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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윤 Oct 11. 201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_18

심상관, 57세, 풍년 농악사 운영


INTERVIEW


성함과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심상관. 57세.


인터뷰하시는 분들 중에 가장 젊으세요.(웃음) 

아하. 그런가?(웃음)


맑은 날은 항상 바쁘다고 하셔서, 운치 있게 비 오는 날이 덜 바쁘실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웃음) 바쁜 건 끝나셨어요?

얼추 바쁜 건 끝났어. 그래도 꾸준히 바빠. 9월까지는 바빠. 겨울이 비수기지. 10월, 11월, 12월. 3개월은 비수기야.


비가 오니까 식물들이 파릇파릇해요.

한창 가뭄이었잖아. 소나기 오고 그러면 확 달라져. 내가 물 열 번 스무 번 주는 것보다 비 한번 오면, 다음날 자라는 게 달라. 농사는 거짓이 없어. 정확해. 


바깥에 있는 식물들은 뭐예요? 

모종이라고 해서 저건 주말농장이 많아지고 하니까 씨앗으로 잘 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조금 키워놓으면, 그 모종을 바로 손님이 땅에 이적만 하면 되니까. 20일에서 3개월간 키워서 하는 거. 콩이나 씨앗을 심으면 새가 다 빼먹어. 좀 키워놓은걸 심으면 안 빼먹거든. 모종을 사 가면 농사짓기 수월하니까 농가도 요즘은 모종을 가져가서 심어. 


요즘 7월에는 어떤 채소가 많이 나가나요? 

요새는 채소 종자지. 채소종자 다음에 각종 모종, 고추나 토마토 가지 다 사다가 심었으니까 작물이 자라면서 또 병해충이 오니까 약을 뿌려야지. 어차피 식물도 인간하고 다 똑같어. 인간도 살다 보면 병나고 치료하는 것처럼 작물도 치료해줘야 돼. 사람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잖아. 근데 작물은 말을 못해. 그러니까 증상으로 나타나는 거야. 말을 못 하니까 증상으로 나타나지. 그게 차이점이에요. 작물 하고 사람하고.


키우기 제일 쉬운 작물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쌈 종류 채소. 쌈 종류 채소는 거의 손이 안가. 손으로 수확해서 가면 되고, 병충해 관리를 해야 되는데 병충이 없는 제일 손쉬운 게 쌈 종류 채소. 농토가 많으면 고구마 심으면 제일 편하고, 고구마 심으면 나중에 캐러만 가면 돼.  잘 키우려면 필요한 것이 첫째는 거름이 있어야 돼요. 퇴비가 있어야 돼요. 두 번째는 수분을 충분히 줘야 돼. 세 번째는 햇빛. 햇빛을 못 받으면 연약하게 올라가다가 쓰러져. 작물은 이 세 가지가 맞춰지면 되지 말래도 잘 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도. 봄부터 가을까지는 온도만 잘 맞춰주면 돼. 겨울에만 조심하면 돼.


그럼 제일 인기 많은 모종은요?

고추지. 한국인은 고추를 제일 많이 하니까. 고추, 가지, 토마토 이런 걸 제일 많이 하고. 그다음에 양념으로 먹는 대파. 그리고 상추 하면 뭐가 생각나? 삼겹살 생각나지? 소주 한 잔 하고. 상추 모종도 한 가지 가지고는 못 먹고 사니까 복합적으로 심으면 자급자족할 수 있잖아. 시골에서는 야채 심어서 시장에서 안 사 먹는 거야. 밭에서 바로 수확한 걸 먹는 거랑 시장에서 하루 이틀 묵은 걸 사 먹는 거랑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 상추를 심어서 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우잖아? 딱 자르면 거기서 즙이 나와. 그게 오리지널이야. 밖에서 따먹는 사람들은 그런 매력을 아는데, 시장에서 사다 먹는 사람은 몰라. 


농약사를 운영하신 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30년 조금 넘었지.


