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돈, 83세, 이화의원 병원장 할아버지
성함이랑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최규돈. 83세.
저는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요즘 다양하게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지금은 우리 처럼 살기가 힘들 거야. 변화가 심한 사회가 돼서, 우리처럼 고리타분하게 그 자리에서 하기는 힘들어. 직업적으로도 그래. 의사들도 안정되지 않으면, 그런 상황들이 생긴다고. 옛날과는 달라졌고, 변화의 시대야. 아주 심해.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께서 운영하시는 병원이라고 전해 듣고 찾아오게 되었어요. (웃음)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뵙고 삶과 늙음과 죽음, 상실에 대해 질문하고 있어요. 많은 환자를 보시면서, 직업적으로 생로병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삶, 늙음, 죽음, 상실에 대해서요.
사람이 젊을 때는 늙는 것도 죽는 것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게 되지. 어찌 됐건 생자필멸이라고 생각하지. 주위에 돌아가시는 분들 보면 자연히 내가 연장자가 되는 거고. 늙고, 죽는다는 건 먼 훗날의 얘기고 나랑은 상관없다고 여겨지지. 돌아가신 분이 연세 몇에 돌아가셨다더라. 피상적으로 깊이 없이 느껴지는데. 조금씩 자기 문제로 조금씩 받아들여지면, 아 죽음이라는 게 어떤가. 인생살이라는 게 어떤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마무리 짓는 게 좋겠나. 나이 들면서 당연시되고, 나한테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지는 거지. 처음엔 내 일이 아니야. 차차 나에게도 돌아오겠구나. 나한테도 이제 돌아왔구나. 아무리 도사라도 사람은 늙으면 이목구비가 전부 다 망가지지. 특히, 일상생활에서 보행이 망가지지. 생각하는 것도 결국 다 뒤떨어지고 그러니까. 딱히 해답은 없지. 그저 마음속에 쌓이는 생각이지. 생각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더라고.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고. 누구나 생리적인 연령이 있고, 정신적인 연령이 있는데, 생리적인 연령보다 정신적인 연령이 오래가는 것 같아. 치매라고 하는데, 다행이랄까. 보편적인 결례로 볼 때, 아직 내가 치매 같지는 않은데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는 게 좀 빠른 것 같아. 근래의 일은 잊어버리게 되고, 과거의 일은 기억이 되살아 난다고. 잘 못 듣게 되니까 남의 얘기도 소곤소곤하면 비밀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고. 자기네들이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길 하는가. 그게 자꾸 노화하는 변화 과정인 것 같아요. 아직 나는 듣는 거 보는 거 옛날 그대로 생활했던 대로 기능이 살아있다고 생각돼. 젊어서 자식 키우는 때는 키우는 재미와 자식을 돌봐야 하는 의무와 뒷바라지해야 할 의무가 있지. 서서히 다른 지엽적인 거나 사소한 거는 잘 생각을 안 하게 되지. 본능적으로 자기 새끼, 애기 기르는 거, 집안을 생각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자꾸 커서 성장하면 어릴 때 생각했던 애들이 비록 자식이지만, 자식이 아이를 낳으면 자녀라고 그럴 정도로 우리도 자식들을 대하는 게 바뀌지. 그렇게 되니까 자꾸 개념이 달라지는 거지. 거기에 대해 반비례적으로 나는 나이가 먹는구나 하고 느껴지게 되더라고. 정신적인 교육 문제가 제일 필요한 거겠지. 학교의 교육도 있지만,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자꾸 얘기하게 되더라고. 노인의 고집이 아닌가. 알고 있는 걸 자꾸 모르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녀들을 염려스러워하는 부모 마음이겠지. 어차피 조금씩 멀리하고,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게 생기지.
