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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Aug 18. 2022

14. 나를 잡아 주는 사람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먼저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고, 나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잡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엔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를 놓아버리거나 연인을 떠난 적은 있어도 아직 누군가를 잡아 본 적은 없다. 


친구나 연인과 싸워도 먼저 연락 하는 편이 아니므로 그대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렇게 그들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나는 당장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 해 먼저 손을 내미는 대단한 용기는 가지지 못했다. 


학창시절에도 그렇게 많은 친구를 떠나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이별을 했다.


그럼에도 나를 잡아 준 사람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부터 단짝으로 지낸 친구 P였는데 20대 초반 유치한 이유로 서로 티격태격 하다 감정이 상했고,

그렇게 나는 삐질대로 삐져 친구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친구는 우리 집 까지 찾아와 현관문 앞에서 내 이름을 불렀고, 시끄럽다며 그만 좀 부르라고 하며 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어린아이처럼 잘 삐지는 나에게 늘 먼저 손길을 내어준 그 친구가 참 고맙고 또 고맙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던 때에 결국 그 친구마저 잃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딱히 사람에 대한 기대도 신뢰도 없기에 잡기보다 차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게 더 나 답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그 친구 말고 또 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얼마전 그런 고마운 사람이 또 늘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동료 언니 L이다. 

잘 웃고 넉살 좋고 푼수 같은 그 언니의 첫 인상은 똑부러질 것 같고 선을 잘 지켜 친해지기 힘든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벌써 같은 직장을 다닌지 6개월 째 들어서며 다시 들여다 본 그녀는 예민하고 까칠하고 화도 잘내고 정도 많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사람 다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 늘 솔직하며, 사람을 잘 챙기며 때때로 의도를 잘 못 파악해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본인의 실수를 쿨하게 받아들이기도 반성도 잘하는 누가봐도 매력적인 사람이다. 


얼마 전 직장에서 늘 일에 치여 여유가 없다보니 나는 언니에게 서운한 감정이 차츰 쌓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겐 배려해주며 이해해주면서 정작 나에게는 당연히 배려를 바라는 느낌이 들어 내 감정을 

쏟아냈고 그렇게 언니도 대뜸 화를 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퇴근 하는 길에 나는 앞으로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건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또 이렇게 사람을 잃는건지 두려운 마음으로 걸었고, 집 문앞에 도착하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 이 전화를 피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손이 갔고 퉁명하게 네- 라고 하니 언니는 '그렇게 할거야?'

라는 말을 했다. 나는 모륵척 하며 '뭐가요'라고 했고 언니는 '그렇게 차갑게 받을거냐고 임마'라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티내지 않았다. 


그 날 언니와 서로 통화하며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니는 역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더 친한 너한테 신경 썼어야 하는데 오히려 배려해야 할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 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너가 얼마나 서운했으면 아까 말 하면서 우는데 나도 마음이 좋지 않더라' 나는 그 말에 또 눈물이 그렁했지만 울지 않으려 애쓰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우리의 다툼은 이렇게 하루도 못간 채 마무리 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언니에게 조금 더 솔직해 질 수 있었고, 감정을 쌓아두기 보다 그때 그때 서운함이 들면 바로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말한 사람 다운 사람 덕에 나도 덩달아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연인에게도 나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쌀쌀맞은 사람이었고, 친구들에게도 너는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나인데 나도 이렇게 내가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L언니로 부터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겐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인생에 또 있을까 싶은 이런 귀인 같은 사람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를 먼저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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