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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4. 1 몰디브, 청춘의 바다

인도양의 보석 몰디브에서

산 넘어 바다로

대다수의 학우들이 취업 준비에 여념 없던 대학교 4학년 시절 난 천하태평이었다.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떠났고 평일에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던 대학교 캠퍼스의 벤치가 좋았다. 평점 0.5점을 올리기 위해 이 명당을 포기 할 수 없었다. 토익점수 몇 점 보다 연둣빛 햇살 즐기며 독서를 하는 것이 대학에서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책 속의 작가와의 데이트가 지루할 때면 솔솔부는 바람에 낮잠을 청했다.


잠시, 자퇴의 유혹이 있었지만, 대학교 4학년 생활은 조용히 지나갔다.

 졸업을 앞둔 2월의 어느 날,  문득 뒤늦은 고민이 찾아왔다. 졸업하면 뭘 하지?

취업이라는 그물에 잡히지 않아서 그랬을까? 세상은 넓고, 가보지 못한 곳은 많고, 한국이라는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세계를 보고 싶었다.


 동아리와 함께 산으로는 가봤으니, 바다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해전 주말에 본 인간극장이 떠올랐다.

인도양의 작은 섬에서 일하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였다. 티브이 속 그들의 일은 에메랄드 바다 위 그림 같은 리조트에서 손님들과 함께 스노쿨링하며 노는 것이었다.



'그래! 몰디브로 가자!!'


몰디브에서 일하려면 관광분야을 능통해야 했지만, 대학전공과 전혀 관련 없었고 해외에서 일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했지만, 내 영어는 요즘 초등학생 수준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이 생기자, 우주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미취업자를 위한 국가지원 해외취업 프로그램이 있었다. 프로그램에는 영어교육은 물론 호텔 관련 교육도 포함되어 몰디브 취업에 안성맞춤이었다.

영어는 부족했지만, 대학생 때 대외 활동들을 통해 자신감도 있었고 조건들도 맞았다. 서류, 면접의 과정을 거쳐 당당히 합격했다.


6개월은 영어공부에만 매달렸다. 왜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이 공부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라는지 그때야 깨달았다. 조금 늦었지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났고, 영어공부에 몰입했다.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매일 영어로 일기도 쓰고, 심지어는 꿈속에서 외국인들과  말하는 나를 볼 수도 있었다.

해외취업 프로그램의 종료 전,  취업의 문이 열렸다. 시험점수는 여전히 부족했지만 6개월 동안의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참가자를 가르치고 돌봐주시던 매니저님은 스리랑카 및 몰디브에서 관광업을 하시는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주셨다.

영문 이력서 작성, 영문 자기소개 모든 것들이 가슴 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스카이프 면접을 마지막으로 몰디브 신생 리조트에 취업할 수 있었다.


인천에서 스리랑카 네곰보공항을 거쳐 몰디브 말레 공항까지 12시간, 국내선으로 KAADEDHDHOO 공항으로, 다시 고속보트로 리조트로 이동하는 긴 여정이다. 사진에서만 보던 에메랄드 바다와 고운 입자의 하얀 모래가 나를 맞이했다. 작은 산호섬을 전체를 리조트로, 분위기 있는 수상 방갈로가 신혼여행객과 휴양객을 유혹하는 곳이었다.


까칠한 룸메이트

 HR 부서 담당자와 리조트 건물을 둘러보고, 유니폼을 맞추는 것으로 몰디브 첫날을 시작했다. 나는 직원숙소를  터키 친구 모하메드와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no good, no good!"을 어찌나 외치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할지몰라, 쭈삣쭈삣 서있기만 했다. 무슨 영문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얼마 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신은 무슬림으로서 매일 5번의 기도를 해야 한다며, 날 내 쫓았다. 반강제에 가까웠다.