어떻게 농약사를 운영하시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이런 가게 종업원으로 근무했지. 이런 종묘사에 종업원으로 근무를 했다가 거기서 나와가지고 자격증을 따서 이걸 하게 됐지. 자수성가했지. 무에서 조금 유로. 나는 부모님한테 재산 십원 한 장 안 받은 사람인데. 아주 젊었을 때, 첫발을 디딘 게 이거였어. 메리트가 상당히 있어. IMF 때, 모든 기업이 올스탑이잖아. 근데 이 장사는 IMF 때 오히려 덕을 봤어. 빈 땅을 뭐든지 심으려고 해서, 오히려 씨앗이나 농약이나 많이 팔렸고. 사람들이 조그만 자투리 땅도 경작해서 뭐든지 심어서 먹으려고 해서 주말농장이 생겨서 덕을 봤고, 이건 1차 산업이야. 먹거리 산업은. 1차 산업은 지구가 멸망해도 이걸 심어야 먹어. 인간이 안 먹음 안되잖아. 그렇다고 공장에서 찍어 낼 수 없잖아. 밑바닥. 터전이니까. 이 장사는 땅이 도시 아래서 개발만 안되면 먹고살 순 있겠구나. 젊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지. 


장사를 하시면서,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여기 한 번 오면 나한테 다 넘어가. 그다음엔 오게 돼있지. 그게 상술이지. (웃음) 성실하다는 걸 고객들한테 보여줘야 돼. 진실되구나. 이 작물에 대한 설명을 진실되게 있는 그대로 했을 때, 피부에 와 닿으면 믿게 돼있어. 나를. 여기는 내가 싫어져서 안 오는 사람은 없게 만들자. 원수는 만들지 말자가 내 지론이거든. 아무리 그 사람이 다른 경쟁업자에 간다고 해도 나를 싫어서 가는 게 아니다. 원수를 두지 않고 다 좋게 좋게 생각하고. 나 같은 사람은 손님하고 싸움은 안 하지. 화가 나도 웃고 나가게 만들어놓지.(웃음) 나이가 먹으면 그만큼 노하우를 쌓아놨잖아. 가정도 이뤘고, 무에서 유를 이뤘지만. 물론 성실하게 한 사람들 이야기야. 성실하지 않고 딴짓하는 것 말고. 어느 정도 쌓이면, 그다음부터는 문제 될 게 없어요. 그럼 사람이 여유가 생겨. 말 한마디에서도 풍기는 게 나 스스로도 여유가 생겨. 거들먹거리는 게 아니고. 인생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유가 생겨. 과거에 내가 모시고 있던 분이 나한테 말을 해줬어. 대화를 할 때 반 템포만 늦춰서 얘기하면 돼. 한 템포는 건방지다고 그러는데 반 템포만 늦춰보라고. 반 템포는 내 머릿속에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니까 실수를 안 해. 상대방이 술 먹고 와서 얘기를 해. 우리는 그걸 다 듣고 여유를 가지고 얘기를 한단 말이야. 반 템포만 늦추면 싸우지 않아.


고수의 느낌이 나시는데요? (웃음)

하다 보면 그게 터득이 돼. 30년 괜히 한 게 아니고.(웃음) 내가 인생 얘기하면 되게 길어.  남의 가게 종업원 생활을 14년 했어. 이 장사를 내가 개인으로 개업한 게 10년이고. 그럼 44년이지 47에서 44년 뺴봐 13살이야. 초등학교 나와서 이걸 배웠단 말이야. 근데 2-3년 하다 보니까 내가 철이 들잖아. 아 이거 공부해야겠구나. 중학교, 고등학교 다 검정고시 봐서 외국어 대학교 갔지. 근데 졸업을 못했어. 이거 개업하느라고. 아 학교 나와도 내가 돈을 벌어야 되고, 14년 배운 게 아까워서 개업을 한 거지. 개업한 게 86년도 딱 30년.


손님이 들어오시면 느낌이 오시겠어요.

