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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5. 3 꿈의 길 #3, 히말라야 무동력 횡단

티벳을 누비며

중국 국경, 카슈가르

쿤자랍 고개 너머 위치한 중국 검문소는 여행자들에게 악명을 가지고 있다. 바로 피도 눈물도 없는 검문 때문이다. 여행자들의 필수품인 지도는 물론이고 티베트 관련 영상이나 사진 책등을 모두 금지한다. 심지어 여성의 생리대까지 검사할 정도로 중국 정부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


원정대는 여행객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여러 장비들과, 촬영장비로 인원 및 일정을 재조정하였다. 중국정부에서 티베트의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 촬영감독님과 PD님은 한국에 들어갔다가 네팔에서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 방송사의 전문 촬영 장비는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고 촬영은 대장님과 김현정 조연출이 전담하고 상현과 내가 보조하며 원정 일정을 기록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부터 원정대를 도와준 친절한 복만형은 국경 넘어 카슈가르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쿤자랍 고개에서 중국 국경 검문소로 가는 길은 마치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 수십 년 침범 받지 않은 DMZ처럼 순진무구한 자연을 적막 속에 잘 간직하고 있었다.

국경이 그어지기까지 어찌 피비린내가 없었으랴? 역사의 아픔은 시간을 만나 거름 되어 야생화를 피우고, 생명의 요정들은 들판을 뛰어논다.

거대한 산을 넘는 길은 산맥의 위엄에 도전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길들은 산허리를 감으며 오른쪽, 왼쪽 굽이치며 오르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비틀비틀 취한 듯 내려온다.

작은 차 한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산간도로는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며, 자유의 완만함으로 우리를 중국이라는 대륙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중국 쪽 국경 사무실은 타시쿠르칸 산간지역을 훨씬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지은지 몇 년 되지 않은 새 건물이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여행자들을 맞이 하고 있었다.

원정대원들은 단체복으로 옷을 맞추고, 중국 공안의 심기를 건드릴만 한 물건은 모두 제거하였다. 만반의 대비는 효과가 있었고 악명 높은 검문소를 뒤로하며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카라쿨 호수의 수려한 모습에 취해 자전거를 세운다. 텐트를 치고 캠핑 준비를 하는데, 게르에서 뛰어나온 아이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한참 엉터리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고, 사진 찍으며 놀다 해가 진다. 호수에 찍한 설산에 떨어지는 별을 세며 중국에서의 첫 날밤을 보낸다.


파키스탄 흔적이 잔뜩 묻어 있어서 일까? 새로운 경치를 보며 떠나온 그곳의 모습을 떠올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신장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로 진입했다. 간판에는 커다란 중국어 밑으로 위구르 어가 보이고,  시내에 들어서니 한족, 장족, 위구르족이 돌아가며 우리를 구경한다.

작은 국토에 같은 민족만 살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너무 익숙해서 일까? 그렇지 않다면 중국을 대표하는 붉은 옷을 입은 눈 작은 아가씨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그랬을까? 이곳은 전혀 중국스럽지 않았다. 이 느낌은 내가 '중국스러운'이라는 말을 너무 좁게 생각하며 살아온 증거이다. 대륙에 왔으니 좀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겠다.

이동, 티베트로

카슈가르에서 219번 국도를 타고 쭉쭉 내려와 카일라스를 거쳐 네팔로 가겠다는 계획은 크게 수정되었다. 여행이나 우리의 인생이나 계획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큰 불만이나 실망은 없다. Let it flow!

원정대는 자전거를 분해하여 짐을 싸고 카슈가르를 출발하여 우루무치, 청도를 경유하여 티베트로 향한다. 비행기가 내려앉으며 활주로를 달리다 서서히 멎고, 엔진이 꺼지고 문이 열리고 원정대는 '신의 땅'이라는 서장 자치구 최대 도시 라싸에 첫 발을 내디뎠다.