하루 5번, 새벽 (파즈르) 정오 (주흐르) 오후 (아스르)저녁 (마그립) 밤 (이샤)가 그것이다. 이 시간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데, 여름에는 새벽 예배가 3시쯤까지 빨라지고, 밤 예배는 9시대까지 늦어지기도 했다. 정오, 오후, 저녁 기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새벽녘 한참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무렵, 파즈르를 할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예배 전에는 반드시 몸을 청결히 닦아야 하는데 이것을 "우두"라고 한다.

우두를 행하지 않으면 예배를 볼 수 없으며, 만약 우두 없이 예배를 드리면 기도가 무효가 된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이른 새벽, 화장실에서 온갖 소리를 다 만들어 냈다. 특히 입속을 씻어야 하기야 그의 가글 소리는 조용한 새벽 나의 잠을 깨우기 충분했다.

우두를 마친 그는 좁은 방, 침대 사이에서 기도를 했고, 코란 외우는 소리와 절을 할 때 마찰하는 옷가지와 숨소리는 잠을 깨우는 확인사살이었다.

신성한 종교와 예배를 가지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수면의 질은 계속해서 나빠졌고, 매일 이어지는 종교행위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부족이었다. 리조트의 생활을 먼저 시작했고, 방을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가 나의 상사나 선배가 아닌데도, 그의 태도는 안하무인이었다.

문화 다양성 인정과 개인의 행복 추구의 두 관념은 분명히 부딪치고 있었고, 몇 주가 지나도 혜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얇은 하얀 이불을 뒤집어쓰고 참을 인(忍)을 떠올리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유엔군으로서 한국을 도와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터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뛰어난 인격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룸메이트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렇다 할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를 적으로 만들 수 없었기에 대부분의 그의 생활수칙을 따랐다.


몇 달 후, 무하메드는 같은 무슬림 친구와 한방을 쓰고, 나는 새로운 직원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이 친구는 말도 잘 통하고 친절했다.

말레이시아의 중국계라서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까지 3개국어를 하는 유능한 룸메이트가 생겼다. 더군다나, 직책이 주방장이라 매일 저녁 친구의 양손을 가득한 보따리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직원식당에서 질리도록 먹는 퍽퍽한 삶은 참치, 몰디브카레 대신, 신선한  참치뱃살이나 가제 요리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적도의 푸른 바다가 내 첫 직장


리조트에서 나의 일은 GRO 혹은 버틀러라고 불렸다. 손님이 보트를 타고 리조트 선착장에 내리면, 라운지에서 시원한 물수건과 웰컴 드링크를 드리면서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작은 산호섬이라고 하지만, 먼 길을 오신 손님들을 위해 버기카(골프장에서 흔히 보는)를 운전해 손님들은 예약한 방으로 안내한다. 운전을 하며 리조트 내 시설을 설명하고, 방안의 물건과 에어컨, 전등 버튼 등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이외 손님들의 식사 예약 및 각종 활동에 대한 예약과 조언 등이 주된 일이다. 한 마디로 리조트 내, 손님들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버틀러는 몰디브 인이어서 아시아계 손님 대부분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첫 개장을 기념하여, 한국 여행사를 통해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손님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으로 눈코 뜰세 없이 바빴다. 당시, 리조트에는 마사지 테라피스트 한 분과 다이빙센터에 미국 시민권자 제니가 한국어를 사용해 손님들을 도왔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위치상 손님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접해야 했다. 더군다나 오픈 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내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한국 직원으로서 그에 따른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적도의 뜨거운 곳이다 보니, 몇몇 중국인과 한국 여자분들이 햇빛 알레르기로 의사를 모셔오고 통역을 하는 일도 있었다. 모든 방에 비품들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손님들을 받아, 웰컴 패키지로 와인과 과일을 준비해 뒀지만, 섬 내에 와인따개가 부족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와인따개 배달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파도가 높아,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다음 날 방 이용과 환불 등의 문제에 대해 리조트와 한국인 손님들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관광업계에 일하면 시즌과 비시즌이 있기 마련이다.  몰디브도 5월에서 9월은 장마나 비가 오는 날씨여서 비시즌 혹은 로우 시즌으로 분류된다. 사실 이때는 직원들의 통장은 가벼워지지만, 추억의 사진첩은 늘어나는 시기이다.

