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리 Apr 28. 2019

언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임블X와 <진정성 마케팅>

브랜드의 가치가 가장 크게 폭락하는 경우는 어느 때일까요?
제품의 결함보다도, 그것을 감추려 했던 거짓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진정성마케팅, 95)


저는 <지그재그>라는 쇼핑 어플을 즐겨 씁니다. 꼭 옷을 사고 싶어서 앱을 켠다기보다는 눈팅하러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옷 구경도 옷 구경이지만 쇼핑몰 구경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지그재그>에는 '쇼핑몰 랭킹'이라는 재미있는 기능이 있거든요. 무슨 알고리즘으로 순위가 매겨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임블X'라는 이름의 쇼핑몰은 굳건한 1위를 지켜왔습니다.

잠깐만 봐야지 했는데도 시간 순삭

한번은 대체 어떤 쇼핑몰이길래 이 험난한 인터넷 쇼핑 시장에서 부동의 탑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 쇼핑몰을 들어가봤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띄었던 건 상품이 아니라 한 카테고리였습니다. '맘블X'. 쇼핑몰 대표 격 겸 모델이 임신을 하자, 임산부들을 위한 라인을 별도로 출시한 겁니다.


임신을 경력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구나, 임산부들에게도 의류 선택권이 넓어지고 있구나, 아 라인 이름 한번 입에 쫩쫩 붙게 잘 지었당. 임블X의 상품은 제 취향이 아니라 다시 쇼핑몰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 이후로 이 쇼핑몰과 대표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 몇 주 간 임블X를 둘러싸고 거시기한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시작은 쇼핑몰에서 판매한 호박즙추출물의 곰팡이였지만, 이후 제기된 각종 의혹들에 대한 미흡한 대처가 이어져 상황은 갈수록 나쁜 쪽으로 치닫는 중. 임블X와 관련된 부정 이슈들을 모아 해명을 요구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 수가 7만에 이르고, 관련한 국민 청원이 제기되고, 이제는 지상파 뉴스까지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자체 제작 상품의 명품 카피 의혹, 샘플 사진 제품과 판매 제품 불일치, 화장품 및 식품에서 발생한 부작용... 어떻게 지금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다채로운 이슈들이 연일 터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인터넷 쇼핑몰 판에서 명품 카피하는 건 공공연한 업계 관행이고(실제로 임 씨도 이런 뉘앙스로 해명), 상품 페이지에 올릴 사진에 필터 씌우고 보정하는 것도 (하면 안 되지만) 왕왕 있는 일이고, 화장품이랑 식품에서 부작용...아 이건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합리화를 시킬 수가 없어 제외해야겠군요. 아무튼 저 이슈를 빼고 임블X에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 다른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은근슬쩍 건드리고 있는 일입니다. 물론 당연히 앱솔룰리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고요.


그럼 왜 임블X만 지금 이렇게 후드리팸팸당하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임블리가 오프라인 매장까지 론칭한 업계의 큰 손이기 때문일까요. 많은 이들은 '배신'의 감정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치달았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잠깐 보고 호감을 가진 정도에 그쳤지만, 임블리를 소비한 오랜 팬들은 호감에서 애정을 쌓고 애정에서 신뢰를 쌓았거든요.



그것도 장장 6년에 걸친 세월 동안.




임블X의 대표 격인 임 씨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82만 명입니다. 신제품 론칭 소식과 간단한 CS같은 공적 업무부터 본인의 출산과 남편의 라이브방송같은 사생활까지 공개하며  고객들과 아주 아주 아아주 친밀한 스킨십을 유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 씨는 그냥 프리미엄맘블X레깅스를 그냥 호박X까지추출한리얼호박즙을 그냥 인진쑥밸런스에센X를 판 게 아닙니다. 저로 따지면 6년 동안 알고 지낸...고3 때 같이 화장실에서 머리 감고 대학교 졸업반 때 같이 공모전 준비한 뒤에 같은 회사 같은 부서 입사한 친구가 저한테 옷 팔고 즙 팔고 쑥 판 것이죠. 그것도 '이거 내가 입어보고! 먹어보고! 발라보고! 너한테 추천하는 거야!!!'라고 호언장담까지 하면서요. 그런데 웬걸. 사실 자기가 입어보지도 먹어보지도 발라보지도 않았다네요.


11번가 같은 오픈 마켓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의 물건을 사고 통수 맞는 것도 빡치는데 6년 사귄 친구의 물건을 사고 통수를 맞았다? 이건 보통 빡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한테는 미안하다고 사과도 제대로 안하면서(제기된 의혹 중 일부 묵살) 다른 친구한테 또 물건을 팔고 있으니(부정 이슈 진행 중 신상품 업데이트) 두번 빡치고 세 번 빡칠 일입니다.


'진정성 마케팅'이라는 책의 부제는 '끌리는 브랜드를 만드는 9가지 방법'입니다. 9가지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방법들의 본질은 모두 '진정성'으로 통합니다. 정직한 상품을 만들고, 정직한 스토리를 짜고, 정직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직한 홍보를 하라는 거죠. 비슷한 상품이 많다 못해 역류하는 세상에서 진정성은 고만고만한 것들 사이에서 고고한 빛을 내게 해줄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되니까요. 카카오 캐릭터가 커피믹스부터 불닭볶음면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제품군에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상품보다는 브랜드를 보고 산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냥 브랜드가 아니라 내가 믿는, 그래서 좋아하는 브랜드를 보고 소비한다는 반증.


임블X는 아직도 새로운 상품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CS 방침도 세우겠다고 합니다. 강력한 부침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얼마나 호응을 해줄지, 앞으로 사업이 몇 년이나 유지될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문을 닫고 잠잠해진 뒤 다시 오픈을 한다해도 예전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95)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우리 모두 영원히 살 거예요. 2045년에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