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月4日
매일매일
균형잡기
퇴근 후, 연재가 있는 날이라 종일 마음이 분주했다. 뭐라도 챙겨 먹을라 치면 시간이 어영부영 흘러 금방 밤중이 될 게 분명했다. 쫓기는 마음에 사발면 하나로 퉁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제는 진짜 잘 먹고, 잘 살기로 작정했으니까. 더 늦기 전에 삶의 기본기를 바로 잡으려 훈련해야 한다. 진짜 중요한 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삶에 이롭고 가치 있는 것들의 속성은 대게 반짝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빛나는 것에 온통 마음을 내어주며 살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부정하다고 치부하려는 건 아니다. 그간의 선택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라도 치우쳐 기울어진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장 이상적이다 여길만한 균형 잡힌 삶이라는 게 사실은 가장 흐트러지기 쉬운 상태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설령 균형 잡힌 삶의 지점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찰나에 균형을 잃고 다시 휘청거릴 게 분명하다. 마치 외줄을 타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니 모든 순간마다 균형 잡힌 삶을 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양팔을 크게 벌리고 다시 다음 걸음을 내딛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외줄 위에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균형이 깨졌다고 가장 크게 체감하게 된 건 아무래도 건강의 적신호 때문이었다. 아니 덕분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세게 맞을 매였다고 생각하고 나니 이 정도로 그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만성이 된 위장장애도 오랫동안 맵고 짠 음식을 시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먹고 마신 성실의 결과(?)다. 뭐 하나를 꾸준히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쯧쯧)
다시 돌아와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하자면, 이렇게 하찮은 것이라도 어떤 과정 없이 하루 한날에 완성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차려내는 이 한 끼의 의미를 구태여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샐러드 한 주먹에 레몬 드레싱, 레트르트 카레 1/2, 현미밥 그리고 엄마표 총각김치로 차렸다.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장 모든 음식을 해 먹을 수는 없어 일부 타협을 하긴 했지만 차차 나아지겠지. 먹는 동안에는 해야 할 일들을 일단 저만치 미뤄두고 오로지 씹고, 삼키고, 감각하는 일에 집중했다. 다 먹고 난 후에야 들이치는 배부름 대신 서서히 배가 불러가고 있음을 걸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속이 채워지는 정도를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어 식사를 끝내야 하는 때를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오늘도 잘 먹었다.
글과 사진 @heyg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