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May 09. 2021

5月4日 매일매일균형 잡기



5月4日

매일매일

균형잡기


퇴근 후, 연재가 있는 날이라 종일 마음이 분주했다. 뭐라도 챙겨 먹을라 치면 시간이 어영부영 흘러 금방 밤중이 될 게 분명했다. 쫓기는 마음에 사발면 하나로 퉁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제는 진짜 잘 먹고, 잘 살기로 작정했으니까. 더 늦기 전에 삶의 기본기를 바로 잡으려 훈련해야 한다. 진짜 중요한 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삶에 이롭고 가치 있는 것들의 속성은 대게 반짝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빛나는 것에 온통 마음을 내어주며 살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부정하다고 치부하려는 건 아니다. 그간의 선택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라도 치우쳐 기울어진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장 이상적이다 여길만한 균형 잡힌 삶이라는 게 사실은 가장 흐트러지기 쉬운 상태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설령 균형 잡힌 삶의 지점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찰나에 균형을 잃고 다시 휘청거릴 게 분명하다. 마치 외줄을 타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니 모든 순간마다 균형 잡힌 삶을 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양팔을 크게 벌리고 다시 다음 걸음을 내딛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외줄 위에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균형이 깨졌다고 가장 크게 체감하게 된 건 아무래도 건강의 적신호 때문이었다. 아니 덕분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세게 맞을 매였다고 생각하고 나니 이 정도로 그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만성이 된 위장장애도 오랫동안 맵고 짠 음식을 시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먹고 마신 성실의 결과(?)다. 뭐 하나를 꾸준히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쯧쯧) 

다시 돌아와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하자면, 이렇게 하찮은 것이라도 어떤 과정 없이 하루 한날에 완성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차려내는 이 한 끼의 의미를 구태여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샐러드 한 주먹에 레몬 드레싱, 레트르트 카레 1/2, 현미밥 그리고 엄마표 총각김치로 차렸다.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장 모든 음식을 해 먹을 수는 없어 일부 타협을 하긴 했지만 차차 나아지겠지. 먹는 동안에는 해야 할 일들을 일단 저만치 미뤄두고 오로지 씹고, 삼키고, 감각하는 일에 집중했다. 다 먹고 난 후에야 들이치는 배부름 대신 서서히 배가 불러가고 있음을 걸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속이 채워지는 정도를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어 식사를 끝내야 하는 때를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오늘도 잘 먹었다.




글과 사진 @heyglly






매거진의 이전글 5月3日. 밥을 준비하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