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회색 안갯속 운전대만 꽉 잡고
지금까지 쌓아온 스펙으로
왜 이런 '허튼짓을 하냐고.
제발 '쓸데없는 짓' 좀 그만 벌이라고.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실험'이 누군가에겐 굉장히 쓸데없어 보일지 몰라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현재 나의 단단한 행보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그 어떤 것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쉬이 정의 내릴 수 없다.
난 명상을 통해 내 평생의 삶의 치트키를 얻었고, 부동산 공부 덕분에 공간 브랜딩을 하는 데도 훨씬 식견이 넓어졌다. 스마트스토어 공부를 해놔서 현재 강의 상품도 쉽게 판매할 수 있었고, 에어비앤비 운영 경험을 해보니 향후 내가 꿈꾸는 공간 관련 사업기획을 하는 데에 큰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유아부터 성인까지 영어를 가르쳐본 경험 덕에 이후에 들어온 다양한 강사일도 큰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로 공연 데뷔 이후 매년 꾸준히 행복하게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뮤지컬 강사의 기회도 얻었다.
모든 경험은 쓸데가 있다. 없어 보인다면 그 경험들을 쓸데 있게 쓰면 된다.
텅 빈 나의 정체성에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새로운 경험을 강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3일 밤을 새우는 게 우스울 정도로 빡센 건축 학교에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마치면 다들 집에 가서 그동안의 부족한 잠을 채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시험기간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못 채운 ‘경험’들을 채우러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달려갔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표정을 지닌 뉴욕의 거리는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영감을 얻는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서 그런가, 맨해튼에서 반나절만 있어도 에너지가 충전돼서 막 뭐라도 하고 싶은 열정이 절로 생긴다.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귀한 경험들을 한 아름 안고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브루클린에 있는 내 방으로 돌아오는 게 나의 루틴이었다.
한국에 왔다고 해서 밖으로 빨빨거리는 내 루틴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정체성에 갈증을 느끼는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채우며 상상력을 키워갔다. 단지 이전과 달라진 점은 나의 영원한 경제적 서포터일 것 같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의 상상력에 현실적인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 더 이상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몽상에서 벗어나 이 현실 바닥에 발 딛고 내려와 '숫자'라는 결과물, 즉 수익으로 창출해야 했다.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기 위해 수업을 등록했고 주말에는 함께 스터디하는 분들과 함께 대전, 천안 등 여기저기 임장도 다녔다. 공부한 지 반년이 지날 쯤엔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대전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경매 입찰을 한번 시도해 보긴 했지만, 경매의 A부터 Z까지 100% 빠삭하게 알지도 않은 상태에서 큰돈을 움직이는 건 내 투자성향에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소액으로 시작할 수 있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관심을 옮겨 공부하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래도 난 이 지구에 더 이상 제품을 생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또 그만뒀다.(내가 한때 3년 동안 비건이었다는 했다는 이야기는 했던가?)
이후에도 몇 년 간 계속된 다양한 청강과 스터디. 아마 내 월급의 반 이상은 수익화를 위한 공부를 위해 쓰지 않았나 싶다. 금전적인 압박 속에서 이제 나의 정체성을 '숫자'로 찾으려고 했던 나였다.
그래도 이전에 했던 부동산 공부 덕분인지 공간 임대업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된 나는 퇴사 준비 중에 에어비앤비에 관심을 갖는다.
당시 이태원 클러버들을 위한 적절한 숙박시설이 없다는 상황을 파악한 나는 적극적으로 에어비앤비를 위한 집을 구하기 시작했고, 이태원역 1분 거리 분리형 원룸을 월세 80만 원을 내면서까지 에어비앤비 오픈을 준비했다. 손님들 오기 전에 예쁘게 조명들도 켜두고, 머리카락 하나 남기지 않으려고 머리를 묶고 현관까지 뒷걸음치며 룸 스프레이를 뿌리는 내 모습에, ‘이래 가지고 나중에 다른 청소업체를 쓸 수 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운영을 했다.
유난스러운 애씀을 손님들도 알아주신 건지, 나는 한 달 만에 슈퍼 호스트 배지를 얻었고, 주말만 운영하는 가오픈 만으로도 매출이 월세 두 배는 거뜬히 넘겼다. 하지만 한 달 만에 희망 가득했던 내 이태원 방은 코로나19로 인해 바로 폐업된다.
퇴사와 함께 맞이한 첫 사업 실패, 당시 남자친구와의 이별, 아버지의 임종 후 계속되는 자잘한 가족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온 나는 크나큰 슬럼프에 빠졌다. 고요한 집안에 콕 들어박혀 한동안 밖에 나오지 않은 나는 개미 새끼 하나 안 나올 정도로 휑해진 이태원 메인 거리의 이질감과 닮아 있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술병들이 굴러다니는 바닥을 멍하니 쳐다봤던 때가 있다. 한 달 가까이 지속되는 이 무력감에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 죽겠다 싶을 때 번뜩 떠올린 건 10년 전 미국에서 짧게 경험하다 만 '명상'이었고,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명상의 매력에 빠진 나는 명상 지도자 과정 듣는 중간중간 브랜드 컨설팅 아르바이트, 영어 과외, 영어 학습지 방문 교육, 새벽 물류센터 상/하차 일용직 업무, 그리고 이 와중에 하고 싶은 거 하나는 해보겠다며 도전한 창작극 오디션에 붙어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올린다.
자, 여기까지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벌이는 나를 보며 주위에서는 의아해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스펙으로 왜 이런 '허튼짓'을 하냐고. 제발 '쓸데없는 짓' 좀 그만 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