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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Dec 11. 2023

과정주의자

돌봄 딜레마


보배 씨는 병원 진료 결과 신장 기능이 약해져 현재 상태에서 더 나빠지면 신장 투석을 할지도 모릅니다. 의사 선생님은 대부분 음식에 염분과 당분을 빼고 드셔야 한다고 합니다. 장미 씨는 외모에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번이나 했던 쌍꺼풀 수술을 한 번 더하고 싶다고 합니다. 보배 씨는 남들 다 먹는 음식을 왜 안 주고 맛없는 음식만 주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장미 씨 또한 쌍꺼풀 수술을 한번 추가하면 예뻐질 텐데 왜 반대하냐며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김두환, 김복희 외 3명, 푸른 복지, 2016)  

   

정신요양시설인 무지개마을에 입주 중인 보배 씨와 장미 씨의 이야기다. 입주인의 권리와 지원자의 책임이 부딪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일들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벌어지는 일 중 가장 어려운 일이다. 흔히 돌봄 딜레마라고 부른다. 복지 현장에선 위의 사례와 비슷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단순한 일상부터 건강에 해를 미치는 중대한 일까지 그 심각성은 각기 다르고, 같은 일이라도 입주 장애인의 장애 정도와 인지 정도에 따라 지원 방법도 다르게 수립해야 한다. 복지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먼저 지원자들이 모여 회의한다. 여러 부서의 사람들이 모여 상황에 심각성을 공유하고 적절한 지원책을 찾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권리부터 윤리강령, 지원자 각자의 철학 등 많은 이야기가 치열하게 오고 가며 가장 지지를 받는 방법이 정해진다. 결정된 방법으로 모든 지원자가 일관성 있게 지원하도록 알리고 실천한다. 입주인의 행동을 수정하거나, 소거하거나, 이해시키는게 최종 목적이긴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따로 있다.    

  

사회복지현장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할 때가 많다. 지원 목표야 어차피 보배 씨는 건강에 맞는 음식을 화내지 않고 잘 먹어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고, 장미 씨는 더 이상 수술하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당사자, 지원자에게 이로운 방법으로 실현해나갈 것인가가 바로 과정이며 돌봄 서비스다. 그래서 과정에 더 고민하고 신중하고 조심한다. 보배 씨와 장미 씨의 이야기를 듣고 두 가지 유형의 지원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유형의 지원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원이다. 보배 씨에게 일반적인 식사를 못 하도록 한다. 염분과 당분이 많아서다. 대신 저염과 저당분 식사를 소량으로 제공한다. 보배 씨는 화를 내고 식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분들과 함께 식사하면 음식이 비교되어 계속 화를 낼 것이니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서 식사하도록 하거나 시간을 조정해서 혼자 식사하도록 지원한다. 장미 씨는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가족에게 설득을 요청하고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수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 진단 내용으로 설득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으니 헤어나 화장, 네일 관리 등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지원 과정이다.  

   

두 번째 유형의 지원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다. 보배 씨는 일반식을 먹고 싶어 하니 먹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염분과 당분의 양을 조절해 보배 씨만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도록 지원하여 가끔씩 일반식을 먹도록 한다. 장미 씨는 쌍꺼풀 수술을 원하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성형외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술이 어렵다는 상담 결과를 받으면 설명해 주고 장미 씨가 인정하지 않으면 또 다른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또 상담받으면서 스스로 수술이 어려움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눈 지방이 많아 수술이 어렵다면 지방제거가 가능하지도 알아보고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가능하면 수술을 받고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과정에 동참시키는 과정이다.   

  

이렇게 두 가지 유형의 지원 과정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엇이 더 옳은지, 무엇이 더 인권을 지키는지, 무엇이 더 권리를 존중하는지,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든 이런 상황을 맞게 될 우리는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의 시작은 지원자가 아닌 장애 당사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려움을 인지하는 것이다. 지원자의 시각이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완벽할지라도 장애 당사자가 그것을 이해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방법도 과정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병리적인 접근과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한 전문적인 지원보다는 낮은 모습으로 당사자의 시선에서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원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은 같은 목표를 가진 지원이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지금도 현장에선 입주인의 건강과 자기 결정권, 개인의 자유와 다수의 평안, 욕구와 절제, 이해와 규범 등 첨예한 문제들이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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