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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곳에도 없는 Dec 16. 2021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퇴근 후 자전거'를 시작한 지 벌써 세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 계획한 12회 중에서, 이제 남은 회차는 (오늘 레터 포함하여) 2회. 처음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지를 태웠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퇴근 후'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깨달은 두 사람.


오늘의 '퇴근 후 자전거'는 셀린과 루비가 2회차를 앞두고 지금까지 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했다.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어땠는지, 또 레터를 쓰며 어땠는지. 아무 말 같지만 꽤 쏠쏠한 대화를 기록해 보았다.


셀린

루비





1. 그래서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셀린: 그래서 루비는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루비: 저는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저희가 ‘퇴근  자전거 시작한 , 자전거를 타며 만난 좋은 순간을 간직하자! 목적도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너무 일만 하니까, 우리 인생에  말고  자신을 기록할  있는 장치를 만들자!’  조금  앞선 목표였잖아요.


셀린: 그러니까 '기록을 하자'였는데.. 기록을 차근차근   아니라, 결국 마감 앞에서 쥐어  거가 됐잖아.(ㅋㅋㅋㅋㅋ)


루비: ㅋㅋㅋㅋㅋㅋㅋ




2. 하면서 어땠어요?(4화 까진 좋았어)


루비: 그래도 ‘퇴근  자전거하면서 어땠어요?


셀린: 나는 정작 자전거를 많이  , 기록해두지 않았던 거야. 그러니까 한창 우리가 자전거를 엄청  시기가 있었잖아. 그때 미리미리 기록을 해뒀어야 했는데, 매일 너무 바쁘기도 바쁘고, 한여름이라 덥기도 더워서.. 금방 지쳐서 (기록 자체를)  쓰고 있는데, 레터를  써야 하니까..


루비: 기록을 미루게  거죠.


셀린: 그랬네.


루비: 제때 기록했어야 했는데. 그때그때 귀찮아서 미뤘죠.


셀린: 자전거를 타는 순간들은 뭔가 좋았었는데, 그때는 분명히. 그치?


루비: 좋았어요. 그렇게 우리가 '퇴근  자전거' 레터 4화까지는 좋았어요.(ㅋㅋㅋㅋㅋ)


셀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비: 직장인이 퇴근 후에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어렵잖아요.처음 우리가 예상했던 퀄리티에   미치더라도, 그래도 뭔가를 했다! 일단 뭔가를 하고 있다!  심리가 주는 성취도 있어요. 스트레스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대화의 길을 잃음..)


셀린: ㅋㅋㅋㅋㅋㅋ 무슨 말이야. 문장을 맺어줄래?


루비: 으어어아아아아. 지금  말은 못쓸  같네요.





3. 자전거 타면서 언제 행복했어요?


루비: 그래도 자전거를 타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어요? 여름 내내 탔잖아요.


셀린: 내가 원래   있다고 허락한 것보다, 멀리 갔을  좋았어.훨씬 멀리 갔을 . 진짜 그냥 아는 , 나는  이만큼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달리다 보니까 도시도 넘고 행주산성까지 그냥   있더라고? 힘들긴 했지만 뭔가 달리니까 가게 되네? 이런 느낌?


루비: 작은 성취를 이루셨군요.


셀린:  성취지.


루비: ...!(깨달음)


셀린: 크지.  원래 자전거도 제대로  탔는데..


루비: ㅋㅋㅋㅋㅋㅋ 끊임없이 옆에서 자전거 얘기하길 잘했어.


셀린: 진짜 자전거  생각도 없었는데. 진짜 끊임없이 얘기를 했으니까 내가 어느   앞에 따릉이를 보고 '오늘 날씨가 되게 좋은데 타볼까?'라고 생각했을  아니야.


루비: 박수!





4. 여름 내내 자전거를 타면서 버텼어요.



셀린: 루비는 근데  그렇게 자전거가 좋았어?


루비: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러면,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오늘  이러고 저랬다' 얘기를 하면서 풀잖아요. 근데 저는 상대가 자전거였어요.


셀린: 스트레스 받으면 약간 굴로 들어가는 타입이지.


루비: 약간 그런 듯해요. 이번에 알았어요.  코로나로 사람도  만나니까 ..


셀린:  버텼네. 자전거  샀네.


루비: 사실 브롬톤이 보통 사람들   월급 정도? 하잖아요.


셀린:  신입사원일  실수령액보다 많은  같은데...?


루비: 그래도  샀어요. 엄청  타고.. 근데 할부 4개월 남았어요...^^(한숨)







5. 언제나 두려움은 실제보다 더 크다.


루비: 근데 퇴근  자전거 타는  좋은데, 나가는  가장 오래 걸려요.