아침 햇살이 새벽안개를 뚫고 포탈라궁을 엇비스듬히 비추고 오체투지하는 순례자는 하루의 고행을 시작한다.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궁 앞의 시멘트 땅에 문지르며,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기도를 올린다. 저들의 행위는 가치가 있을까? 나의 이 히말라야 무동력 원정은 저들의 처절한 행위와 같은 것인가? 삶을 던진 이 원정은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의 하늘에서 땅으로 자신을 바치는 고아(高雅) 한 동작 자체가 눈길을 사로 잡지만, 곧 저들 모두가 순수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돈을 위해 이 고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이란 동물에게 먹고사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고, 대부분의 재화가 돈으로 거래되는 이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각자가 선택한 방법을 비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익숙하게 절을 하고 주변에 보시할 사람을 찾는 꼬마 아이의 모습은 라싸의 첫인상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기록되었다.

진실한 우리의 믿음이 결여된 저 포탈라궁과 불상은 그저 쇳덩이, 나무, 돌덩어리 일 뿐이다. 절실한 기도가 없다면, 수 천년 된 돌탑도, 고찰도 먼지처럼 사라질 원소의 결합일 뿐이다. 그저 자연계의 물질일 뿐이다. '사람'이라는 가치가 빠진 종교는 허상이며 거짓이다.


신기루 같은 생멸의 땅

카슈가르를 떠나며  부친 짐은 며칠이 지나도 라싸에 오지 않고 있었다.각종 운행 장비와 식량으로 무게가 많이 나갔기에 항공편 대신 육상 교통 편을 선택했었다. 택배 회사가 호언장담 했던 도착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 있었고 원정대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한국 음식, 쾌적한 텐트, 캠핑의자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지만, 귀중한 시간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대장님의 결정 내려지고 자전거와 배낭 하나 울러매고 숙소를 떠나 티베트의 제2의 도시 시가체로 나아간다.


'야호! 다시 출발이다!' 불교도 포탈라궁도 좋지만 지금 이 순간 나의 불경은 자연 안에 있다.  거친 호흡과 옷을 적시는 땀 안에 있다. 라싸 시내의 상점들이 멀어지고, 하늘과 땅 사이, 바람, 구름, 능선, 강, 나무가 책장을 넘긴다.


해발 평균 고도 4,500m, 세계 최대, 최고의 고원을 자전거로 달린다.

평탄한 길을 갈 때는 풍경이 들어온다. 산, 들, 강, 자연과 사람들의 마을이 보인다. 사물의 겉모습을 인지하고도 여유가 넘치면 외형 너머 내면을 본다.

평평한 길이 주는 선물같은 시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막을 만난다.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소리, 허파를 넘나드는 호흡의 양은 늘어간다. 체인의 마디마디가 끊어질 듯 비명을 지르지만, 앞, 뒤 변속기, 구동축 베어링의 응원을 받아 다시 굴러간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기어를 낮추어 페달에 걸리는 힘을 작게 쪼개어야 한다. 튼튼한 심장과 근육질 다리를 가졌어도 기어를 올려 강한 힘만으로 경사진 길을 오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게는 몇 분 가지 못해 포기하고 고개 넘어가는 자동차만 멍하니 바라볼게 될 것이다.

오색 깃발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는 고개의 정상을 지날 때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바람의 말(룽다)이 전하는 부처님의 경전 소리에 그런 걸까? 깃발에 새겨 넣은 불제자의 간절한 소망 때문일까?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사람은 내 의지가 곧 길임을 안다. 세상에는 의지가 곧 길이 되는 일이 많지 않다. 여러 조건들의 무게에 짓눌려 의욕이 꺾이고, 처음 가졌던 담대한 의미는 가로막히고 비틀어져 변색된다. 자전거가 좋은 이유는 주관의 발현이 분명한 결과로 이어지는 간결성에 있다.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다.