그럼 그거 다 알지. 우린 또 뭐가 있는 줄 알아요? 그 사람이 물건 살 사람인지 안 살 사람인지도 알지.

이 농약이 극약이에요. 가끔 가다가 잘못된 생각을 해서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어. 우린 얼굴만 보면 알아.

내가 1년에 몇십 명을 살려줘. 


좋지 않은 기운을 감지하시고요? 

눈을 딱 보면 알아. 위안을 삼아서 보내지. 수원에 농업 판매상이 10군데가 있어. 다 내가 일일이 연락해. 이런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이 오면 팔지 말아라. 그래서 수원에서 못 사게. 그래서 여러 사람 살려놓지. 농약이니까 청소년, 미성년자한테 팔면 안 되고 택배도 안되고 직접 방문해서 사야 돼. 부모님이 학생한테 심부름해도 못 팔아. 내가 만원 짜리 하나 팔아도 생명을 다루는 건데 나 아니래도 농약 하시는 분들은 그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요. 업자분들이 괜찮은 사람들이야.


요즘엔 취업하지 않고, 귀농해서 농사짓는 젊은 청년 농부들도 꽤 많더라고요. 

귀농이 있고, 귀촌이 있어요. 귀농하고 귀촌이 어떻게 다른지 아세요? 귀농은 아예 내가 생업도 포기하고 집 장만해서 농사 지려고 하는 게 귀농이고 귀촌은 도회지에 집을 놔두고 왔다 갔다 하면 농사짓는 거야. 귀농하게 되면 아주 강인한 정신력 가지고 최소 5년 정도는 미리 준비하고 들어가야 돼. 막무가내로 해서는 답이 안 나와. 그리고 농사를 인터넷으로 작업하면 안 돼. 인터넷에 답이 다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일이 생기냐면 불신을 해. '이 종자를 사서 농사지으면 되겠습니다'라고 해도 안 되는 것만 생각하거든. 물론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그래. 조심스러운 것도 있는데 우선 안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하니까 될 리가 없지. 정신, 마음부터 달리하고 딱 해야지. 내가 고생한 만큼의 득이 오는 거지. 절대 고생 안 하고 강 건너 불구경해서는 나한테 득이 안 와. 예전에 20-30년씩 한 사람들은 끈기를 가지고 안 먹고 안 써가면서 했는데, 지금은 단기간에 결정하려고 해. 농사는 최소한은 3년을 해야 돼. 3년을 해서 아니다 싶으면 접으면 되는데, 3년을 못 채워.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창업을 한다고 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 내가 결정을 했으면 그걸 하기까지 3년은 모든 노력을 다해서 연구를 하고 그래야 된다는 거야. 그런 받침이 안되고 무조건 창업하면 절대 못 버텨. 빨리 결과를 보려면 안돼요. 장사는 멀리 봐야 돼. 가깝게 봐서 오는 손님 몇 명 봐서 하루 얼마 팔고 그러면 안돼. 장사가 안되면 찾아가는 서비스도 해야 돼. 동네 가서 세미나도 하고 막걸리잔 돌려가면서 했어. 그렇게 해야 밥 먹고 살지. 


옛날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적응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제 컴퓨터를 시작하니까 품목 관리 다 되고, 손님들이 가져간 품목도 모두 기록돼서 편하지. 옛날엔 컴퓨터도 안 했었는데, 컴퓨터 안에 병충해 도감이 있어요. 말로 해서 안 되는 건 증거로 보여줘야 돼. 그러면 손님이 흡족해하고 만족해해.  다른데서 없는 걸 찾아주니까 좋아하시지. 그리고 요즘은 2G 폰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 쓴다니까. 손님들한테 궁금한 걸 문자로 물어보는데, 이렇게 사진을 전송해서 (핸드폰 보여주심) 이게 무슨 병이냐고 물어봐. 내가 다 가르쳐줬어. 이렇게 답변하니까 편하잖아. 요즘 이런 세상이야. 


