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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오후, 길을 떠났다가
저녁 노을에 묻혔다

늘 고독한 사람은 떠나는 꿈을 꾸게 된다













목마름으로





태양을 이고 가는 사람들 머리 위로 새들이 집을 짓고

밤마다 생각들이 찾아와 수런거리고

풀벌레 울음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있다

지나간 시간들은 모두 헛것인 채로 포도 위를 뒹굴고 있을 시간

술 취한 이들은 골목으로 들어가 바지를 내린다

사랑도 취해버리고 나면 담벼락을 적시는가

낡은 생을 깁고 또 깁으며 구두수선소에 앉아 

한쪽으로 기우뚱 기운 밑창이라도 갈아야겠다

갈증을 일으키는 일상들이 맥없이 흘러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늘 허전하다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지허철은 땅 속을 몇 번이나

돌았을까

헤어진 그리움을 찾아 떠난 돈키호테도 끝내 집으로 돌아가고

검는 도포를 입은 늙은 이가 찾아와서 돗자리를 펴며

밤을 불러들인다

꽃들은 길거리로 나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막차를 놓쳐버린 승객들은 역사에 앉아 아침을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삶이란 그리운 것들로만 채워져

어디를 봐도 갈증만 일으키는 것을

만나던 사람도 이젠 떠나야 할 때

또 다른 갈증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 속에서라도 수시로 일어나는 목마름으로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을까

갑자기 그대가 궁금해졌다.












유일한 사람






강 건너 이편과 저편에 서서 손짓만 하다가

바람에 떠밀려 내려간 것도 인연이었다

햇빛과 바람과 구름이 한데 어우러져 숲을 만들고

봉우리를 만들고 강물을 태어나게 했다

결국엔 사람들이 슬픔을 안고 와서 뿌리에 묻어 놓았을 때

잎이 무성하게 자라 다시 산을 만들고

도시의 빌딩들이 햇살을 받으며 쑥쑥 자라고 있을 때

이층 창가에서 앉아 커피를 마시던 우리들도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슬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 속에는 꽃잎이 열리고 있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점점 많아졌으며

수증기처럼 뜨거워져서 아득해지던 날들

가까이 있어도 그립기만 한 시간들이 점점 깊어졌으므로

그대의 아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남이란 참 우연찮게 다가왔다가 꽃나무처럼 쑥쑥 자라서

꽃으로 피어날 적에 바람에게 혼을 뺐긴 뒤로부터

우리는 강가에 서서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추억 속에는 아직도 무수한 상처들이 남아 있었지만

아직도 그리운 것은

희망이었다

꿈길처럼 그대에게 다가가는 일이 남았다.












 익숙한 것들






매일 보게 되는 것들

꽃잎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바람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고 

바람이 떠나면서 아무런 말도 남겨놓지 않았으므로

꽃잎은 외롭다고 했다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소리는 담장을 뛰어넘어 내 가슴에

뛰어들었다

그리움이 떠나버린 뒤로 아무런 감흥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하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뜨거운 햇살이 도시의 빌딩 숲을 적시며 지나갔다

지하철 안에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다가 뛰쳐나가면

하나 둘, 빈 자리가 생겼지만 누구도 앉지 않았다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가던 맹인 부부의 손에 들려진 더듬이 촉수에

놀라 화들짝 피하는 수상한 공기들이 곧 정차할 역에서 뛰쳐나가고

다시 무미건조한 잠을 청하는 이들은 

골고다의 십자가를 떠올렸다

익숙한 것들에게 처형을 받는 예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말했다

가끔, 익숙한 것들에게서 버림을 받았을 때

지독한 실연을 앓는다

차라리 낯선 섬으로 가서 내게 남아 있는 익숙한 것들을 

죄다 내버리고 싶었다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기억까지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떠난 사랑을 붙잡지 마라

줄곧 이어지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움에 사무치게 된다

흐느끼듯 지는 저녁 노을도 서쪽 하늘에서 머물고

보안관처럼 휴게소 안으로 들어서자 밥을 먹다 놀라서 뒤돌아보는 사람들

망명자같이 일어서는 낯선 시선들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난 돈키호테는 오늘은 어느 하늘 밑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타박타박 걸으며 우리는 

이 지상을 떠날 채비를 한다

언젠가는 한 번은 떠나야 할 이 길일지도 모른다

한 번 들어선 길이 잘못된 길이어도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잊어버린 내 청춘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것일까

길을 떠나며 다짐했던 밀어들이 트럭에서 뛰어나와

고속도로 위에 뿌려졌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은 애초에는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리움을 잃어버린 뒤로 실감나게 다가왔다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변명하기 위하여

시를 쓰고 언어를 지어내며 

가끔은 고속도로를 달려 바닷가로 도망치는 일이다

얼마나 근사한 도피인가

먹을 것을 위해 휴게소로 들어서며 

살기 위해서 혹은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수없는 말들이

우리들 곁을 지나갔다. 