쉬는 날이면, 다이빙센터로 달려가 고객이 되었다. 바닷속에는 형형색색의 산호와 하늘을 나는 듯 우아한 가오리, 각종 물고기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산에서 볼 수 없는 바닷속 푸르른 매력을 마음껏 즐긴다.


한산한 리센셥 데스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영국의 보호령 아래 있은 역사와 관광산업이 국가 주동력이라, 대다수의 젊은 친구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고, 대화는 끝이 없었다. 몰디브는 관광업 이외 수산업과 코코넛이 유명하고 스리랑카에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국가의 발전 속도가 느리고 빈부격차가 심했다. 고급 리조트가 들어온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주된 원인을 제공했다. 이슬람 문화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신을 주제로 토론할 때에 동료의 진지함과 내용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반대로 동료는 한국 여자들이 아시아에서 제일 이쁘다며, 한국에선 연애는 어떻게 하는지, 결혼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증을 묻기도 했다.


비시즌 어느 날이었다. 담당한 손님이 1커플 밖에 없어, 시간이 남았고 몰디브 직원들과 다이빙을 하러 나갔다. 사실 다이빙을 빙자한 문어 사냥이었다. 매니저급 상사들이나 다이빙센터 직원들이 알면 펄쩍 뛸 일이지만, 수개월 반복된 섬생활의 일탈을 막을 길은 없었다. 3명의 특공대는 숨겨진 문어 포이트를 찾아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나 찾았을까? 내 두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오! 저기 저기!' 손짓으로 문어 있는 곳을 가리켰고, 제이슨은 신속하고 빠르게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바위 밑의 문어가 우릴 발견하고 먹물을 뿌리며 달아났지만 명사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피육' 작살이 몸통을 관통했고, 우린 사냥에 성공했다.

저녁 만찬은 몰디브 자연산 문어라면이다!

시원한 라면 국물에 소주까지 마시니 몇 주일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

가끔 한국 신혼여행객들이 남기고 간 인스턴트 음식은 비공식적인 모임에 큰 힘이 되었다. 특히 한국인 직원인 나는 버틀러 및 직원들 사이에서 라면, 소주 부자로 통했다.


스트라이크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은 상태에서 파업 사태를 맞았다. 중요한 배경으로는 직원들을 만족시키지 못 하는 메니지먼트의 무능력과 인력 부족, 비품 부족에서 오는 많은 업무, 두 번째로 오너의 독재에 가까운 이해 못 할 행동들이었다. 기름이 쏟아진 이 상황에 불을 집힌 건 페이스북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당시, 담수 기계에 문제가 생겨 리조트에 문제가 있었고, 손님들에게 물을 공금하고 나면 직원들은 샤워는커녕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냉장고에 오너를 위한 물병이 들어 있었고, 이것을 본 몰디브 직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문제가 되었다.


오너는 사진을 포스팅한 친구 두 명을 불러 사과를 요구했다. 사퇴를 하든지 아니면 법정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갈 것이라고 했다. 관련자 2명은 어느 옵션도 선택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제안을 묵언으로 거절했다. 다음 날 그 2명은 해고 조치되었으며, 섬을 떠나라는 명을 받았다. 이에 격분한 몰디브 직원들은 예고 없이 파업에 들어갔고, 양쪽의 감정은 서로 격해졌다. 오너는 손가락 욕설을 사용하고 몰디브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다.

신문에 리조트 파업 소식이 올라가고 경찰과 정부 관계자과 급하게 파견 나왔다.

파업에 참가 중인 한 친구가 의사를 물어왔다. 고민을 했지만, 난 그들을 지지했고 유일한 외국인 파업 참가자가 되었다.

