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月3日
밥을 준비하는 시간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에는 제법 품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그래서 시간에 쫓길 때면 가장 먼저 식사 시간을 단축시키려 하는 편이다. 밥을 준비할 시간에 더 효율적인 일이나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인 것 같아서. 이게 얼마나 미련한 생각이었는지는 반복되는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에 만성이라는 쉬이 고쳐지지 않는 상태에 다다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야근 중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햄버거나 토스트, 김밥 등으로 때우다시피 하고, 퇴근 후에는 자극적인 맵고 짠 배달음식, 라면으로 시간에 개의치 않고 속을 채워댔다. '하루 종일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 보상 심리가 발동해 '먹고 싶은 거라도 마음대로 먹어!' 하고 달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보상은커녕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는 일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이런 엉망이 된 식생활은 말 그대로 식습관이 되어버렸고 여태 고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 중반의 내 식습관을 내가 아니면 누가 고쳐줄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개입 없이 스스로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내게는 독이 된 셈이다.
며칠 전부터 또 위 통증이 이따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또 시작이구나' 현탁액 하나를 먹고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병원에 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왔다. 사나흘 약을 챙겨 먹으면 금방 나아질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식도염은 제법 질기다. 타 온 약을 다 먹었는데도 기어코 또 신물이 올라온다. 목구멍 끝에서 느껴지는 불편은 정말이지 불편하다. 그제야 어떤 틈을 비집고 쓸모 있는 생각이 얼굴을 내민다. '먹는 걸 좀 잘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아!'
밀가루, 맵고 짠 음식을 빼고 나면 생각보다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평소에 즐겨 먹던 음식을 뺀 나머지를 챙겨 먹으면 되니 차라리 심플했다. 퇴근 후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면 아홉 시가 다 돼서야 저녁을 챙길 수 있을 거 같아 전날 미리 온라인으로 장을 봐 두었다. 양배추, 청경채, 두부, 버섯 등등...
현미도 불려 전날 미리 밥도 지어 놓았다.
퇴근을 하자마다 저녁을 준비했다. 양배추는 먹기 좋게 대충 썰고 커피포트로 데운 물을 부어 가볍게 데쳐두었다. 미리 데쳤다가 냉장고에 넣어두면 더 아삭하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어 양을 조금 넉넉히 해 두었다. 김치를 가볍게 볶고, 데친 두부를 같이 접시에 담았다. 현미밥까지. 생각보다 금방 저녁이 완성됐다. 별건 없지만 맛있는 식사였다. 마음이 수그러드는 무해한 한 끼였다.
저녁을 준비하고 먹는 동안 '밥', '끼니', '식사'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먹고사는 일로 이어져 결국 나, 그러니까 삶의 모양을 다듬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긍하고 나니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던, 아니 조금은 무책임했던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1. 밀가루를 먹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 반쯤 배송 끝나고 당 떨어지는 타이밍에 카스타드와 빈츠 잘 참았다.)
2. 커피 한 잔만 마신 것.
3. 흰쌀밥 먹지 않은 것.
4. 저녁 식사 후 금식한 것.
5. 미루지 않고 기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