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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잠 속에서 깨어나 보면  모든 것들은 그리운 법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어젯밤 수억 년 떨어진 곳의 별에서 날아온 새들

지친 날개를 접으며 황금빛 나뭇가지에 앉아 슬픈 노래를 부른다

밤을 꼬박 새우고 미싱공장에서 빠져나와 아침밥을 지으러 귀가하는 

여자는 새소리를 들으며 쌀을 씻다가

누군가 골목 밖을 걸어가는 노동자의 무거운 발소리를 듣는다

미어터질 것만 같은 지하철 안에선 밀린 하품을 하며 일터를 향해 실려가는

이들의 삶이 흔들릴 때마다 출렁거리며 타인의 삶을 침범하고

그제서야 깜박 정신이 든 듯 손잡이를 잡으며 젖은 기침을 한다

그대들은 졸며 어는 행성을 향해 떠나는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골목안은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오밀조밀해지기 시작하고

간밤에 보았던 전봇대와 전봇대의 간격이 더 좁아진 듯했다

촘촘하게 맞닿아 있는 대문들 틈에서 불쑥 튀어나온 여자는 지하철 입구를 향해

좆나게 뛰어가고

미처 개수대에 처박히지 못한 그릇들

입가에 국물을 묻힌 채 울상을 짓고 있다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문상을 가듯 엄숙한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이들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켜져 있는 테레비젼 소리도 가끔은 도둑을 몰아내기도 하지만

저 혼자만의 낭만을 만들기에는 너무 적적한 시간들이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선 오늘도 걔떼들이

싸움을 벌릴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수시로 일기예보를 살피면서 약국으로 들어가 마스크를 써야 했다

아침에 돌아오는 이들은 아침밥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쓰러져 잠이 들고

아침에 골목을 빠져나간 이들은 편의점에서 아침을 구겨넣어 보지만

풀리지 않는 삶을 잡아끌고서 로또방으로 찾아가 마구 긁어댄다

삶이 그대를 속인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반복되는 황사예보의 오보에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문을 잠그고서

우리는 잠을 청한다

깨어나보면 낯선 아침일 적이 많았다

허둥대며 지하철 입구를 향해 뛰어갈 때마다

이젠 그만 뛰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뱉어내면서 

꾹 꾸욱, 밀어넣는 지하철 안전요원의 등살에 떠밀려 전동차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서둘러 나오느라 바지 지퍼도 올리지 못한 저 사내는 걸어가는 동안에도 

햇살이 스며드는 것도 모른 체 낯익은 일터로 뛰어가기만 한다

사람이 떠나버린 골목은 이제 골목이 아니다

혼자 서 있는 전봇대도 이젠 전봇대가 아니었다

점점 좁아지는 골목 안에서 보면

마취 내시경을 들여다보듯 골목 안이 조용하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누군가 그랬다.










다 지나가리




비가 오면 아프니?

너무 오래 아팠어?

세상을 떠도는 시간들을 생각해봐

수많은 별들처럼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별들에게

말을 걸어봐

지금의 슬픔은 슬픔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봐

찬란하게 피는 꽃잎을 바라봐

슬픔은 슬픔끼리 뭉치면서 나중엔 힘이 될 수도 있어

누구에게나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믿지 않을 거야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

더듬어보지 않아도 속마음을 알 수 있고

먼져보지 않아도 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거라고 봐

그러니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질 거야

기다리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건 없을 거야

다 지나가리

너의 슬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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