셀린: 맞아. 나가기 전까지가 오래 걸려 운동 가는 것도 똑같잖아. 가면   엄청  하는데, 가려고 하면 막상 너무 귀찮고. 회사도 막상 출근하면    하는데, 일단 나가기가 싫어.


루비: 일단 나가야지만, 뭔가가 일어나는  같아요.


셀린: 그치. 그리고 ‘ 이거 너무 하기 싫다’, ‘ 못할  같다하면서 시작 전엔 잔뜩 겁을 먹는데, 이게  막상 하면 아무것도 아닌  되게 많잖아?


루비: 맞아요. 내가 상상했던 두려움보단 크기가  작은 느낌.


셀린: 실체보다 내가 항상 크게 걱정을 하는  같아.


루비: .   말이 맞는  같아요.(깨달음)





6. 생각의 환기


셀린: 자전거를 타도 걱정하고 있던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아. 나는 생각 자체를 멈출 수는 없더라고. 대신에 거기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같아.

원래 생각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끝도 없이 커지잖아. 근데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체력적으로 일단 힘들어지니까 ‘내가 이걸 왜 타지’, ‘집에 언제가지’, ‘으아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루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셀린: 스트레스라는  내면으로 계속 파고드는 습성이 있잖아. 내성발톱처럼. 근데 자전거를 타면 에너지가 밖으로 발산이 되니까 좋았어. 생각이 바뀌게 되었던  같아. 작은 일에도 나를 되게 탓하다가도 자전거를 타다 보면 ‘그래, 이만하면 되지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루비: 공감. 생각은 없어지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아요. 근데 일단 달리다 보면  가벼워져요. 그게 좋고요.


셀린: 맞아. 가벼워지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지.


루비: 네네, 교체되고 환기 돼요. 우리  환기하는 것처럼 약간  마음의 창을 열고..(ㅋㅋㅋㅋ) 하지만 환기를 시켜도 우리  안에 묵은 먼지가 사라지지는 않기는 한데..


셀린:  문제는 나랑  수밖에 없어. 하지만 흐름은 달라지는 거지.






7. 퇴근 후엔 몸을 움직이자.


루비: 옛날에 아이유가 인터뷰에서우울함이 자기를 먹을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몸부터 움직여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셀린: 맞는  같아. 근데  움직이기가 힘든데, 생각해 보면 결국 인생은 되게 단순한  같아. 나는 진짜 유치원 때부터 ‘인생이 뭘까 고민했단 말이야? 사는  뭘까 하고?  혼자 약간 운동장 바깥으로 난간을 걸으면서 혼자 생각하고 그랬어.


루비: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셀린: 우울한 생각도 많이 하고, 되게 살아서  하나 이런 생각도 했었거든. 근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삶이란  진짜 단순하고.. 예전에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마인드가 맞는  같아.  별거 있어! 그냥 하는 거지, !


루비: ! 그냥 하는 거지!


셀린: 가끔 울적한 날엔, 그냥 청소기   돌려도 되게 뿌듯할  있잖아.


루비: 맞아요, 약간 생동감 돌아요. 뭐라도 했네, 싶고.


셀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대단하다 진짜.


루비: 저희 거대하게 살아가고 있었군요. 소소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셀린: 살아있는  대단한 거야 진짜. 역시.


루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겠죠?


셀린: 그런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겠지.


루비: 최근에 점점 쓰기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바쁘고 어려운 시간을 쪼개서, 어쨌든 퇴근  무언가를 했다는 , 기특해요.


셀린: 했다는 자체는 기특한데..(ㅋㅋㅋㅋㅋㅋ)


루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필로그] 그 후 아무 말 대화..


셀린: 블랙위도우 봐라. 진짜 재밌어. 장난 아냐.

루비: 저는 2pm 준호에 빠져있어요. 준호.. 사랑해주세요.

셀린: 커피 원두 사야 하는데..

루비: 여기까지 할까요, 우리? 녹음은 여기까지.

셀린: 네이버 클로바만 믿는다! 끄읏!


/


'퇴근 후 자전거' 회고를 하자고 해두곤 자전거 이야기도 했다가, 출판 이야기도 했다가, 일 얘기도 했다가.. 되게 아무 말 같았지만,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내가 좀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퇴근 후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계절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었구나, 소소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거대하고 하루를 채우고 있었구나, 싶어서.


아마 혼자라면 못하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타라고 옆에서 이야기해 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혼자가 아닌 덕분에 나는 이 여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퇴근  자전거'. 마지막 페달까지 열심히 달려야지.






퇴근 후 자전거

직장인 셀린과 루비의 사이드 프로젝트. 두 직장인이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발견한 장면을 번갈아 가며 기록합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이메일로 총 12회 연재합니다. (6.10 -8.26)


퇴근 후 자전거 발행인

따릉이로 한강을 달리는 셀린 @bluebyj

미니벨로 라이더 루비(청민 부캐) @w.ch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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