그리고 시대가 급변하면서, 각박해졌죠. 개인 이기주의야. 우리 동네에는 쓰레기 설치 반대야. 자기네들은 갖다 버리잖아. 이기주이야 완전히. 옛날에는 미덕이라는 게 있었어. 이웃 간에 나눠 먹고 농민이 생산해 먹고 농산물이 좀 시원찮게 나왔어. 내가 농사지은 거야 맛있게 먹어. 옛날에는 고맙다고 그랬지. 지금은 안 그래. 먹을 것도 안 되는 걸 가져왔다고 하고 내다 버려. 지금도 그런 사람 많아요. 며느리도 시부모님이 차에 바리바리 싸다 주면 오다가 버린다잖아. 물질. 돈이 최고. 자기 마음 담아서 뭐 사다 주는 건 안 좋아하잖아. 부모님은 자식들이 선물한 거 입지도 못하고 쌓아두는데. 한참 배워야 돼 우리 세대는. 국민이 우리 정치권도 깨야 되지만 국민이 근본적으로 깨야 돼. 개인 하나하나가 내 가족 생각하듯이 이웃도 생각해서 널리 퍼져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돼. 믿고 의지하고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되잖아. 그리고 모든 것이 사회, 경제에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잖아요. 다들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벌어서 못 사니까 서로 벌어야 되고, 혼자 벌면 30년이 돼도 집을 못 산다고 했어. 애 키우고 각박하게 사는 거야. 그렇게 살다 보면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라 악만 남게 돼. 좋게 재밌게 살 수가 없지. 애들한테도 말을 함부로 하게 되고. 아이들한테 해서는 안될 말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 그 사람이 저속하게 보이더라고. 듣는 사람은 그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거거든. 인생은 절대 그렇게 살면 안 돼. 이만큼 가져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되지. 사실 지금 세대는 자수성가하기 힘들어. 부모가 도와주면 모를까. 옛날에는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지만, 요즘 세상엔 불가능해. 옛날에는 다 전부 똑같았지. 무에서 유로 가니까 가능했는데, 그때는 부모가 안 먹고 안 쓴 거야. 


늙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우선 사람은 늙으면 죽어요. 내가 손발이 말짱하고 정신이 있을 때까지는 현업에 종사하는 게 맞는 거고,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면 되는데 이런 장사는 너무 나이가 지긋이 먹으면 손님이 안 와. 저 노인네한테 뭘 사 이렇게 돼서. 활력 있게 장사할 수 있는 나이는 30세에서 60세 안쪽이야. 60세 넘으면, 후진 양성을 해줘야 돼. 장사의 특성에 따라서. 나도 이제 후진을 키우는 중인데, 늘긍면 그런 게 있어요. 1에서 100을 판다고 하면 60, 70 이렇게 밖에 못 팔아. 무거운 거 못 팔고, 힘들어서 못 팔고 하면 품목도 자꾸 줄거든. 손님이 와서 부담감이 없어야 돼. 자기보다 연장자면 부담이 있어요. 젊었을 때,  60세 안쪽에서 모든 것을 설계를 해야 돼. 심지어는 앞으로 내가 은퇴해서 노후 자금을 미리 만들어놔야 돼.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부부가 둘이 누워서 우리 별 탈 없이 편안하게 살았지? 하고 주고받는 사이가 돼야지 비로소 인생이 성공한 거야. 


생각하신 대로 사시는 것 같아요. 

