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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킹 노마드 May 12. 2018

미국 부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위해 미역국을 배우다

놀라운 입양 준비의 여정

워싱턴에서 오신 미국인 부부가 미역국, 잡채, 해물전을 배우러 오셨다.


원데이 쿠킹 클래스를 신청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여행차 한국에 오시는 분들 이어서 대개 1주일, 길어야 2주일 정도 한국을 여행하시는데, 이 분들은 인사를 하고 한국에 언제 도착하셨는지 물었더니 5주전에 한국에 오셨단다. 5주! 한국만 여행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고, 출장으로도 길다. 그럼 주재원이신가? 등등 머릿속으로 가능한 케이스들을 막 떠올려 보지만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 하는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얘기를 풀어내셨다. 사실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기 위한 과정을 다 마치고 이제 마지막 법적 절차만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어서 왔다고.


대부분의 입양 부모들은 입양 과정이 복잡한데도 휴가를 오래 낼 수 없으니 한국에 와서 어쩔 수 없이 1주일 정도 되는 짧은 기간동안 아이와 미쳐 친해지지도 못한채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데, 이 분들은 법적 절차가 끝나기 전에 아이가 위탁가정에 있는 기간에라도 자주 방문하고 가능한 한 함께 편안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서 아이가 환경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해서 두 분 모두 회사에 두 달간 재택 근무를 신청하고 오셨단다. 각자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 신청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 회사가 배려해 준 거라고.


순간 궁금해졌다. 우리 정부는 국외 입양보다 국내 입양을 장려하고있다는데, 입양하는 부모에 대해서 출산 휴가와 동일한 입양 휴가가 있는지. 찾아보니 아직 법적인 제도가 없었다. 국내 입양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입양에 대한 시선, 편견을 운운하기 전에 입양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은 보장해줘야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 손님들은 이제 모든 복잡한 법적 절차가 다 끝났고, 드디어 내일이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날이라서, 오늘이 둘 만의 마지막 날이니만큼 뭔가 특별한 걸 해보고 싶어 한식 요리를 배우러 오셨단다.


한국에서는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다고해서 앞으로 아들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어하셨다.

매년 아들이 태어난 나라의 풍습대로 미역국을 끓여줄 부부를 생각하니 어쩐지 고마운 마음이 들어, 마른 미역을 사서 불리는것부터 시작해서 들기름에 불린 미역을 달달 볶아 쇠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이는데, 이 분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기로 함께 결심한 건 2년 전인데, 그 이후로 한국 문화원에 다니며 한국어 등을 배웠고, 인터넷으로 한국 음식 조리법을 찾아 한국 슈퍼에서 재료를 사서 여러 음식 만들기도 시도해 보고 있는데 어렵다는 얘기, 입양 부모 모임에 나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를 듣는데, 어쩐지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졌다. 한 아이를 가슴으로 품기까지 수 년을 이렇게 준비해온 부모앞에서, 부모가 되는 준비는 커녕 상상도해 본 적도 없이 덜컥 아이를 갖고 태어날 아기 보다는 내 커리어를 더 걱정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세 가지 요리를 하고 식사를 마친다음 음식이 어땠는지 들어보려고 옆에 앉았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돌아가서 레시피대로 빨리 해서 아들에게 먹여보고 싶다면서, 휴대폰을 꺼내 우리 아들 사진이라며 보여주시면서 아이가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듣는데 그만 왈칵 눈물이 났다. 세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 놀이 동산에 가고, 음식점에 가고 산책을 하는 모든 사진 속 아이의 표정은 세상 누구보다도 밝은 함박 웃음이 활짝 핀 얼굴이었다. 신생아때부터 3년을 키워오신 위탁 부모께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 호수, 산 등등 여러 곳에 이 부부를 데려가 주셔서 아이가 위탁 부모와 이 분들과 함께 보내는 좋은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위탁 부모가 너무 좋은 분들이라 이렇게 행복한 아이로 큰것 같다고 하시는데, 사진을 보고 순간 내 마음속에 있던 약간의 염려가 눈 녹듯 녹아버리고 내 마음이 너무 좋아서 나온 눈물임을 아는 그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어보고, 슈퍼에서 된장을 사서 좋은 레시피를 찾아 찌개를 끓여봤는데 맛이 영 다르더라는 얘기를 들으신 친정 엄마께서, 집 된장으로 만들어야 맛있다며 엄마의 된장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쿠킹 클래스 이후 1주일 뒤에 이 분들 숙소로 된장 통을 갖다 드릴까 하다가, 아예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다.

 초대를 앞두고 어떤 음식들을 할까 분주한 마음이었는데 진달래가 한창이니 진달래 화전을 예쁘게 만들고 싶어서 친구들과 산에 가서 진달래를 따고 쑥을 캐서 몇 가지 음식들과 화전을 준비했다. 토요일 저녁, 아들을 아기띠에 업고 세 식구가 웃으며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데,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이제 둘째도 한국에서 입양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듣는데, 또 부끄러워졌다둘째도 역시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낳았던 내 모습이 또 떠올라서.^^


  한국의 해외 입양 변화에 대한 어제 기사를 보니, 한국전쟁부터 80년대까지 미국으로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가 한국이었는데, 2007년 국내 입양 비율을 늘이기 위해 해외 입양 쿼터를 두기 시작하면서 급감했고, 2012년 입양아의 법원 등록을 의무화 한 이후로 더 줄어들어 2017년 한 해동안 해외 입양된 우리 나라 아이들은 400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 부부도 실제로 법정에 가서 판사 앞에서 여러 가지 확인을 받는 절차를 거쳤다고 하셨다. 해외 입양에 절차가 복잡해 졌다는건, 아이의 성장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확인이 많아진다는 것이니 어쨌든 과거보다 환경적인 요인을 검증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해외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많이 접해왔는데, 이 가족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을 낳았다고 부모가 되는것이 아니고, 키우면서 순간 순간 내가 부모로 성장한다는 생각은 평소 많이 했었는데, 이분들이 부모가 되기 위해 수 년을 준비하고, 그 복잡한 과정을 다 거치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인 얘기를 들으니, 심지어 부모가 되기 전부터 부모로 성장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물론 아무 준비 없이 아이들을 낳았지만, 키우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순간을 느껴온 나 같은 사람도 있듯이, 모든 부모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순간에 불쑥 자라고 배우면서 살아가나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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