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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May 26. 2020

편집자 관찰기  

편집자 한라봉이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 유형이란 걸 처음 깨달은 건 중국집에서였다.


그날 우린 적나라한 나의 글들이 너무 웃기다며 책을 내보자는 얘기를 하고, 그럼 그럴까 하하호호 즐겁게 얘기를 나눈 뒤 그 동네 맛집이라는 중국집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우린 3명이었다.)


"뭐 먹고 싶어?"

손님 대접을 해주길래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있던 음식 이름을 냉큼 말했다.

"나, 마라샹궈!! 완전 맛있어!"

"그래"

그리고 우리는 마라샹궈를 시켰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다시 말해야겠다. 우리는 오직 마라샹궈'만' 시켰다. 세 명이서. 다른 아무것도 없이!!!!!! 그것도 '소'자였는데!!!!


나의 시나리오는 내가 일단 마라샹궈 '소'자를 하나 지르면 다른 한 명이 탕수육이든 팔보채든 '소'자 하나를 더 부르고 기본 맥주에 기분 좋으면 간을 맞추기 위해 소주도 좀 시키고, 혹시 술이 얼큰해질 것에 대비해 미리 해장을 위해 짬뽕 국물 정도는 단품이든 서비스든 더 시키고 마지막으로 식사를 따로 할지 말지 고민하는 거였는데... 그냥 내가 먼저 말한 '마라샹궈' 하나로 냉큼 모든 게 끝나버린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했는데, 두 사람은 그게 당연해 보였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속이 타들어갈 것 같은 마라샹궈 '소'자만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은 뒤 얌전하게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며 나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동안 너무 탐욕적으로 살았나 보다.. 내가 너무 과소비하며 살았나 보다... 내가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내 배때지만 살찌우며 살았나 보다...'


먹을 것에는 금욕적이었던 그녀는... 글에 대해서만큼은 어마 무시하게 탐욕적이었다.


매주 금요일이면 으레 공포의 그 카카오톡이 도착했다. 


"띵동~  어느덧 금요일이 됐네? 월요일 아침까지 글 하나 써야지... 파이팅!"

"내일 새벽에 앵커 하고! 자고 일어나서 애 봐야 하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힘들어 죽겠다고!"

"응 그래. 죽지 않을 만큼 하자. 월요일까지~ " 

"와, 진짜 악독하다! 이러다 나 진짜 쓰러지면 어쩔? "

"건강 잘 챙겨.. 그래도 글은 써야지?"


대화가 길어져봤자 결론은 명확하게 한 가지, '월요일까지 글 한편' 이었다. 티격태격하다 결국은 '이 잔소리를 계속 듣느니 그냥 글을 쓰고 말지!'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툴툴거리면서도 결국은 글을 쓰게 되면서, 그렇게 글이 하나하나 쌓여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채식주의자인 데다 냥이들의 집사님인, 그냥 멋져 보이는 건 모조리 다 하면서 살고 있는 우아한 한라봉을 다시 보게 된 건, 책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던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 새벽 3시, 약속한 시간보다도 더 빨리, 한라봉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아니, 홍보 담당은 다른 분 있는 거 아냐? 왜 혼자만 왔어?"

"토요일 새벽에 담당자를 부르기도 그렇고.. 그냥 내가 하려고. "


'한라봉도 착한 척하는 꼰대로구만..고생이 많다..' 속으로 생각했고, 이날 한라봉은 내가 회사차를 타고 출근하고, 앵커 자리에 앉아서 기사를 고치고, 분장을 받고, 다시 기사를 고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방송을 진행하는 길에 동행했는데.. 그것까지 좋았는데...


실제로 스튜디오 안에서 뉴스투데이 방송을 진행할 때 나를 잡는 카메라의 바로 옆, 그러니까 내가 방송을 하며 시선을 고정하는 곳 바로 옆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더니만, 잠시 잠이 들지 않으려고 눈을 비비며 사투를 벌이더니만, 바로 그 싸움에서 굴복해 꿈나라로 빠져들며, 상모를 거칠게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카메라만 집중해서 바라보고 뉴스에 집중하려고 해도, 고개가 이리저리 꺾이는, 목 관절이 생각보다 유연한 한라봉의 모습이 눈알 측면을 통해 자꾸 뇌 안으로 파고들었다. 악착같이 지켜온 1년여간의 무(큰)사고 경력이 한라봉 때문에 몇 번이나 무너질 뻔 한 걸 알려나 모르려나!


푹 주무시고 일어나신 한라봉의 눈빛은 뉴스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갑자기 돌변했다.

"편집자님, 뒤에 배경이 필요한데요, 스텝처럼 앵커님 뒤에 서주실래요?"


멈칫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한라봉은 당황스러울 만큼 바로,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벚어젖혔다. 어떤 어렵고 거친 임무라도 무조건 해내겠다는, 이 정도면 되겠냐는 결기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한라봉은 내가 가방엔 뭔가 오물을 묻혀 지저분하게 하고 다니고, 못생긴 펜을 아무거나 쓸 거라는 것까지 일찌감치 간파하고,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보일 보스턴 가방?(이름을 들었는데 또 까먹었네)과 예쁜 파스텔톤 연필까지 소품으로 미리 챙겨 왔었다.


"와.. 대단하다... 편집자도 진짜 못할 일이네."

"뭐 이 정도 가지고.. 나 책이 안 팔려서 홈쇼핑에서 팔면서 그 전화받는 일까지 해본 적 있어"

"진짜? 그래서 홈쇼핑선 잘 팔렸어?"

"잘 팔렸겠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책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가 나왔고, 책이 나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도 한라봉은 계속 나를 괴롭힌다. 출판사에 와서 사인을 해라,  빨리 책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좀 알리도록 하여라,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은 왜 안 보이냐 방법은 없겠느냐 전전긍긍에... 심지어 지금 자기를 까는 글도 빨랑 쓰라고 닦달이다. 이것은 뭐랄까... '살신성..베스트셀러'의 정신인 건가?!!!  


무엇보다 가장 큰 불만은 맨날 그렇게 졸라도 나랑 회식을 안해준다는 것이다! 친구야 이제 통장에 인세도 꽂혔는데 회식 좀 할 때도 된거 아니뉘? 내가 쏜다니까! 주라주라 회식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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