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털찐 냥이 Nov 11. 2021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까?

11월 겨울이 시작됐다.

늦가을 한 낮이 20도까지 올라가더니 다음날부터 비바람이 서서히 몰아친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온 몸이 굳어가는 것 같다. 서울에서만 살았을 때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나무가 많은 동네로 이사를 오니 장단점이 계절로 바로 느껴진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추위가 더 아린다. 심리적인 것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기온도 차이도 난다. 이럴 때면 복잡한 도심 땅바닥에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더위에 탈수로 널브러진 어린 길고양이들이 생각난다. 반면 이 동네에서는 추위가 야속해진다.


광역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보이는 빌라 단지에 무엇인가 뛰어놀고 있었다. 주적주적 비가 오고 갑자기 꺼내 입은 두툼한 외투를 부여잡고 우산까지 들고 있던 날씨였다. 날씨의 변덕을 무서워하지 않는 두 마리의 통통한 길고양이들이 서로 장난을 거느라 총총거리며 뛰어다닌다. 가만히 서서 눈길로 도둑질하듯 쳐다보다가 괜스레 마음이 즐거워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잘 뛰어다니는 한 마리는 올여름까지 밥을 주던 녀석과 닮았다.


그 녀석은 몸통은 까맣고 배는 하얗고 눈망울은 큰데 살짝 바보 같아서 많이 놀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너 그러고 있으면 안 보이는 줄 알지? 다 보인다?" 점심시간에 나온  직장인들이 종종 보아온 듯이 놀리며 간다. 혼자 수풀에 웅크리고 있다가 심심하면 돌아다니는데 사람들 눈에 자주 띄었나 보다. 시간 맞춰 밥을 주는 게 여간 일이 아니었다. 하필 녀석이 늦은 오후에서 점점 앞으로 시간을 당겨서 기다리기 시작하다 보니 정오에 우리의 밥시간이 정해졌다. 한 여름, 34도를 넘어도 정오에 나가야 한다. 챙모자에 선글라스에 덕지덕지 선크림으로 무장을 하고 나간다.


슬며시 작은 수풀 속을 보면 그늘 아래서 주로 엎어져서 자거나 가끔 사람처럼 배를 홀라당 내밀고 자는 녀석을 본다. 목소리로 내가 왔음을 확인시켜줘야 긴장을 푼다. "냥이!" 부르면 알 수 없는 콧소리로 흥흥거리며 기지개를 켜고 다가온다. 항상 배가 고픈 녀석이라서 밥을 자리에 놓기도 전에 덤빈다. 앉으라고 몇 번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밥을 놓고 온다. 나 때문에 녀석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재빨리 피했다. 다행히 부르면 잘 쫓아오고 투정 없이 잘 먹어서 덥지만 든든한 여름이 지났다.


연속성이 단절되는 경험

가을비가 오던 날 긴 팔을 입고 찾아 나섰지만 녀석의 존재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쌀쌀 해던 터라 마음이 애가 탔으나  날이 풀리고 완연한 가을이라 불리는 단풍이 들어도 녀석을 볼 수가 없었다. 몇 번의 길고양이들과 이별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오늘이 너랑 나랑 마지막일 수도 있겠지?"

길냥이들에게 오늘 밥을 줘도 내일은 못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된다. 내일은 꼭 놀아줘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없어진 녀석에게 미련이 남아있다. 당연하게 이어지는 것들이 미끄러지듯 놓쳐졌을 때 퍼득 정신이 든다. 그것은 어떤 기회 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또는 내 건강일 수도 있다. 작은 녀석들과의 이별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당연한 연속성을 한 번쯤 의심하게 만들고 제동을 걸게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없다는 것도 시인하게 한다.


다가왔던 기회, 시간을 들였던 존재들과의 헤어짐은 슈크림처럼 입안에서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후룩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슈크림은  냉장고에서 차갑게 보관하다기 실온에 내놓 살포시 말랑한 부드러움을 찾아서 먹는다.  그 작은 빵을 하나만 사겠다고 학창 시절 빵가게 문을 열었었다. 다행히 야박하게 굴지 않고 '슈크림이 더 많이 들어간 것이다.큰 거를 골라서 준다'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던 친절한 직원이 생각이 난다. 비록 달랑 한 개이지만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다. 다만 터질 것 같은 크림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빵마저 입안에서의 자근거림이 쉽게 끝나서 아쉬움이 남았다.


어릴 적 동네에서 뛰어놀던 또래 중에 유난히 나에게 친절했던 아이가 있었다. 종이 박스로 만든 신박한 텔레비전을 보여주었는데 한참을 신기해하는 나에게 선물이라면서 주었다. 세상에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에 때문에 그 친구가 좋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다음 날부터 볼 수 없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같이 뛰어놀던 장소에 가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단어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뒤늦게 장난처럼 인사하고 보낸 친구의 자리가 허전해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서러워져서 울음이 터졌다. 그러나 슬픔이라는 것이 그렇게 훅 치고 들어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옅어져서 그 친구의 이름조차도 잊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건강도 그런 친구 같은 존재일 수 있다. 내 몸안을 매일 투명하게 쳐다볼 수 있다면, 스테인리스 강철이라 고장도 없고 변화도 없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럴 수 없는 존재이니 '내일 만나는 나를 비롯해서 자고 일어나 만나는 익숙한 존재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해야지' 생각을 정한다. 만약 예상하지 못한 짜증이 훅 불어와서 지금의 다짐을 날려버린다 해도 말이다.

얘들아 기다려, 내일은 신상 츄르다!


작가의 이전글 무슨 일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