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rang Oct 31. 2023

경이로운 하루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인스타그램에 한 피드가 눈에 띄었다. 오늘 북 토크를 가야 하는데 일 때문에 못 간다며 아쉬워하는 스토리 글이었다.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내한 기념으로 열린 북 토크였는데 표는 이미 매진이었다. 주최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혹시 표가 남았는지 물었고, 오늘 못 오는 분이 있을 수 있으니, 현장에서 대기하여 입장할 수 있는지까지 물었다. 표는 없고 취소 건은 미리 확인이 어려워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린 사람에게 무턱대고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북 토크 양도 가능한가요?’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고는 선물로 드리겠다며 자기 대신 다녀와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가슴이 벅찼다. 

    

‘사샤 세이건’. 북 토크의 주인공. 수필집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를 쓴 작가. 영미 작가인 그녀는 ‘코스모스’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영화 TV 쇼 제작자이자 작가인 앤 드루얀의 딸이다. 작년 그녀의 책을 처음 읽었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지만,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며 삶에 녹여내는 작가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글 한 편 한편이 좋아 책이 좋아졌고, 작가가 좋아졌다. 누군가 책 추천을 물어오면 맨 처음 이 책을 권했고, 책 선물을 할 때면 이 책이 골랐다. 아름다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어느 마케터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다. 마케터영상을 찾다 알게 되었는데, 내용도 알차고, 실력도 있고, 진솔한 모습의 마케터였다. 채널을 구독하고 영상을 자주 봤다. 가끔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했는데 이 책이 그중 하나였다. 영상을 보고 바로 책을 샀다. 책을 읽고 바로 책과 작가를 사랑하게 됐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 작가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많은 책을 낸 작가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므로 독자와 만나는 행사가 열릴 거라고는 기대조차 없었다. 더욱이 11,000km나 멀리서 사는 외국 작가다. 언젠간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게 됐다. 예상하지 못한 날,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린 사람은 사샤 세이 건의 책을 유튜브로 소개했던 바로 그 마케터였다. 나는 그 마케터가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북 토크 정보를 알게 됐고, 티켓을 구하지 못해 양도를 부탁했고, 티켓을 양도해 줬고, 그 티켓으로 북 토크에 가게 되었고, 사랑하는 책을 쓴 작가를 만났다. 이런 과정을 떠올리면 신기한 걸 넘어서 간절한 마음은 서로 끌어당기는 자성을 가진 물체일지도 모른다는 신비함마저 느꼈다.     


북 토크는 너무 좋았다. 글을 쓰기 위한 생각이 아니라 실제의 생각을 책에 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답변은 진솔했고, 태도는 겸손했고, 표정은 활기찼고, 표현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나는 북 토크에 가지 못해 아쉬워할 마케터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북 토크를 마치고 저자의 사인회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책을 구입해 그분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우편으로 보내드렸다. 내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집에 오는 길, 꿈만 같던 하루를 떠올리며 주변의 보니 지하철 속 대부분의 사람이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문득 단절된 모습처럼 보였지만 이 역시도 인류의 한순간이며 진화의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서 인류는 나름의 방식을 찾고 적응해 나가고 표준을 만들어 가리라는 생각도. 그리고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진심을 느끼고 전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사실 직접 대면하지 않았지만, 글을 통한 대화, 랜선을 통한 만남에도 설렘이 있고, 감동이 있고, 진심이 있다. 일방적인 시작이지만 그 진심들이 어떤 형태로든 서로에게 닿을 땐 문자보다 선명하고 전류보다 짜릿하게 전달된다. 나는 당신을 알지만, 당신은 나를 모르는 시작이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의 반짝임을 알아보는 순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이미 몇 번은 만나 봄 직한 관계처럼 푹 익은 관계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린 이미 그러도록 적응했고 진화했는지도. 글을 통해서만 만났지만 실제로 본 사샤 세이건이 전혀 낯설지 않았듯, 핸드폰 화면으로만 보던 마케터에게도 내 진심이 전달됐듯이.      


사샤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라고. 나에게도 그야말로 경이로운 하루였다.


경이로운 하루를 선물해준 정혜윤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곳의, 그들(그그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