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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Feb 15. 2024

내리 배움

봉사

봉사 문의 전화가 왔다.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24년 전쯤 그러니까 대학 시절에 이곳에서 봉사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봉사하고 싶다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다만 달라진 건 함께 오는 사람이 대학 시절 친구들이 아닌 자녀였다. 딸이 캐나다에서 공부 중인데 일 년에 한 달 정도 한국에 머문다고 했다. 다음 주면 다시 캐나다로 떠나는데 출국 전 봉사를 하고 싶다며 전화를 준거다. 대학 시절 봉사 때 좋았던 기억이 남아서 일부러 이곳을 봉사 장소로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8월 19일 11시, 식당 일을 돕는 봉사로 약속을 잡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이런 인연도 있구나 싶어 놀랐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곳을 기억한 것, 그게 24년 전이라는 것, 그리고 2대에 걸친 봉사라는 것에 다시금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린 시절, 우리 기관에서 했던 봉사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게 무엇이었기에 경기도 용인시에서부터 달려왔을까, 출국이 코 앞인데 몸 사려야 할 자녀와 함께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걸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었을까. 잠시 봉사자의 마음이 되어 본다.

먼 길, 험난한 길을 또다시 떠나는 자녀에게 엄마와 함께한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을까. 사회적 약자를 통해 두려운 현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을까. 피 튀는 생존 경쟁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를 생각하며 용기를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이런저런 이유라도 멋진 행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오는 봉사자들이 종종 있다. 자녀는 대부분 중고생이며 흔히 봉사 실적을 채우려는 분들이다. 어린 자녀 혼자서 봉사 시간을 다 채우기엔 어려움이 있으니, 부모가 데리고 다니는 꼴이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부모의 악착스러운 행실 이면엔 간절한 더 큰 뜻이 있다. 그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걸 내가 직접 알려줬으면, 나를 통해 배웠으면, 나를 따라 하며 내리 배움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게 봉사하는 진짜 마음이다. 그래서 가족 봉사는 더 의미 있고 소중하다.


봉사가 끝나고 마당에서 인사를 나눴다. 건물을 훑어보며 예전과 달라진 모습과 그대로인 모습을 찾는 호기심 가득한 봉사자의 표정을 봤다. 마치 고향에 온 듯, 모교에 온 듯 편안하고 설레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옆에 서 있는 자녀분에게 눈길이 갔다. 혼자 신난 엄마의 표정과 여기저기 가리키는 손짓을 따라가며 말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지금은 지루한 듯 표정 없이 서 있지만 언젠간 자기 자녀를 데리고 지금 엄마와 같은 표정을 짓는 날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 24년 전엔 엄마도 이러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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