늙어가면서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자꾸 고립된 된달까. 접촉하는 사람들하고 사회에서 고립된달까. 그리고 또 피부에 닿는 외로움이 왜 생기냐 하면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그전엔 의사소통이 잘 되고 즐겁게 대화했었는데, 갈수록 대화가 단순해지고 유치해져. 단순해지니까 흘러가는 정보에 대해서 정보가 늦잖아. 아는 범위 내에서 자꾸 떨어지게 되는 거지. 참 서툴어진다. 재미없어진다. 토론할게 없어지니까. 그나마 그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의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데, 하나둘씩 가고 갈수록 숫자가 적어지니까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 있을 것 아니야. 외로워지는 느낌이 드는 거지. 외로워진다는 건 자꾸 위축되고, 자기 자신이 축소되고 그런 거지. 처음에는 그것에 대한 반발이 있고 그것을 극복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겠지. 그러다 보면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책도 자꾸 보게 되지만, 책을 봐도 기억에 잘 안 남아. 그래도 요즘 읽는 책은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발자취 같은 거, 그런 책을 자꾸 읽어보고 보게 되고 그러면서 그게 공부랄까. 자기 스스로 위안이라고 할까. 근데, 제일 좋은 것이 친구들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같이 지내는 게 제일 좋은 일인데 그게 점점 없어지잖아. 그러니까 자꾸 안 좋은 일이 기억나게 되고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기고. 할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 그래서 시대가 변하는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고. 보수라는 게 그런 것 같아. 자기가 옛날에 했던 거. 거기에 대한 걸 자꾸 지키고 싶어 지는 거야. 경제, 사회, 문화가 달라지고 발전하는데 못 따라가니까 옛날이 좋았다 얘기가 나오는 거야. 자연히. 사실 틀린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그것밖엔 없으니까. 그 당시가 좋았다고 하는 거지. 예를 들자면, 예술 같은 것도 요즘 나온 선진적인 작품들.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다르잖아. 옛날에도 있긴 있었겠지만, 요 근래는 더 잘 모르겠더라고 이해를 못해요. 옛 것을 더 좋아하고. 이제는 IT산업인데, 내가 잘 모르잖아. 배우고 싶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가면 노인들 모아 놓고 가르쳐주는데, 나한테 맞는 게 있고 안 맞는 게 있고 그러니까 재미없어지는 거지.
그래서 한창 배우시다가 그만두신 거예요?
그렇지. 뭐 엑셀 같은 건 안되더라고. 응용도 안되고 그러니까. 실제 실생활에 응용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 생활 속에서 반복하고 할 수 있어야 알고 싶어 지고 질문할게 생기는데, 재미가 없지. 누가 그래, 받아들인다 받아들여야 된다. 받아들여라.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고 그러라고. 옛날에는 교회, 성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스스로 판단해서 다 하는 거다 라고 했는데, 마음이 약해지고 의지할 데가 없다 그러면 종교라는 게 필요하겠더라고. 공동의 목표로 무조건적인 만남이니까 잘났다 못났다 할거 없잖아. 얘기하는 거 그대로 듣고 받아들이고 하는 거니까 진리라고 생각하고. 거기다 의심 품으면 안 되지. 그렇다 하고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가는 것 같아.
인간의 생사를 두고 보면,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요?
그거는 있어요. 타고난 자기 체질이 있어야 되는 건데, 어떻게 하루의 일과 중에 몸을 움직여 주는 게 좋은가. 신체는 조금씩 의도적으로 움직여줘야지. 단적으로 얘기해서 시간 생활이 엄격해야 하는 거지. 남들이 보면 심하다고 하지. 아침, 점심, 저녁밥 먹는 시간이 똑같아야 좋고,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이 똑같고, 섭생하는 것도 나쁜 것은 삼가고. 운명인 것 같아. 대게 운명이야. 나는 운이라는 건 잘 모르겠는데, 그런 건 있는 것 같아. 그건 해답. 답 찾기가 어려워. 죽음은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 세상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걸 남기고 가리라. 반성하고 사람답게 이제라도 정리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지. 겸손해지지. 나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 상당이 점잖아지잖아. 그렇게 세월이 가리키는 것 같아. 뭐 죽음은 거절할 수 없는 거잖아.
