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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04. 2024

릴케의 로댕

로댕의 철학을 발견한 릴케의 시



<릴케의 로댕>은 요 근래 계속 나의 책 상위에 놓여있다. 

책두 곁에 두고 싶은 책이 있다. 바라만 봐도 흐뭇하고 든든하기 조차 한, 

드물게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결국은 사서 곁에 둔 책이다. 

릴케의 로댕이지만 로댕의 릴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릴케가 로댕을 적은 글이지만 로댕을 빌미로 릴케 자신을 적는 글이라고 해야 맞다. 

단순한 로댕의 작품론이 아니라 

로댕의 철학을 발견한 릴케의 시다.

천재인 이십대 젊은이의 시선은 천 리 밖도 내다볼 것처럼 투명하고 날카롭다.

그러나 이미 중년이 지나 삶의 온갖 때가 덕지덕지 묻은 로댕은 

그런 젊은이의 냉정한 시선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릴케는 작품만을 볼 것이고 로댕은 작품만을 위해서 살아온 작품의 농부였으니까.

나처럼 그의 가십난이나 주절거리며 

아, 로댕은 나쁜 사람이야, 까미유 클로텔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녀가 아까워, 

이런 시선들은 진지하게 작품에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가십에 관심이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지적인 상태에 머무르지 못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하이데거의 ’숲길‘과 ’존재와 시간‘을 읽고 난 뒤 하이데거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평생 철학, 하이데거를 연구해온 학자의 두 시간 가까운 총체적 강의는 

내게 하이데거의 틀을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철학에 대한 해석도 그림과 같을 수 있다. 

길이 너무 많아서 살짝 다른 길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니 내가 하이데거를 만나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나만의 그가 맞냐 틀리냐는 중요하지 않다.

철학 책을 읽고 철학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본질적 존재에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강의가 끝나고 토론 시간에 역시 하이데거를 전공한 교수가 

집요하게 하이데거와 유태인 히틀러에 관한 부분을 물었다. 

그러니까 가십 적인 요소에 의해 사람을 혹은 철학을 작품을 판단하려고 드는 것,

옳은가 옳지 않은가.는 여전히 학을 연구 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포인트이지 싶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나도 루브르에서 한번 알현한 적이 있다.

회랑 사이에 조금 높다란 위치에 존재?해 있어서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에 하나 더 문제를 얹거나 혹은 그 답을 주는 듯한 존재였다)

키는 작고 사람은 많아도 의외로 잘 볼 수 있었다.

사람들 머리 위에 있었으니까,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이미지로 보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날개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그러니 진짜 천사지, 

금방이라도 훠이훠이 날아오를 것 같았고 

천사처럼 아름다웠고(아 이 식상한 표현이라니)

살짝 바람에 흩날리는 옷의 주름들은 저리 고운

(이 단어는 이제 옛 단어로 사장되어가니 오히려 그 맛이 그윽해진다)비단이 어디 또 있을까,

그렇게 내가 겉만 보면서 오, 아, 대박, 할 때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조각상은 단지 연인을 향해 다가가는 아름다운 소녀의 움직임만을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그리스의 바람 그 광대함과 화려함의 영원한 형상인 것이다.”

아 연인을 향해 다가가는 소녀, 

그것도 아름다운 소녀의 움직임이란 얼마나 순수하고 환희에 차있으며

순간에 사라져버릴 안개 같은 것인가,

그러니까 모든 예술 작품은 사라질 것을 붙잡는 것이다. 

그렇다.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깊이 본다는 것, 느낀다는 것,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작품도 그러할 진대

우리네 삶을 우리가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내 삶뿐 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즉 사람에 대한 이해도 

깊이 보고 이해하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시간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지만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와 ‘두이노의 비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등을 

곁에 두고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가며 읽었던 시간이 기억나는데

내용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너무나 기억이 없어서 약간 서글펐다.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연 읽긴 읽은 것일까, 

사라지는 게 어디 책뿐일까, 

결국 모든 것들은 소멸을 향한 길 속에 있다. 

선명하게 사라져가는 젊음에는 대범한 척하다가 

비겁하게 기억 같은 사소한 것들에 무게를 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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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3세의 발이 울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 로댕은 벌써 알았다. 

우는 발이 있다는 것을, 완전한 한 인간을 넘어서 울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모든 땀구멍에서 솟아나는 엄청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를 서성이게 하던 릴케가 쓴 로댕론의 한 대목이다. 

젊은 시절 릴케는 로댕의 비서였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전시 중이던 로댕의 제안으로 

1905년 9월15일부터 1906년 5월12일까지 로댕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비록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사소한 오해로 결별했지만, 

릴케는 로댕의 위대한 작품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강연과 글을 쓰는 등 로댕을 전파하는 사도 역할을 했다. 

릴케는 로댕을 만난 것을 일생의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위대한 조각가를 만났던 일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자신의 시에 훨씬 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고 회상했다.


 

릴케가 로댕을 처음 만났을 당시 62세의 로댕은 명성의 절정에 있었다. 

첫 만남 이후 거의 4년 동안 로댕은 릴케의 감정과 사고를 지배했다. 

특히 릴케는 로댕이 영감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작업 중’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릴케는 영감에 의해서 무언가가 떠올라야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로댕은 작업 자체를 영감으로 삼았다. 

릴케는 로댕을 통해 

“값싼 감정에서 벗어나 화가나 조각가처럼 자연 앞에서 일하며 대상을 엄격하게 파악하고 묘사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로댕을 만나는 순간 릴케의 예술과 일생 전체가 바뀌어 버렸던 것!

<과연 무엇이 로댕으로 하여금 이 두상을, 일그러진 코로 고통 받는 이 늙어가는 못생긴 사내의 두상을 만들도록 부추겼을까? 그것은 이 얼굴 표정 속에 모여 있는 삶의 충만이었다. 이 얼굴은 삶에 의해 어루만져진 적이 없고 오히려 삶에 번번이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은 세상을 향하고 있지 않다. 얼굴은 자신에게 있는 모순들과 화해와 인내를, 온갖 괴로움을 견디기에 충분하도록 위대한 인내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로댕이 처음으로 만든 인물초상 <코 깨진 사내>는 의미심장하다.

시작과 함께 끝을 아우르는 그의 모든 예술적 관점을 관통하는 접점이 아닐까, 

아름다움에 대한 당연한 예측만을 일삼던, 

혹은 상식에 경도되었던 사람들에게 <코 깨진 사내>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릴케는 로댕에서 쓰고 있다. 

“운명이 그어놓은 선에 대한 경외, 

데서조차 창조해 내는 삶에 대한 그의 신뢰를 느끼게 한다” 


 

릴케의 로댕론을 아껴가며 탐독하다 보면 두 거장의 숨결 모두에 감응하게 된다. 

로댕 예술과 릴케 문학의 아름다운 향연이 한자리에 있다.

 

주인 없이 비어 있던 비롱 저택을 릴케가 로댕에게 추천한다. 

비롱 저택이 마음에 든 로댕은 자신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할 테니 저택에 자신의 미술관을 지어달라고 했다. 

로댕은 죽는 날까지 비롱 저택에서 살 수 있었고 

로댕의 작품 500여 점과 그가 평생 수집한 미술품 6000여 점을 모두 국가 소장품으로 등록, 로댕미술관이 되었다. 

언제 가볼수 있을까, 

로댕 미술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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