대사로 살아가고 있을런지도...    

어쨌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우주이다. 

 


무서워도 좋으니 우주여행 한번 해봤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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