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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리 May 05. 2019

단편 소설이 너무 싫은 이유

임소라 - <친구추가>

단편 소설은 정말 싫다.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은 속된 말로 끙아를 하다 만 기분이랑 비슷하다. 시작을 안 한 건 아닌데 개운하지가 못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막 흥미로워지려고 하는 시점! 바로 그 시점에 이야기를 끊어버리니 환장할 노릇이다.

단편 소설을 묶어놓은 소설집은 그래서 나한테는 가관이다. 이 편 읽으며 끙아하다 말고, 다음 편 읽으며 끙아하다 말고, 마지막 편 읽으며 끙아하다 말고...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난 그냥 책을 읽었을 뿐인데 갑자기 변비를 얻은 기분이 든다.

긴 이야기의 호흡 속에서 충격!과 임팩트! 를 소설 중간 중간에 넣을 수 있는 장편 소설과 달리, 단편 소설의 충격!과 임팩트! 는 결말에 몰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래서 더 성질이 난다. 아니, 마지막에 이런 사건을 터뜨려놓고,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넣어놓고, 지금 이야기를 끝내겠다는 거야? 그래서 4편의 김 사원은 회사를 때려친 거야 만 거야? 1편의 엄마는 왜 굳이 호텔에 목걸이를 들고 간 건데??

단편 소설 작가들이 유독 얄밉게 느껴지는 건 이것 때문이다. 실컷 몰입하고 궁금하게 해 놓고 마지막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고 쏠랑 떠나버리는 야속한 사람들. 하핫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라는 건 말도 안돼. 사실 자기는 다 알고 있을 거잖아! 4편 석대리가 김사원이랑 퇴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1편 주인공이 호텔 메이드를 찾아가서 난리난리개난리를 치는지 다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친구추가>가 단편 소설집인 걸 알았더라면 난 아마 절대 사지 않았을 거다. 1편의 충격적 마무리를 보고 난 뒤 다음 장을 넘겼을 때 굉장히 초면인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이 나왔을 때 얼마나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을 느꼈는지. 1편에서 해결되지 못한 내 궁금증은 내 미진함은 어쩌란 말이야. 아직 나는 목걸이 도둑의 행방이 너무 궁금한데 이건 그냥 냅두고 다짜고짜 새로운 사건을 들이밀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런데도 이 책을 1편을 읽고 끝내지 못한 이유가 내가 단편 소설 작가들을 얄밉게 여기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치들은 작고 조그만 규모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든 오밀조밀 재밌게 만들어낸다.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몇 천자의 글자들 속에서 흥미가 생기고 호기심이 고조되고 마지막 순간에 내 안에서 뭐가 펑펑 터진다. 아직 방금 읽은 소설의 끙아가 아니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음에는 뭘 준비해놨나 궁금해져서 휴지를 아니 두근두근함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니 통탄할지고...

그래서 재미있는 단편 소설집은 보통의 단편 소설집보다 더 싫다. 읽다가 재미 없으면 빨리 손절하고 후루룩 잊어버리면 되는데 재미 있으면 결국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낸 뒤에 책에 실린 단편 소설의 수만큼의 찜찜함을 안게 되니까. 그래서 <친구추가>를 읽고 난 지금 나는 4개의 체증이 속에 쌓여버렸고 뭐랄까 계획에 없이 굉장히 속상해.

진짜 단편 소설집인 거 알았으면 안 샀다.
재미없으면 끝까지 보지도 않았다!
이럴 일 없었다고!



그래서 김 사원과 목걸이 도둑은 어떻게 된 거야!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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