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이산, 그의 호에 숨은 비밀

만천명월주인옹

<이 글은 9시 반에 쓴 것>


안녕하세요. 밤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9시반은 아직 초저녁이겠죠?

제가 시골은 캄캄하답니다.

요즘 하늘은 참 아름다워요.

별이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요.


하루에 한번 이렇게 하늘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공짜로 장관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시골에서의 삶의 장점이라 생각해요.

매일 얼마짜리 장관을 보는거야?


더군다나 오늘은 멀리서 한 선배님이 오셔서

후배들을 이끌고

작은 카페에 데리고 가서

와플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스무디도 먹었답니다.

땡잡은 날이에요! ^^




각설하고요, 정조임금님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 분에 관해 알게 된 사실을 풀어내는 것이 독자 분들에대한 도리라 생각해서

이제라도 차츰 풀어내려고 합니다.

준비되셨나요?

음. 되었다고요.


***


정조대왕의 호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홍재, 탕탕평평실 그리고 만천명월주인옹 등이있죠.

그 중에서 가장 말년에 쓰셨던 호가 특히 잘알려져 있습니다.

만천명월주인옹 (萬川明月主人翁)은

그 분께서 재위 21년째가 되던 1797년 만천명월주인옹 자서에서

호로 쓰여졌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태극(太極)이 있고 나서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복희씨(伏羲氏)는 음양을 점괘로 풀이하여 이치를 밝혔고, 음양이 있고 나서 오행(五行)이 있으므로 우(禹)는 오행을 기준으로 하여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밝혀놓았으니,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에 대해 그 이치를 깨우친 바 있었던 것이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뒤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또한 일만 개가 된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이다.

……중략……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그 물의 원뿌리는 달의 정기(精氣)이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그 뜻이 아니겠는가.


이 글만 봐서는 어떤 이야기인지 잘 감이 안오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줄여서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백성을 만천이라고 하면 저 하늘에 비친 달은 왕이다. 그렇게 달 빛이 만천에 비추듯 모든 백성에게 왕의 은덕이

고루 비치도록 지고지순한 왕정을 추구하겠다.


실제로 정조임금은 그런 삶을 사십니다.

역대 왕 중 가장 자주 궁성 밖을 행차하시고 그러면서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직접 해결해 주시지요.

그리고 서얼들에게도 사검서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능력이 있으면 자신의 재능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지요.


아버지 사도세자가 노론의 손에 억울하게 죽어갔음에도 재위 내내 피보는 복수극을 연출하지 않았고

왕이자 스승으로서 옛 성현의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또 신하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시고

실제로 과거문제라든가 규장각 각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등을 직접 채점 합니다.

정조대왕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다들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유학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분들에게 시험문제를 내고

채점하고

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흠, 보통 왕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만천명월주인옹이 강력한 왕권과 개혁의지를 상징하는 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알아본 정조임금의 뜻은 그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그보다 더 깊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주역은 잘 모르지만


주역의 이치를 깨닫고 이 호를 생각해내셨다고 해요.

이야기로 한 번 풀어 볼까요? 이리 오세요. ^^

자, 우리는 다 함께 창덕궁의 존덕정에 와 있습니다.

존덕정에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 내용이 새겨진 목판이 걸려있는 곳이죠.

소설 속 주인공 은서를 데리고 정조 대왕은 존덕정 근처로 갑니다.



**

“잠시 눈을 감아보아라.”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그러니까 감으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잠자코 임금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일각쯤 흘렀을까? 그가 말했다.

“이제 됐다.”

“맙소사 이런 게 가능하다니요.”

눈을 떠보면 실개천이 수십 갈래로 쪼개져 졸졸거리며 흘러내리고 있고 그것들이 만든 작은 웅덩이에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담겨 있었다. 흐르는 시냇물 위로 달이 빛을 쏟아 부으면 시냇물에 비친 달은 물결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부서져 또 다른 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달은 우리가 마시는 술잔에도, 하늘에도 있었고, 실개천을 타고 흐르는 작은 웅덩이에도, 커다란 물줄기에도 있었다. 물살을 타고 부서진 달은 회오리바람의 물안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멱을 마친 선녀가 천상으로 올라가는 모습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전하만의 무릉도원입니까?”

“이젠 우리들의 무릉도원이지.”

“우리들이요?”

내가 좋아서 되묻자,

“너는 이 일을 기록할 것 아니냐. 후손들에게 하는 말이다.”

“예에.”

나는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쀼루퉁하게 대답했다. 왕이 개천에 비친 달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만천명월주인옹은 태극의 이치를 설명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 태극은 또 무엇일까요?

그것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그림이죠.

천지만물의 생성의 원인인 태극.

그런데 그 태극을 말씀하다가 달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태극은 두개의 다른 세계로 나뉘어져 있죠.

그런데 이 둘은 회전하는 방향입니다.

이 둘이 회전하다 보면 귀결하는 것은

음과 양도 모두 하나가 되는 원입니다.

그 원을 달에 빗댄 것이죠.

임금이 말씀하신 달! 그것은 태극의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었어요.

태극의 이치란, 만물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


나는 왕이고 나의 은덕이 골고루 천개의 시냇물에 비춰질 때 만백성이 편안하다.

이것을 왕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은 1차적인 해석

이것을 좀 더 확장 시켜나가다 보면

다름아닌 너도 나도 왕이라는 것이에요.

하늘에 뜬 달은 하나지만

천개의 시내에 골고루 달이 뜨는 것 처럼

천개의 시내에도 달을 담고 있지요.

정조임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자신이 깨닫기만 하면

바로 자신이 왕이자 달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이 될수있다.

이것을 말씀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때요? 우리 자신이 달이고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


어쩌면 우리는 계속 한 사람의 지도자

내가 기댈 수 있는 지도자를 찾아 헤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깨어난다면 내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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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근문입니다.

왜 월근문이라 이름을 지으셨나 하면, 매월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에 참배하러 가셨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정조대왕의 효심과 마음아픔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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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덕정 바로 앞의 정자입니다. 후원은 여러번 가 보아도 참으로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왕실의 정원이지만 화려하지 않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곳입니다. 지나치게 꾸며지지 않아서 편안한 곳 그래서 한국적인 정원인 곳. 후원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정원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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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존덕정입니다. 존덕정 정면에 보면 만천명월주인옹자서의 내용을 목판에 새겨놓은 현판이 걸려있는데요

18세기 후반을 살았던 정말 나라의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셨던 임금이 있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흔적입니다. 힘들었던 때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 마음만은 현대인들보다 지고지순하고 그 기상은 높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잘 알지 못했던 때에는 지금이 제일 좋아.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고개가 숙여집니다. 조상님들이 후손들을 또 이 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지금의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다면


저의 외국인 친구 중 한국에 거의 8년을 살고 한국말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도 이 곳에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을 몰랐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중의 하나가

세계 어느나라를 다녔지만 한국처럼 독특한 나라가 없었다고 해요.

마치 전 나라가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런 것이 자신에겐 굉장한 매력으로 비춰졌답니다.

여기가지, 정조대왕의 호 만천명월주인옹의 비밀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의 출처는 정조의 비밀사관, 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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