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Apr 07. 2021

함께 너머의 세계로



함께 너머의

세계로


친구들을 따라 생애 처음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양양에서 강릉까지 비교적 짧은 코스였지만 처음은 늘 설레고 또 긴장되기 마련이다. 사실 출발 직전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이 길었다. 잘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막상 마지노선이 다가오니 부딪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말 그대로 충동이었다. 넘어선 적 없는 세계에 대한 잠재되어 있는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물론 내게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반차를 내고 부랴 부랴 짐을 꾸려 서울역으로 향했다. 머무는 시간으로 따지는 하루도 채 되지 않을 여행이기 때문에 챙길 건 실상 별게 없었다. 자전거와 헬멧, 라이트와 핸드폰 충전기 정도면 충분했다.  


출발 4분을 남기고서야 다른 기차에 앉아 있다는 걸 알았다. 촉박하게 도착한 탓에 플랫폼 번호를 잘못 본 것이다. 서있는 곳이 강릉행 기차가 출발하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얼마나 아찔한지 눈 앞이 어지러웠다. "뛴다고 탈 수 있을까? 아! 일단 뛰어!" 못 타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달려보기로 했다. 뛰는 것 말고 무슨 최선이 또 있겠는가. 자전거를 들고 사력을 다해 뛰었다. 맨몸으로 달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자전거를 들고 달리려니 죽을 맛이었다. 온몸으로 자전거를 끌어안고 달렸다. 세이브! 강릉행 기차에 올라 자전거를 탁 내려놓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혔다. 십년감수할 만큼 피 말리는 4분이었다. 숨을 몰아 쉴 때마다 목구멍까지 말라 출입문 쪽에 서서 한참 숨을 고르고 목을 축였다. 미리 출발한 친구의 조언대로 좌측 맨 앞자리를 예약했더니 비교적 자리가 넓어 자전거를 싣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숨이 가라앉을 쯤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다음날, 양양에서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는 게 여태 서툴러 속도를 영 내지 못했다. 내리막길이 나오거나 길이 좁아질 것 같으면 일찌감치 겁을 먹고는 홀랑 내려 자전거를 끌었다. 그래서 자주 일행들 사이에서 뒤처지곤 했다. "저는 제 속도대로 갈게요! 신경 쓰지 말고 가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훠이훠이 손을 흔들어 사인을 줘도 친구들은 가다 서다 하며  속도를 맞춰주었다. 미안하면서도 내심 함께 나란히 달리는 게 싫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를 내 힘껏 페달을 따라 밟았다. 


무언가를 익히는 데는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계속 들여다 보고 익숙해질 때까지 차곡차곡 시간을 몸속에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거저 잘할 수 있는 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들 속도에 맞춰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고 조바심이 났다. 문득 자주 가는 식당에 걸려있는 자전거 타는 소녀의 그림이 생각났다. 시원한 바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 아래 이런 글이 쓰여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귀엽기만 하던 이 그림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잘 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돌아가는 기차 시간에 맞춰 무사히 강릉역에 도착했다.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을뿐더러 겁도 어지간히 많아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친구들과 함께라 할 수 있었다. 긴장의 고삐를 꽉 부여잡고 정신없이 내달리느라 풍경을 놓치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불어온 모래에 미끄러져 나자빠질 뻔하기도 했지만 그사이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풋내 나는 첫 경험이 모여 삶이 영글어간다고 생각하니 오늘의 이 경험이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여행은 끝났지만 마치 너머의 다녀온 듯 아직은 조금 몽롱하다.  



글ㅣ 정보화 @heyglly

*이 글은 따우전드 코리아(@thousandkorea)와 함께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