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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Dec 04. 2023

그 강미정 아나운서가 아닙니다.

글 쓰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강미정입니다.

네. 방송도 했던 아나운서 강미정입니다. 하지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이정섭 검사 처남댁'인 강미정 아나운서는 아닙니다. 이름도 직함도 같아서인지 종종 오해하며 제 글에 댓글이 달리거나 인스타 그램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현재 잠시 동유럽에 살며 한국의 이슈에 대해 거의 모르고 지내고 있던 저는 그분들을 통해서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남편의 마약 관련해서 뉴스공장과 PD수첩에서 인터뷰했던 강미정 아나운서는, 제가 OBS아나운서 재직 당시 MBC신입사원(아나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동명의 출연자였기에 기억에 많이 남아있던 분이었습니다. 이름이 같기에 잘 모르시는 분은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신고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들이 보낸 링크는 '강미정 아나운서 관심 이어져... 남편 사생활 의혹 속 앵커 시절 모습은?'이라는 제목과 함께 '저'의 오래된 앵커시절 사진이 아주 크게 실려있었습니다. 기사는 별 내용 없는, 그저 얼굴을 공개해 관심을 끌기 위한 기사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화제의 인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저의 사진이었고, 사진의 출처에는 '팬클럽 사이트 캡처'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팬클럽이 없어요. 그렇게 인기가 많은 사람도, 유명인도 아닙니다. 지금은 글 쓰고, 책 쓰고, 강의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답니다.


지인들의 제보


기사에 노출된 기자의 이메일로 사정을 설명하고 사진을 내려달라고 최대한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비난하지 않고 앞으로 좋은 기사를 기대하겠다는 말로 대신했어요. 그런데, 없는 메일 주소라며 메일이 돌아왔습니다. 신문사의 대표 이메일을 찾아 다시 상황을 설명하고 빠른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팬클럽이라고 하는 사이트의 링크를 알려달라고 했지요. 이틀 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오보 기사들은 더 확산되었죠. 이틀 후에 답변이 왔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며 바로 삭제조치 하겠다고. 예상대로 팬클럽은 없었고, OBS재직 당시 제가 짧은 글을 기고했던 것을 찾아 사진을 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사들을 통해 오해를 하게 되었다며 링크들을 보내주었는데, 다른 언론사와 인플루언서의 블로그였습니다.


오보 신문사의 사과 이메일


사이트에는 이정섭 검사의 처남댁인 강미정 아나운서의 프로필로 '저'의 상세한 출생, 학력, 경력 등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생년월일, 학교, 근무했던 방송국까지 모두 저의 것이었지요. 생각보다 상세하게 정보가 노출된 것 같아서 '강미정 아나운서'로 검색해서 다른 글들도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언론사들에서도 저의 프로필을 그대로 쓰고 있었고 사진도 저의 것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글에는 저와 그녀의 사진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블로그 인플루언서들의 수많은 글에도 저의 상세정보를 노출하고 있었고, 심지어 제가 결혼했던 2013년 당시에 찍은 남편과의 사진까지 찾아 올려둔 곳이 꽤 여럿 있었습니다. 타국에서 성실히 일하며 술도 못 마시는 우리 남편이 어쩌다 마약에 연루된 사람이 되어버려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곤 했답니다. 다행히 착한 남편은 웃고 넘겼지만, 정말 이건 좀 너무했다 싶었습니다.


제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 건 오보보다 그 과정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 본 사진 오보에는 그냥 황당해서 피식 웃고 친절하게 삭제 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느린 대응, 다른 사이트의 글을 참고하다 오해가 생겼다며 보낸 링크들, 블로거의 사건정리 내용을 참고해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보고 또 다른 언론사들이 그대로 오보를 내고, 그 누구 하나 정확한 사실도 하지 않고, 검색해서 상위에 노출되는 정보들로 기사와 글을 써갔을 과정이, 한때 언론사의 몸 담았던 저로서도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일파만파 퍼지는 블로그 인플루언서들의 글을 보니 이제 출생, 학력, 이력뿐만 아니라 저의 인스타그램 링크까지 달아두었고, 저의 최근 인스타그램 사진 여러 장을 캡처해서 올려두었습니다. 링크를 달거나 캡처를 하기 전에 저의 인스타그램의 프로필을 한 줄이라도 읽었더라면, 최신 피드의 날짜와 내용을 단 하나라도 제대로 봤더라면, 해외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제가, 며칠 전 언론과 인터뷰 한 그녀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기사를 쓴다는 기자가, 인플루언서라는 사람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와 사진을 쉽게 올리고, 그것도 현재 사건과 크게 관련이 없는 소위 '신상 털기'에 치우쳐있는 것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오보 기사에 메일을 보내고, 수많은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알리고 했으나 끝도 없이 나와서 지쳤습니다. 이렇게 글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특히 기자나 인플루언서들의 글은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보고 그것을 사실로 인지하고, 누군가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또 유사한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 글의 조회수만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이 퍼져나가고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꼭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지금 내가 올리는 정보가 이 글에 필요한 것인가. 이 인물의 과거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현재 인스타의 사진을 캡처해서 올리는 것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가. 나의 글에 잘못된 정보는 없는가. 읽는 이들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는가... 이런 기본적이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인 여행글을 쓰더라도, 지명, 카페명, 철자 하나도 틀리지 않게 쓰려고 몇 번의 확인을 거칩니다. 기자라면, 인플루언서라면 더 섬세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보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강미정 아나운서와 무척 친근해진 느낌입니다. 오보가 전해지는 과정에 대해서 화가 나고 실망스러울 뿐 그녀에게 나쁜 감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에, 같은 일을 했던, 그리고 지금 똑같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합니다. 유명하지도 않은 제가 저의 정보가 노출된 것만으로도 이렇게 피곤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삶의 더 큰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그녀는 얼마나 큰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모든 문제들이 원만하게 잘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더 신중하게 저의 글을 세상에 내놓을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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