대다수의 동료들이 몰디브 친구들인 것도 있었지만, 오너의 결정이 잘못되었다.

직접적으로 일선에 나서지 않았지만, 방에서 쉬며 일을 나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들리는 고함소리에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괜히 친구들 때문에 나까지 피해를 보는 건 아닐까..?'


한편으로 높은 위치의 몰디브 직원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기득권과 앞으로의 평판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은 페이스북이라는 곳이 열린 공간이지만 회사에 피해를 끼칠 소지가 있다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방에 누워 파업에 참가 중인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마치 내가 배신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는 것은 개인에게도 파업 중인 친구들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몰디브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오픈 초반, 참고 견디며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던, 자신의 직원을 대하는 오너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를 도와 리조트를 이끌어야 할 경영진의 무능력 또한 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주요 이유 일 것이다.


스크라이크는 며칠 지속되지도 못한 체 끝이 났고, 그 달 경영진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소수의 몰디브인 직원과 대다수의 중간 간부들, 외국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50$를 지불했다. 당연히 나는 받지 못했다. 무슨 의미의 돈이었을까?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또 다른 꿈을 향해

몰디브 입국 전, 부자들의 삶과 사고가 궁금했다. 그들은 어떻게 휴가를 즐기며 어떤 생각을 할까?

실제 고객들과 이야기하며 느낀 것은 그들 역시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고, 행복한 삶을 쫓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최고로 생각했다. 타고난 조건이 좋아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게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내 성취였다.

첫 직장을 통해 배운 한 가지는, 꿈꾸는 이상과 현실은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에서 손님들과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바다까지 데려다주고, 픽업하고, 레스토랑 예약하는 등의 서비스 업무의 반복이었다. 손님의 기쁨과 직원의 미소의 거리는 조금 멀었고, 손님의 불만은 직원의 얼굴에 맞닿아 있었다.


코코넛 잔뜩 달린 야자수와 꽃들로 가득한 작은 섬, 내려쬐는 태양아래 하얀 모래사장을 나서면 투명한 바다를 가오리가 유영하고, 밤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는 곳. 그곳 몰디브가 첫 직장이라는 것이 참 행복하다

몰디브의 생활을 정리하며,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물론 이 꿈은 현실에서 상상력보다는 조금 작게, 혹은 다른 방향으로 실현될지 모른다. 하지만 꿈은 크게 꾸고 현실은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긍정의 다리를 놓아 두 간극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대한민국도, 몰디브도 가라앉고 있다.

1,192개의 산호섬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나라 몰디브는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2009년에는 사상최초로 '해저 각료회의'가 이 곳에서 열렸다. 대통령을 비롯한 10여명의 참가 지도자는 산소통을 맨 채 물속에서 수신호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는 매년 2.5mm씩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몰디브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평균해발고도가 2.5m에 불과한 몰디브는  2050년이면 몰디브의 약 80%가 바다에 잠기고, 2100년이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 많은 신혼여행객과 내 첫직장의 추억을 간직한 이 곳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히말라야 만년설, 남극, 북극, 그린란드를 포함한 대륙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고 있기 때문이다.


  해수 열팽창 효과가 지역마다 상이해 지역별 해수면 상승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전 세계 해수면은 매년 평균 1.8mm씩 상승하고 있다. 북서태평 해역은 연간 5mm 안팎으로, 우리나라는 검토하는 기간에 따라 세계평균치와 유사하거나 평균치보다 2배 정도 상승하는 특성을 보이는 등 장기 변동성이 크다. 국립기상연구소가 2011년 국제 표준 온실가스 시나리오를 이용해 산출한 기후변화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50년 까지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3.2도, 강수량은 16%, 전 해상 해수면은 평균 27cm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빡빡하고 정신없어도 우리모두는 잠시 멈추어 무엇이 중요한 일이지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보고,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생활 속 실천을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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