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환구, 67세, 동광 문구사
올해 연세가 어떠세요?
내가 아직 젊은데?
50대 후반이세요?
(웃음) 내가 커피 한 잔 줄게.
(커피를 건네주신다)
1950년생이니까 얼마야. (웃음)
가끔 손님들한테 커피도 만들어 주세요?
네. 내가 커피를 좋아해요.
그래도 지금 시간이 하루 중에 제일 여유로운 시간이신가 봐요.
나 인터뷰한다고 붙들어서 그렇지.(웃음) 할 일은 많지.
손님 없거나 일 없을 때는 평상시에 뭐하세요?
나는 쉬어보질 못했어. 정리를 했지. 아래위 왔다 갔다 하면서. 손님 없다고 잠자는 건 없고. 사람은 좀 바쁘게 살고 바쁘게 움직여야 되걸랑?
이 동네에서 출퇴근하시는 거예요?
우리 집은 인계동에 있어요. 나는 주소가 여기로 되어있으니까 여기가 내 집이고. 집이자 직장.
평소에 몇 시에 여시고 몇 시에 닿으세요?
365일 동안 구정날 추석 날만 쉬고 아침 8시에 열고 전에는 8시에 닫았는데, 지금은 6시 7시면 닫아요.
쉬고 싶어도 일이 있으니까 계속해야지.
문구점은 이 자리에서 쭉 하셨어요?
이 자리가 20년은 넘었을 거야. 여기서 35년 했을걸? 결혼하고 바로 한 거지. 영동시장부터 했던 거니까.
문패 이름은 어떻게 정하셨어요?
옛날에는 영동시장에서 10년인가? 10년 넘게 했었는데 화홍 교재라고 해서. 올라오면서 아예 문패를 갈았지.
이름은 이름 짓는데 거기 가서 지었어.
'동광'은 무슨 뜻이에요?
뜻이 어딨어? (웃음) 동쪽에서 빛이 난다 해서 동광이라 한 거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정말 좋았어요. 다른 데서는 잘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숨겨져 있어서 한창 구경하다 가고, 남들이 안 사가는 장난감도 사갔어요.
사모님이랑 같이 운영하시는 거잖아요. 서로 어떻게 일을 분담하세요?
분담이 어딨어? 같이 하는 거고. 물건 정리는 내가 거의 다하는 거고 안식구는 여기 앉아서 계속 일하는 거구.
내가 머슴이야. 그러니까. (웃음)
가족과 함께 일을 한다는 건 어떠세요?
좋지. 편하고. 같이 다 하는 거지. 난 다 할 줄 모르니까. 정리하는 건 원래 하던 거니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지. 하는 일이 그건데 뭐.
구조가 지하 1층, 1층, 2층인데 층마다 정리하는 노하우가 있으세요?
지하실에는 줄넘기 종류하고 싸구려 완구들. 실내화 같은 거 곰팡이 덜 날 수 있는 거, 물에 덜 젖는 거. 쇠가 들어있는 물건은 대부분 2층으로 올라갔어요. 습하지 않게 보관해야 되니까.
그럼 1층은요?
문구류 같은 거.
2층은?
가서 구경하고 와. 우선 인터뷰하고, 더 둘러볼게요.(웃음)
여기 문구점에서 제일 오래된 건 얼마나 된 거예요?
그건 알 수가 없지. 그때 팔다 남은 물건들이 어디엔가 박혀 있겠지. 그때가 언제냐. 80년도. 그때 물건이 어디에 남겨져 있을 거야. 다 없어지진 않았겠지.
물건이 많아서 찾기가 어려우시겠어요.
물어봐. 내가 찾아볼게.(웃음)
문구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이 뭐예요?
문구점에서 요즘 많이 팔리는 게 없지. 왜냐하면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발전되다 보니까 문구점이 자꾸 없어져요. 스마트폰, 전화기 하나만 가지고 놀아도 싫증이 안나잖아. 볼펜도 안 사가잖아. 컴퓨터로 하지, 스마트폰으로 하지. 그리고 요즘은 디지털 시대고 옛날에는 놀거리는 이런데서 많이 사고 그랬으니까. 요즘은 뱃속에서 나오면 응애 하고 스마트폰 쥐어주잖아. 그건 문제가 되지. 서울 가면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거든요.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 같아. 점점.
문구점에 들어오는 물건 중에 특이하다고 생각하셨던 거 있어요?
그런 건 없고. 하다 보면 매번 물건이 올 때마다 다 새로운 것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특이하다고 볼 수는 없지. 물건이 다 비슷한 거니까. 처음 보는 사람은 특이한 게 많지. 우리 같은 경우는 매일 보는 경우니까.
