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를 놓아버리거나 연인을 떠난 적은 있어도 아직 누군가를 잡아 본 적은 없다.
친구나 연인과 싸워도 먼저 연락 하는 편이 아니므로 그대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렇게 그들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나는 당장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 해 먼저 손을 내미는 대단한 용기는 가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어린아이처럼 잘 삐지는 나에게 늘 먼저 손길을 내어준 그 친구가 참 고맙고 또 고맙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던 때에 결국 그 친구마저 잃었지만.
살면서 그 친구 말고 또 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얼마전 그런 고마운 사람이 또 늘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동료 언니 L이다.
자신의 감정에 늘 솔직하며, 사람을 잘 챙기며 때때로 의도를 잘 못 파악해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본인의 실수를 쿨하게 받아들이기도 반성도 잘하는 누가봐도 매력적인 사람이다.
얼마 전 직장에서 늘 일에 치여 여유가 없다보니 나는 언니에게 서운한 감정이 차츰 쌓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겐 배려해주며 이해해주면서 정작 나에게는 당연히 배려를 바라는 느낌이 들어 내 감정을
쏟아냈고 그렇게 언니도 대뜸 화를 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퇴근 하는 길에 나는 앞으로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건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또 이렇게 사람을 잃는건지 두려운 마음으로 걸었고, 집 문앞에 도착하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 이 전화를 피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손이 갔고 퉁명하게 네- 라고 하니 언니는 '그렇게 할거야?'
라는 말을 했다. 나는 모륵척 하며 '뭐가요'라고 했고 언니는 '그렇게 차갑게 받을거냐고 임마'라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티내지 않았다.
그 날 언니와 서로 통화하며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니는 역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더 친한 너한테 신경 썼어야 하는데 오히려 배려해야 할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 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너가 얼마나 서운했으면 아까 말 하면서 우는데 나도 마음이 좋지 않더라' 나는 그 말에 또 눈물이 그렁했지만 울지 않으려 애쓰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우리의 다툼은 이렇게 하루도 못간 채 마무리 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언니에게 조금 더 솔직해 질 수 있었고, 감정을 쌓아두기 보다 그때 그때 서운함이 들면 바로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말한 사람 다운 사람 덕에 나도 덩달아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연인에게도 나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쌀쌀맞은 사람이었고, 친구들에게도 너는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나인데 나도 이렇게 내가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L언니로 부터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겐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인생에 또 있을까 싶은 이런 귀인 같은 사람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를 먼저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