티베트 고원을 달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시공간은 귀중했고 길은 아까웠다. 건조한 고원을 내리쬐는 빛과 대지의 야생초를 흔드는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한 덩어리가 솟아올라 심장을 울리고 허벅지며, 종아리며 붉은 피를 불어 넣는다.

"와~와~와~" 가슴이 먼저 소리치고, 목구멍도 얼굴도 뒤따라 행복의 비명을 질러된다.  길이 아까워서 천천히 가고 싶은데, 길이 너무 좋아 허벅지는 페달을 밟아 된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황막한 벌판은 뒤로 지나가고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가슴에 와 안긴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풍광 속에 구르는 두 바퀴에 인생을 던진 나의 삶도 고개를 넘어 흘러간다.

기어를 최대로 끌어올려 더 강하게 더 강하게 내달려본다.

라싸에서 시가체

타시룸포 사원에 도착했다. 이 사원은 1447년 첫 번째 달라이 라마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에 위치한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라싸의 포탈라궁이 달라이 라마의 상징성을 간직한 사원이라면, 타쉬룸포 사원은 판첸라마를 대표하는 사원이다.

 정신적 지도자인 현 달라이 라마는 1995년, 당시 6세이던 치에키 니마를 후계 판첸 라마로 지정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차기 판첸 라마와 그의 가족 등을 연금하고, 공산당 당원 가계 출신인 기알첸 노로부를 판첸 라마로 직접 임명했다. 치에카 니마는 이후 행방이 20년째 묘연한 가운데 중국 당국에 의해 연금된 것으로 알려졌다.[네이버 지식백과] 판첸 라마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이곳에는  11대 판첸라마(아미타불의 환생자) 가끔 머무르는 곳으로 티베트인뿐만 아니라 중국 내 불교를 믿는 한족도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달라이 라마가 지정한 판첸라마는 존재를 감추었고, 중국이 새롭게 지정한 '기알첸 노르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중국이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신을 지배하기 위한 문화, 종교적인 교화 정책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약자로서의 역사적 기억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결코 편하지 않은 장면이지만, 여기에선 제 삼자로서 무엇을 할 필요도, 해서도 안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우연한 기회였다. 원정대는 운 좋게 그를 만나 볼 수 있었다(누군가 전생에 좋은 일을 했을지도!). 사원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긴 안테나를 장착한 SUV가 보이길래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행사해요?" "지금 판첸라마가 나올 거예요!" 판첸라마가 불경 해설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스님과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우리 팀도 그 사이에서 스피커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강의를 마치자 곧바로 차에 올라타 그의 용모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대장님과 상현이의 빠른 순발력으로 사진을 몇 장 건졌다. 나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찍었고, 본 방송도 사용되는 영광을 누렸다. 판첸라마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을까? 사원의 모든 스님들은 강의가 있었던 건물에 모였던 것 같다. 노스승님을 모시고 돌아가는 젊은 제자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들은 현재의 판첸라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자신이 모시는 승려보다 더 지혜로운 스승으로 인정할까?

그리고 저 노스님은 이 젊은 판첸라마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북적북적 거리던 사원이 잠잠해질 때 대장님의 시선에 들어온 한 노스님이 계셨다. 세상 어디를 가도 자신의 뜻대로 사는 분들이 계시다. 이 노스님도 그런 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의가 있던 곳과 전혀 떨어져 자신의 갈 길을 가시고 계셨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지겨워 땡땡이친 초등학생 같기도, 세상사에 걸림 없는 신선 같기도 했다.  까만 렌즈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 신기한지 주름 가득한 미소로 사진기를 응시하신다. 주름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여전히 삶의 구석구석, 작은 것들이 재미있고 즐거운 모습이다.

포탈라궁에서 깨어져 떨어져 나간 티베트 불교에 첫인상이 이곳 타쉬룸포 사원의 나이 든 스님의 미소에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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