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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Nov 22. 2021

당연하지 않은 병원

이석증을 앓을 때였다.

어느 날 느닷없이 새로운 고생을 하게 되었다. 두통과 어지러움 때 문에 걷는 것,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 보니 생활하는 것 자체가 방해를 받았다. 누워서도 방향을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어지러웠다. 어이가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당황스러움에 며칠을 앓다가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똑바로 앉아요."

 잘 들리지 않는 의사의 말을 듣기 위해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었는데 혼이 났다.

"가다가 쓰러질 수 있으니까 사람들 많은데로 다녀요."

쓰러지면 응급실에 실려갈 수 있고 처치받으면 된다고 했다. 정말 남의 일이구나. 의사는 혼자서 웅얼웅얼 설명을 했다. 한숨을 쉬면서 말을 하니 내가 무슨 중병에 걸렸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길에 영양 주사를 권했다. 해결된 것은 없고 앞으로 막막한데 몇 만 원짜리 영양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병원 진료 몇 분에 순식간에 하찮은 존재로 지상에서 지하로 떨어져 버린 것 같았다. 제대로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병명도 정확하지 않았다. 의심이 되는 증상의 늪에 빠졌을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체력이 약했기에 작은 에너지를 굴려가며 살았다. 예상 밖의 일들은 잘 대처를 못한다.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정신적이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된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적은 에너지를 쓰기 위해 많은 생각을 먼저 한다. 간도 작아서 뭐 크게 크게 저지르지도 못한다.


맞벌이 부모님이 있는 어린 첫째 딸은 혼자서도 잘해야 하는 게 미덕이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많이 연구하는 게 습관이 되어갔다. 이번에도 병원을 전전긍긍할까 하다가 또다시 삐딱하게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를 만났고 결국 혼자 앓는 게 속이라도 편하게 되었다. 영양제를 찾아보고 운동법을 찾아보고 같은 고민을 겪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해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봤다.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저도 평범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지러움이 언제 심해질지 모르니  정상적으로 밖에서 몇 시간씩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밖에서 좀 뛰어보고 싶어요."

운동하기 위해 뛰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좋은 계절, 동네 한 바퀴를 뛰는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한 번도 당연한 것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쓸모가 있고 실력이 있는지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달렸고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자 나에게 화를 냈었고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았었다. 그리고 낙심이 반복되자 자포자기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게 된 것 같았다. 당연하게 걸어 다니면서 마주치는 일상의 사람들이 사실은 굉장한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장애물을 넘어 다닐 수 있고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피부를 다 드러내고 걷고 급하면 뛸 수 있고 자연스럽게 먹고 싶은 것을 사 먹고 등등 이런 것들 말이다.


나는 지금 과연 어떤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데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 코로나 백신을 맞고 후유증이 생겨서 병원을 찾고 있었다. 단순한 겨드랑이 통증이었는데 사라지는 듯하더니 다시 아팠다. 더구나 자주 피로하고 이명이 재발했다.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안 가본 곳을 가려고 찾다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


평소 몇 번 가보았던 밥 집의 건너편에 작은 간판이 보였다. 어느 할아버지가 서성이고 있었다. 가만 보니 문도 닫혀있고 오픈 시간을 넘겨서도 열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다니세요? 오늘 처음 왔는데 닫혀있네요?"

"나야 오래 다녔지. 여기 잘해" 갑자기 속삭이는 말투로 잘한다고 강조를 하신다. 옆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할아버지의 비밀스러운 말투에 발목이 잡혔다. 복도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하다 보니 식당 아주머니가 나와서 "문 열어드려요? 의사 선생님은 한 시간 후에 오 실 테데요."물어본다. 할아버지는 훅 들어가셨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기다렸다. '아... 이렇게라도 가야 하는 곳일까? 그냥 다른 데 갈까? 아... 가지 말까?' 커피 한잔을 내려서 홀짝이며 딴짓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병원문을 열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이미 의자에 앉아있었다. "오래 기다리셨네요? 아직 안 나오셨어요?" 할아버지에게 아는 척을 하니 텔레비전을 보던 할아버지가 데스크를 가리키면서 "저기 이름 적어요" 알려준다.

손님들은 이미 알아서 본인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놓았다. 오는 순서구나. 이름과 초진이라고 적고 나서 한참을 더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과 부인이 병원에 들어왔다. 다들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병원이었다. 주로 오후에 문을 열고 저녁 늦게까지 운영하다 보니 낮에는 생업을 하다가 꼭 와야 하는 사람들이나 인근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오는 것 같았다.


림프를 콕 누르자 통증이 확 번지더니 얼마나 아픈 상태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통증은 사실 항생제를 먹어서 낫게 만들어야 했다. 계속되는 미열과 붓기를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 의사는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말을 놓침 없이 다 듣고 질문을 대충 넘기는 법이 없었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그림을 그리며 이해를 시켜주었다. 갑자기 내 몸을 오늘도 당연하게 아픈 곳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원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병원을 나오는데 몸은 아픈데 마음이 든든했다.


나를 위해 병원을 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병원을 위해 가버린 경험들이 많았다. 그냥 혼자 앓다가 병을 확실히 키우기도 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라는 삐뚤어져버린 마음이 생기면 고통스러워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평소에 당연했던 것들이 있었다. 많았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 많이 잃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이고 이 세상은 자유롭게 숨 쉴 자유를 잃었다.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고 계절의 공기, 아침저녁의 공기, 비 오는 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새로운 사람과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는 것이 마치 속살을 보이는 것 같다.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았던 당연한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당연한 것들이 사라져 버리니 많이 아쉽다. 그리고 지금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 중에 당연해지지 않는 것이 어떤 것들이 될까 생각해본다. 대충이 아니라 하나씩 손으로 꼽아본다. 만약 몇 년 후가 된다면 당연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외부적인 변화가 생기면 당연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당장 내년이 되면 당연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까?


생각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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