그게 올바른 사람이 되는 거야. 생각만으로 멈추기 쉽잖아요. 자기도취랄까? 인생은 생각만으로 안돼. 안 될 것도 되게 하라고 계속해서 생각하는 거지. 우리가 인간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만들어야 돼. 그게 무에서 유가 되는 거고 비로소 유가 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그리고 인생을 50까지는 살아 봐야 인생의 쓴맛, 단맛 다 겪어보고 세상은 이렇구나 하고 논할 수 있는 거야. 옛날에 부모님들이 그러잖아.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봐야 부모 마음 안다고. 네가 이렇게 속 썩였는데, 네가 네 자식 낳아봐. 부모님들이 그런 얘길 해주시는 거야.(웃음) 


같은 자리를 지키시면서 오래 장사하시는 분들을 많이 인터뷰 하다 보면 단골손님에 대한 에피소드를 듣는 게 재밌더라고요. 풍년 농약사의 단골손님 이야기가 궁금해요.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 손님이 나한테 와서 무엇을 심어야 돈을 버냐고 물어봐서 작물을 추천해준 적이 있어요. 그 해 파 종자가 안 나갔어. 그래서 종자가 많이 남았지. 씨앗이 1년 묵으면 안 나간다고. 난 그걸 다 팔아야 되겠고 손님이 와서 추천해달라고 하는데, 1000만 원어치 되는데 돈 안 받겠다. 재미를 보면 나한테 두배로 갚으라고 줬는데, 그분이 대박이 났어. 그 해 파를 1000만 원어치로 5억을 벌었어. 그래서 종자 값을 갚으러 왔는데 1000만 원이잖아. 5000만 원을 주고 가시더라고. 이게 보람이야. 이 장사를 하면서 손님도 재미보고 나도 재미보고. 이게 하다 보면 농사라는 게 그래요. 인생에 있어서 세 박자가 있듯이 농사도 세 박자가 있어요. 종묘사에서 좋은 종자를 추천해주는 게 한 박자. 농민이 가져가서 성심성의껏 농사를 잘 짓는 게 한 박자. 하나는 하늘이 도와줘야 돼. 비도 적당히 와주고. 나중에 가격이 잘 서야 되잖아. 이 세 박자가 맞아야 농사에 성공하는 거지 그중에 하나만 안돼도 잘 안돼. 아무리 좋은 거 줘도 잘못 키우거나 잘 키웠는데도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면 허당이고. 농사는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30년 정도 거래를 한 분이 있어. 근데 안 와. 나이는 있는 분이니까.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돌아가셨어. 안 오면 돌아가신 거야. 얼마 전에도 오셨는데, 안 오시면 돌아가셨거나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 거야. 예전에 동네에 배달을 갔다가 동네 분한테 할아버지 댁이 어디냐고 했더니 지금 저기서 쉬고 있대. 어디요? 산만 보이지 아무것도 없어. 저기 잘 보라고. 산에서 땀 닦고 있네. 거기 산소가 세 개밖에 없어. 그분이 그 산소를 가리키시면서 유머를 하신 거지. (웃음)


또 한 분은 외상이 140만 원 됐나? 근데 안 오시는 거야. 참 이상하다. 어디 아프신가 하고 생각했지.  어느 날 자제분이 왔어. 아버지 함자 아시냐고 하더니 아버님이 운명하시기 전에 풍년 농약사에 외상 했으니까 갚으라고 했대. 그걸 듣고 나도 감동을 받았지. 부모가 안 줘도 그만인데, 그걸 유언으로 남겼어. 그걸 또 자식이 실행하러 왔어. 그걸 갚으러 왔어. 참 세상은 괜찮구나. 아직까지 그런 걸 느끼지. 지금도 대를 이어 오는 분이 많아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죽음은 사람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거야. 사는 날까지 행복하게 사는 게 첫째야. 나이 들어서

어른들이 하는 얘기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앓지 않고 깨끗이 죽는 거. 3일만 앓다가 죽는 거.

치매 안  걸리고. 이부자리에 쉬 안 하고 죽는 게 제일 좋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 

그래서 치매가 걸리거나 해도 요양병원 가야 되고 나이 먹어서 고집부리지 말고. 첫째는 가야 돼.




PHOTOGRAPHY


DIARY

키우다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시들어 버린 식물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지금 작업실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있다. 새 순이 돋아나면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시들어 있는 것을 보면 하루의 기분도 우울해진다. 식물 무식자였는데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다. 매일 새롭게 알게 되는 것 천지다.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코뿔소 프로덕션 #현지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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