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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Jan 31. 2024

29.습작 시

나만 좋은 시

[언니]

몰아치던 한파가 떠나고

추위 물리 친 매화가 창문 가득 내민 얼굴이

정다울 때였지요.


한 밤중 들어와 이불의 반을 뺏어가더니

금새 곯아 떨어져 잠이 든 당신은

짧은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치마를 꽉 조여 묶더니

구멍난 양말을 씩씩하게 신고서는

방문을 나섰지요.


매화꽃은 당신의 뒷 모습에 인사했어요.


정오에 우체부 배달 아저씨

‘광장 앞이래요 ’

정신나간 사람처럼 뛰쳐 나간

엄마를 나는 맨발로 쫓아 뛰었어요.


제일 큰 사거리엔 땅이 들썩 함성 가득했지요.

심장이 쿵쿵 곤두박질 치고

가슴에 작은 물결이 파도 처럼 밀려들었어요.

두 발에 피가 나는 줄 모르고

아홉 살, 그 날의 오월은 푸르고 뜨거웠지요.


그 해 겨울 당신 향기 그리워

꽃이 진 매화가지 곁에 두고 잠이 들었더니

꿈 속에서 나를 찾아 와 뜨겁게 안아주었어요.

당신의 붉게 물든 치마와 구멍난 양말이 서러워

나는 엉엉 울었지요.


추위 가실때까지 곁에 있으라하니

영원한 봄에 갇혀 늘 따뜻하다 웃었어요.


[달빛회담]

밤 하늘 높이 뜬 탐스런 보름달이

노오랗게 나그네의 머리 위를 비출 때

숲 속 지주들 깨어날까

발소리를 낮추며 걸었다.


가벼운 날개짓으로 어느새 곁에 온

눈부시게 하얀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고향에 봄을 전하러가오

철쭉도 얼어버린 고향이 있다오.


사내는 다정한 향기를 남기고

그리움 가득한 고향으로

춤을 추며 날아올랐다.


홀로 남은 나그네는

잠시 벗 삼은 달 동무에게

들릴 듯 조용히 속삭였다.


내 고향도 아직 겨울이외다.

철쭉도 얼어버린 고향 나의 고향이라오.

스스로를 태워 불을 밝힌 나의 고향에

봄의 온기를 전해 주오.


나그네는 보름 달 너머로

멀어진 사내의 날개짓을 보며

서글픈 발걸음을 옮겼다.


[축복]

태양이 녹아 든 호숫가에서

잠 든 초를 깨워 환희 불 밝혔더니

제 몸 들켜 놀란 하늘이 비를 내렸습니다.


거센 빗줄기 초를 타고 흐르자

붉은 빗물 넘쳐 흘러 바다로 갑니다.


서러운 횟불을 바다 가득 밝혔더니

달 빛과 독대하던 돛대에 붉게 물이 듭니다.


황홀한 광영의 빛을 보고 또 보다

폭풍과 씨름하는 파도가 안쓰러워

그치지않는 비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가

품에서 베어 님에게 드리니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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