수집가 분들이 문구점을 굉장히 좋아할 것 같은데, 수집가 분들은 많이 찾아오세요?
요즘은 덜 오지. 다 많이 사갔지. 수집하는 사람이 옛날 물건을 찾아서 가져가서 손질해서 더 비싸게 받아. 한 7-8년 전인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왔어. 옛날 일본에 들어왔던걸 다시 가져간 거야. 그래서 일본에 가서 비싸게 받고. 그거 사간 사람들은 10배 이상 올려서 받아. 못난이 삼 형제 그런 거. 많이 사갔어. 인사동 같은데 가면 큰 도시나 이런데 가면은 옛날 물건 꾸며 놓고서 사람들 들어가면 입장료 받잖아. 추억의 박물관 이런 식으로.
(인터뷰 중에 거래처 청년 등장)
청년 :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인터뷰하면 사진으로 남겨준데.
청년 : 사장님이 산증인 이시죠. 산 증인. 이쁘게 찍어주세요~
인터뷰하기가 쉽지가 않아. 한가하게 얘기할 시간을 안 줘. (웃음)
저는 괜찮아요. 일하시면서 자유롭게 인터뷰 하시는거.
그럼 끊어지잖아.(웃음)
아까부터 거래처 분들이 끊임없이 오시네요. 거래처가 많으신가 봐요.
지금은 거래하는 사람도 예전보다 많지 않은 거지. 옛날엔 많았는데. 예전엔 여기 팔부자 문구 거리가 엄청 사람들이 많고 직원들도 있었지. 장사가 예전만큼만 되면은 아주 부자 됐지.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거래하는 사람들은 있는데, 손님이 지금은 많이 안 와요.
30년 넘게 일하시면서, 재미있는 일이 많으실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에피소드 있으세요?
뭐가 있어 무슨. 밥 먹고 일하고 그것밖에 더 있어?(웃음) 아, 지금 온 친구 말고 아까 왔던 사람이 나 군대 생활할 때, 같은 사단에서 군대 생활을 같이 했어. 나보다 조금 빨라. 그러니까 거래한 지 40년 얼추 됐나? 그 친구도 신기한 인연이고. 또 거래를 꾸준히 지금까지 하는 사람이 또 있어. 용인에서 오는 거야. 그 사람은 40년을 넘게 장사했어. 지금 아마 80이 넘으셨어. 80이 넘으셨는데, 매일 자주는 못 와도 옛날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 왔는 데는 요새는 며칠에 한 번씩 와. 우리 집만 주로 거래를 했는데 그분은 물건 값을 비싸네 싸네 소리를 한 번도 안 해. 자기가 필요한 걸 두고 가고 그래. 그런 양반이 지금은 똑같이 하지. 믿음도 있고.
지금 삶은 어떠세요?
지금 삶은 좋지. 좋은데, 조금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니까 그게 지금 좀 그래. 아쉽고 밉고, 그래.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는 현상이 되니까. 아쉽고 미련도 남구 그래요.
제가 공통적으로 드리는 질문이 있는데요. 늙음에 대한 생각을 열심히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난 아직 늙지 않아서 몰라. (웃음) 난 아직 늙어보지 않아서 모르걸랑?
한창 청년이시네요.
그럼 청년이지.
그럼 늙는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늙는다는 기준은 많은 사람이 같이 어울릴 때가 젊을 때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가 늙는 것 같아.
떠나갈 때. 그리고 젊어서는 안 외로운데, 나이가 먹으면 자꾸 외로워지는 게 나타나고 그래. 다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사는 건데 지금 사람들은 너무 빨리들 혼자 살겠다고. 그런 판단을 하는 것 같은데. 혼자 살고 즐기며 사는 것도 좋은데, 젊어서 그렇지 늙으면 힘들다. 나이가 먹으면 외로워지고, 자기가 건강하면 그런 걸 안 느끼는데 몸이 불편하고 이상할 때 그런 걸 많이 느끼지. 좀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 의지할 사람도 필요하고. 그리고 사람이 어느 누구나 한 번은 왔다가 한 번은 가는 건데. 죽는 건 똑같지. 가는 거는.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어.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이제 그런 건 나이가 없다고 봐야지. 지금 한들 언제 이루냐고. 그냥 편안하게 먹고살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면 되는 거지 뭐. (웃음)
스마트폰과 인터넷 쇼핑이 생기면서 많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저씨의 문구점이 위치한 문구 골목도 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과 후에 사탕 물고 문구점 구경하는 게 낙이었는데, 아직도 용케 자리를 잡고 있는 문구점이 있으면 위안이 된다. 아저씨 문구점은 오래도록 자리해 주셨으면 좋겠다.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