저는 오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왔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의 끝맺음이 안 된 느낌이 들어서, 자꾸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개념이 자꾸 그런 방향으로 가면 편협해져요. 넓게 보고, 그런 분야도 있고 이런 분야도 있지만 밝은 분야가 적어도 더 많다. 밝은 분야가 더 커져야 이런 어두운 부분도 밝은 부분이 비춰줄 수 있는 거지. 이것만 너무 보지 말고. 아직은 젊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농담처럼 그런 얘길 많이 해. 좋은 것만 보고 살라고. 좋은 것만 보고. 비관적이고 비극적인 슬픈 얘기는 상당히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어. 그 기간이 많고 해도 너무 자기 마음 쓰다 보면, 슬픈 마음이 생기거든. 그건 묻어두고, 일상생활은 즐거움만 찾으면서 즐거움만 보면서 사는 거 그걸 권하고 싶어. 누구든 30대, 50대, 80대가 되니까 이 흐름 때문에 자연히 마음가짐이 따라가게 돼.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너무 비관적인 것만 보고 슬픈 것만 생각하면 안 돼. 인생이 너무 어렵게 지나가게 돼. 자기에 대한 하나의 가혹한 얘기가 될 거야. 그건 그것으로 묻어두고, 다른 다양한 것들을 새롭게 시도하고, 활발해지는 것, 솟아나는 것, 탄생하는 것, 성장하는 것, 발랄한 것을 가까이하고. 결국은 그것도 역시 끝이고 죽음 아니야. 내가 부탁하는 건 밝은 걸 자꾸 찾아내. 그러면 좀 밝아질 거 아니겠어? 가는 건 어차피 다 가는 거야. 밝은걸 찾아내. 밝은 에너지를 찾아.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으신가요?
또 새로이 뭘 한다 이러는 거는 이제 의욕이나 욕망 이런 거 다 없어지는 거고. 그건 이제 소망, 희망을 갖고 살아라 얘기하지만, 이루려고 하는 건 욕심인 것 같고 그게 남이 볼 때는 속된 말로 과욕인 거고 그런 거지. 현실적으로 볼 때는 다 이제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면서 도우면서 지내면 좋겠지. 좀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긴 있어요. 가령,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자를 풀이하는 게 참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 물론 철학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시간이 맞게 되면 그런 강의를 듣고 싶어. 인간의 행실에 대한 거 많잖아. 상당히 재밌어. 그게.
할아버지 인터뷰하기 전에 무형문화재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왔어요. 그림을 그리신 후에 그림의 내용을 한문으로 적어 쓰시더라고요. 할아버지도 여든이 넘으셨는데 여전히 그림을 그리시고, 글을 쓰시더라고요.
그림 그리고 있어?
물질과는 상관없이 정신적인 것, 내면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길이다. 무형문화재가 되었다고 명예가 다가 아닌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런 마음으로 예술을 하라고 하셨어요.
대단하구먼. (액자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리키신다) 무명인 사람이 그려줬어. 벌써 돌아가셨지 물론. 집에서 자기가 그려서 주고 싶은 사람한테 주는 거야.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한 거잖아. 고맙게 받아야지. 그 양반이라도 보면 마음이라도 흡족하라고 액자에 넣었지. 몇 달 안돼서 돌아가셨어. 이 그림을 계속 보관하고 간직하고 그랬는데 건드릴 수 없어. 그 사람이 혼을 담은 거잖아. 상상을 하는 거잖아. 자기는 주는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운가 봐.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 소장해줬음 하는 마음이었나 봐. 그 당시부터 버릴 생각 안 하고 잘 두고 보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벌써 돌아가셨지.
저는 제가 고민하던 부분을 여쭤보고 듣고 싶었어요.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난 두서없이 얘기했는데, 조금 묻고 싶은 방향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얘기해주고 그러지. 충분히.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우리 집사람이 나한테 하는 얘기가 저기 이제 말 좀 많이 하지 말라고.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 내가 조금 말이 많은 편이야. 그것도 많이 줄더라고. 말수가. 내가 말하는 것도 힘든 거야. 수식하고 앞뒤가 맞게 하고 그래야 되고 순서도 맞춰야 되고 생각을 해야 되니까.(웃음) 나이 든 사람이 하나라도 더 줄 수 있음 바랄 게 없어요. 이젠 그런 나이가 돼요. 하나라도 줄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만족이지.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주는 걸로 만족하지.
할아버지는 오래 의사로 지내셨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환자들을 많이 보시고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무엇이 더 알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인터뷰를 하다가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할아버지는 모르셨겠지만.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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