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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Nov 24. 2023

002. 향기가 있다.

빨래하며 내리는 커피향기와 빵 봉지 냄새가 좋아

장마철의 꿉꿉함을 제습제 없이 이겨보려고 했으나 올해도 지고 말았다.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니 당해낼 길이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길고양이처럼 비를 피해 잘 웅크리는 것이었다. 구멍이 제대로 뚫려서 그쳤다 내렸다 쏟아부었다 쨍쨍하기를 반복한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자동차 아래에서 바짝 웅크린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평소 밥을 주던 녀석이라 우산 안으로 부르고 싶지만 그곳이 더 안전해 보였다. 콸콸 도로에 넘쳐흐르는 물을 피해 아주 바짝 꼬리를 말고 잠자코 있던 녀석은 꼬박 한 시간을 잘 참아냈다.


 빨래가 밀리니 쿰쿰한 냄새가 세탁기 근처에 맴돈다. 바짝 해가 길게 들기만을 기다리기를 며칠째. 비가 그칠 때마다 수건 한 움큼을 세탁기 안에 밀어 넣는다. 곧 사망하실 것 같은 세탁기에게 조금 더 힘을 내라며 속으로 격려한다. 

‘올해 안으로 바꿔보자. 조금 더 쓰다가’

덜컹거리며 몸을 흔드는 세탁기가 안쓰럽지만 일단 빨래를 힘차게 돌려본다. 

이런 날일수록 세제냄새가 코를 톡 쏘는 게 싫다. 일부러 섬유유연제를 쓰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웬만하면 세제를 다 헹구어내는 것으로 세탁을 끝내려 한다. 베이킹 소다 한 스푼을 가득 넣으면서 꼬리 한 냄새가 날아가길 바랄 뿐이다. 이상하게도 세제에서는 기분이 좋은 여운을 남기는 향을 찾기가 어렵다. 


빨래가 열심히 거품을 내는 것을 뿌듯하게 쳐다보고 이제는 집 안의 눅눅한 습기를 커피 향으로 덮어본다. 일부러 커피 한잔을 진하게 내린다. 커피 향은 꽤나 위력이 세다. 드립백 하나를 뜯고 컵 모서리에 잘 걸쳐 안착시켜 놓으면 신선한 커피 향이 코앞의 공기를 살짝 들어 올린다. 


커피포트를 덜덜거리는 손으로 가늘게 물줄기를 조절하며 커피를 내리면 후룩 하며 커피 향이 퍼진다. 시시하게도 빨리 끝나버린 커피향기는 몇 걸음 걸어가면 더 진하게 난다. 커피잔에서 멀어질수록 창문을 향해 커피 향이 휙 진한향을 들고 가 버린다. 그래서 좋다. 좀 더 멀리에서 다시 한번 기분이 좋아질 기회가 있으니까.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꿉꿉한 공기를 나에게서 먼 곳으로 데리고 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빵집에서 빵을 들고 나올 때면 나는 꼭 빵 봉지를 열어 냄새를 맡아본다. 좋은 버터를 사용한 빵은 빵 봉지 안에서 고소한 냄새를 방향제처럼 뿜어낸다. 묵직함이 미덕이지만 빵이 뿜어내는 고소 하면서 살짝 달콤한 냄새는 빵의 무게가 가벼워도 용서가 된다.


오래된 책은 습한 냄새가 난다. 장마철에는 눅눅해진 책 옆으로 제습제를 끼워 넣어놓고 장마가 끝나면 베란다에서 일광욕을 시켜줘야 책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장마철의 습한 공기에 퍼지는 원두커피 향, 오븐에서 꺼내는 빵의 고소한 냄새, 햇볕에서 말리는 책의 습기 찬 냄새 모두 오늘도 지루한 집 안을 채우는 다채로움이다.



빵에 진심입니다. 먹다가 소금빵을 그려보았습니다. 언젠가 한참 유행이 지나서야 먹어보게 되었는데 사실 큰 감동은 없었습니다. 집에서 종종 만들어먹던 모닝빵을 살짝 겉에만 버터에 튀겼는데 조금 쫀득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심지어 짜고 질긴 빵을 사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아직 정말 맛있는 소금빵을 먹어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두근두근

“잠이 오지 않아서 산책 나왔는데

 맛있는 냄새가 나서, 

 무슨 빵 구워?”


 코알라의 질문을 시작으로 두근두근 빵집에 찾아오는 동물들이 귀여운 책입니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굴뚝으로 들어온 재투성이 고양이들에게는 고객맞춤 붕어빵이라니!
 줄을 서서 붕어빵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의 자태가 꿈틀꿈틀 곧 움직일 것 같습니다.
 맛있는 냄새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자극이 되겠지요? 

 작은 중국집 뒷 문에서 하염없이 주방장을 응시하며 웅크리고 있던 길고양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빵 냄새로 고양이를 줄 세울 수 있다니 우리 동네 길고양이들이 킁킁 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등장인물들이 사랑스럽고 색감이 따뜻해서 종종 다시 찾아보는 그림책입니다. 몇 년 전 우연히 들어간 건물의 전시공간에 그림 원본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첫 만남이 원화였던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색감이 예뻐서 그림에 이끌렸는데 작가가 종이에 직접 덧대고 수정한 부분까지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요즘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원화전시를 찾아가 보면 실상은 책을 확대해서 인쇄한 인쇄물 전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애써 찾아간 발걸음이 민망하여 실망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실제로 도화지 위의 물감 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수많은 책중에 이 책의 경험은 잘 잊히지 않습니다. 의도치 않게 만난 어떤 순간의 느낌이 책을 볼 때마다 다시 살아납니다.


*책_두근두근/이석구 글 그림/고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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