어둑컴컴한 방 안






모든 언어는 밤에 생산된다

그대가 흘리고 간 말들이 머리카락이 되고

삶의 비듬이 되고

일기장에 씌여진 글이 되었다

벚꽃 지던 밤에 속삭였던 언어들

꽃이 되어 다시 피어나고 또 지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봄이 오기까지

아직도 컴컴한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꽃잎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끝내 열리지 않는 꽃봉우리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멀리 떠나는 기차소리는 오랜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이젠 낯설지 않은 어둠들이다

지난 봄날부터 걸린 옷에서는 꽃잎 냄새가 났다

그동안 밤과 낮이 바뀌고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고

바래지 않은 옷은 벽면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침묵하는 밤이 올 적마다 기억의 강줄기를 흔들며

거슬러 올라가는 꿈만 직살나게 꾸었지만

이젠 희미해져 가는 이름 하나

그립다

밤이 찾아오는 시간은 늘 분주해지면서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누군가 발자국 내딛는 소리인가

꽃잎이 열리는 소리인가 

문을 열면 환한 꽃잎의 방문이 두려워지기 시작하고

다시 골방으로 향하는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꽃잎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떠날 때도 말없이

꽃잎이 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내게는

꽃잎이 열리는 소리로 들리고 있다.











이별의 말






이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언어였다

누가 말을 지어 내었는가

슬픔을 이별이라고 말하지 말 것

떠남을 이별이라고 일컫지 말 것

없음을 이별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 것

그대가 떠났다고 해서 이별인 것은 아니다

내 곁에 없다는 것은 그리움을 남겨놓고

떠난 것이다

나는 그리움을 안고서 살아갈 것이며

별을 우러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꽃잎을 보며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누가 이별이라는 말을 하면

나는 그에게로 가서 이별을 보여주겠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아직 끝나지 않은 그리움이라는 것.











 넉넉한 환상






꿈을 꾸기로 했다

잎에게서 꽃잎으로 가는 길은 환했다

바람 속에서도 피는 꽃은

그리움의 힘으로 자란다

물관부를 지나 환한 꽃잎에게로 걸어가는 길

그대를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은 

모두 씨방 안에서 잠이 들고 가끔은 

바깥을 기웃거리며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황금 나수가지에는 새들이 둥지를 만들며

지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꿈 속에서 너를 만나는 꿈을 꾸리라

차라리 현실보다는 꿈 속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시들어가는 도시의 빌딩들이

노을빛에 사그라들고 있지 않은가

푸석거리는 오후, 물컹거리는 아스팔트를 밟으며 지나가는 이들은

하루치의 일당을 들고서 술집을 전전하고 

골목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빈 하늘을 올려다보며

번지수를 찾는다

까마득한 별들이 내려와 지상을 가득 메울 때까지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은 오늘도 포장마차 안에서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일이다

정든 집을 떠나 길거리를 배회하던 이들이 돌아와

포근한 불을 켜는 시간

갑자기 내 곁을 떠났던 그리움들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담장에 걸린 찔레꽃 향이 마당으로 뛰어들고

방문에 환하게 비친 내 그림자

누군가 마당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가

문을 열면 다시 그리운 것들이 꽃잎으로 피어나는

저녁

황금빛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시작할 때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오랜 생각들

이젠 너를 만나야겠다.












보고 싶다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

늘 그립다는 문자를 들여다보며

오래 된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이들에게

찔레꽃 향기를 뿌려주고 있다

섬으로 떠난 배들은 도착했을까

별빛이 닿지 않는 숲 속으로 떠난 이들은 

새들처럼 둥지를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노을빛처럼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저녁

전선줄에 매달려 날아가는 문자 배열 속에

내 그리움도 있기나 할까

언젠가 나누었던 말들이 생각나고

잊혀졌던 말들이 떠오르고

그대가 남기고 간 추억들은 아직도 건재하다고

문자를 날려 보낸다

오늘밤에는 촛불을 켜야지

새벽을 맞으며 꽃잎이 피는 소리를 엿들어야지

비가 오는 소리를 들으며 꿈길을 거닐어야지

지금은 없어진 그 다방으로 올라가는 꿈이라도 꿔야지

창가에 서서

문자가 날아오기를 기다려야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꽃잎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끝장을 보는 것 같아 

미리 떠나는 법이다

후루룩 지는 꽃잎을 보면 떠나는 그대가 

눈물겹다

차라리 꽃잎이 지기 전에 

새 잎이 돋아나기 전에 떠났으면 좋겠다

마지막 유언 같은 강물을 따라 걸으며

아직은 떠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나고 헤어짐은 꽃잎 같은 것

환하게 피었다가 지고 나면

허전하여라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아직은 이별이라고 말하지 마라

사랑은 어렵게 왔다가 쉽게 떠나갔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안개 속을 걸으며 꽃잎 지는 소리를 듣다가

언제 떠났는지 모르게 떠났으면 좋겠다

꽃잎이 아파서 멍이 들 때까지는

아직은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을 닫아걸고서 바깥의 꽃잎이 지는 소리를

듣기 전에 떠났으면 좋겠다

그대 뒷모습 꽃잎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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